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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Feb 19. 2024

환경 소시민 일지

솔직히 여전히 플라스틱이 익숙해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대부분의 학급에서는 ‘환경미화’라는 걸 했다. 담임선생님과 학생 몇 명이 방과 후에 남아 교실을 꾸미는 활동이었는데, 보통 선생님과 친하거나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이 환경미화를 담당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미술 시간만 되면 ‘귀찮다’며 툴툴대던 아이들도 환경미화 담당 학생을 뽑을 때만큼은 눈을 반짝였다. 작은 교실의 최고 권력자 선생님과의 친분 혹은 타고난 자신의 미적 재능을 합법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나는 초중고 12년 동안 환경 미화를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담임교사였어도 미술 수행평가 시간마다 최저점을 받는 학생에게 교실 미화를 맡길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환경 미화와는 동떨어진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자취를 하면서도 집을 정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혼자 살게 되며 요리에마저 재주가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 대부분의 끼니를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요컨대 쌀국수 하나만 배달시켜도 쌀국수 그릇과 뚜껑, 양파와 해선장을 담는 작은 용기. 이들이 흐르지 않도록 한 번 더 둘러싼 랩까지. 제법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온다. 죄다 플라스틱이며, 비닐류인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밥을 먹고 ‘조금만 쉬다 치워야지’가 몇 번 반복되면, 결국 집 안에는 플라스틱이 잔뜩 쌓인다. 두고보다 마침내 ‘이게 돼지우리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쓰레기를 버리러 가게 되는데, 이때가 상당히 낯부끄럽다. 양손 가득 배달 용기를 들고, 플라스틱 수거함 앞에 서서 한참을 분리수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탓에 내가 쓰레기를 버리고 온 날이면 늘 플라스틱 수거함은 늘 가득 차곤 했다.

그러는 동안 자취방 부엌 찬장에는 먼지가 쌓여갔고, 에코백 옆에 뒀던 텀블러의 입구는 뻑뻑해져 갔다. 색 바랜 나무 수저를 대신해 일회용 젓가락만 늘어갔고, 아기자기한 숟가락은 어느샌가 마라탕집에서 딸려온 일회용 검정 숟가락에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지저분하면서도 편리한 나만의 환경에 익숙해져 갔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이거 너무 환경오염 아냐?’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랜 시간 몸에 스며버린 질 낮은 습관을 한 순간에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한때는 일말의 부채감이라도 덜어보고자 유니세프 북극곰 후원 반지라든가 플라스틱 없는 대나무 칫솔 등을 사곤 했는데, 결국 다른 재료로 만든 쓰레기만 더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걸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환경에 있어서만큼은 아주 무디고 무책임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몇 년 전, 회사에 다니며 <환경 보호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도 마음이 아주 불편했던 까닭이다. 하필 내가 진행했던 영상의 주제도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였다. 그래도 환경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기간만큼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배출을 줄여보겠노라 마음먹었지만, 20년 넘게 들인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프로젝트가 끝나고 ‘좋은 영상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구독자의 댓글을 보고 나서야, 내 삶의 궤적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누적된 악습관으로 인해, 변명의 여지없이 보여주기식 환경 운동에 앞장서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 차츰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다행히 예전보다는 환경을 우선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직도,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나 환경을 생각해’라는 말을 하지는 못하겠다. 아직도 내겐 예전 그림자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도, 나는 여전히 환경 소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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