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브런치의 시작은 ‘여행기’였습니다.
2018년 12월 중순부터 2019년 1월 중순까지. 지금까지도 다음엔 어디로 여행을 갈지 함께 머리를 맞대는 단짝친구와 함께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주변에서는 왜 굳이 연말, 비수기에 가느냐고 물었지만 저와 친구에게 연말연초는 오히려 성수기였습니다. 크리스마스와 한 해의 마지막 그리고 새해의 시작. 무엇보다 근처에 붙은 둘의 생일까지 함께 보낼 수 있는 최적기였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하기 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던 마지막 시기란 생각도 했지만요…)
어쨌거나 저와 친구는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장 큰 캐리어를 끌고 유럽의 눈밭을 걸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도 모른 채, 그저 설레는 마음으로, 태어나 가장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렇게 체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쌓았습니다. 다만 그 기억들은, 체코 카를교와 밀라노의 대성당보다는, 카를교를 건너며 내려다봤던 이름 모를 크리스마스 마켓과 밀라노 대성당 앞 수많은 비둘기를 보고 놀랐던 순간으로 채워지기는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이 끝난 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들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난생처음 보는 웅장한 건축물과 서울과는 또 다른 도시의 풍경을 향해 수없이 DSLR의 셔터를 눌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지 않았던 여행 중 사소한 순간이 뇌리에 깊게 남아있기도 합니다. 숙소에서 껍질이 두꺼운 포멜로를 까지 못해, 친구와 서로 껍질 한쪽씩 잡고 잡아당기다 결국은 바닥에 나뒹군 일이나… 눈길에 캐리어를 끌다 한참 거리가 벌어져 서로를 향해 ‘빵’ 터지며 웃었던 순간 같은 것들 말입니다.
유럽을 다녀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오히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을 글로나마 기록해 둘걸 아쉬운 마음이 드는 이유입니다. 19년에 처음 올렸던 여행기는 남들과는 최대한 다른 순간, 현지에서만 겪을 수 있는 나만의 경험 혹은 약간의 자랑을 나누기에 급급했습니다. 지금 쓰면 아예 다른 글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래도 지나간 글이고, 그 당시에는 또 그런 경험들이 여행을 즐겁게 해 줬으니 어쩔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전과 조금 다를, 여행기를 올려보려고 합니다. 유럽 여행기 이후 제 브런치에는 늘 알바/취준/회사/퇴사 그리고 다시 취준이야기가 가득했는데요. 돌이켜보니 그 틈 사이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을 제법 다녔고, 저의 성격도 많이 변했으며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새삼 달라졌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와 다른 여행기를, 지금은 써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다녔던 곳들의 여행일지를 적어볼까 합니다.
새삼스레 ‘저 앞으로 이런 글 쓸 거예요~’라는 글을, 평소에 쓰지도 않던 존댓말까지 사용해 가며 올리는 이유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 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보잘것없는 제 브런치에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셨던 분들에게 최소한이나마 예의를 갖춰서 대화하듯 생각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쉬었던 제 브런치는 처음 그때처럼, 여행기로 다시 시작합니다. 19년도와는 다른 여행기를 적는 걸 목표로 꾸준히 적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