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과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남미 밀림을 가리키는 이름이 모두 아마존이지 않은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마존은 ‘공간 – 하나는 온라인, 다른 하나는 오프라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아마존은 본래 ‘종족’ 이름이다. 그리스 신화 속 종족으로 두 가지 점에서 유명하다. 하나는 여성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막강한 전투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가 남자아이면 죽이거나 이웃 부족으로 보내버렸다. 여자밖에 없는데 아이는 어떻게 가졌을까. 이웃 부족을 침입해 남자를 데려온 후 관계를 가진 이후에는 죽이거나 돌려보냈다고 한다.
여러모로 상상을 자극하는 이 여인들을 둘러싸고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남겼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아마존의 전투’라는 작품을 보자. 다리 위에서 그리스 군과 아마존족과의 싸움이 한 창 벌어지고 있다. 이 그림은 바로크 그 자체다. 절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드라마틱한 구성, 액션 배우들의 열연을 보는듯한 역동적 자세, 야수파도 울고 갈 강렬한 색채. 또 하나 바로크 회화의 큰 특징은 개체들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뒤엉킨다는 것이다. 스위스 미술사가 뵐플린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를 비교하며 이 점을 잘 설명한 바 있다. 루벤스의 이 그림을 보면 뵐플린의 설명이 확 와닿을 것이다. 사람과 말이 얽히고설켜 어디서 어디까지가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인지 구별이 잘 안된다. 냉철하면 떨어지고 뜨거워지면 끌어안는 법. 뜨거운 바로크 회화는 뒤엉켜야 제 맛이다.
< 군기를 둘러싼 네 인물의 얽히고 설킨 접전 >
그림 중앙의 다리 위를 보자. 좌측의 남자가 오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으로 아마존족의 군기를 잡아당기고 있다. 말에서 곧 떨어질듯한 아마존 전사가 군기를 뺏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이들 둘 사이의 그리스 장군이 군기를 잘라버리려 칼을 치켜들고 있다. 이대로 아마존 군기가 찢겨 나가는 가 싶은데... 그리스 장군 뒤편 그림자 속에서 아마존 장군의 모습이 보인다! 공작 깃털이 달린 높은 투구를 쓴 것으로 보아 사령관일 수도 있다. 그리스 장군의 내려치는 칼이 먼저 일 것인가 아니면 아마존 전사가 한 발 앞서 저지할 것인가. 이들 네 명의 인물들 밑에는 목 잘린 시체가 있고 그 우측에는 한 아마존 전사가 잘린 목을 쳐들고 있다. 다리 밑 하천은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있다. 반면 다리 위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낀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다. 몇 시간 후, 전투는 끝나고 시체가 떠다니는 물 위로 차가운 비가 쏟아질 것이다.
바로크 황제라 불리는 루벤스가 그렸다고 해서 다 같은 순도의 바로크가 아니다. 바로크 특성을 아낌없이 담아낸 작품이 있고 다른 요소들이 적절히 섞인 작품도 있다. 예를 들어 락 밴드도 하드한 곡뿐 아니라 가끔 발라드나 미드 템포 곡을 연주하지 않는가. 하지만 락이라면 역시 빠르고 헤비 해야 제 맛이듯이 바로크는 화려하고 극적이어야 제 맛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의 전투는 바로크의 매운맛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 아름다운 풍경도 숨기지 못하는 사냥 천재의 존재감, 아탈란테
< 루벤스-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하는 아탈란테와 멜리아기스 >
루벤스가 그린 또 다른 여전사로 아탈란테가 있다. 아탈란테는 아르키디아 왕의 딸로 태어났으나 아들을 원했던 비정한 아버지는 아탈란테를 숲 속에 버린다. 다행히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암컷 곰을 보내 아탈란테를 돌보게 하고 이후 사냥꾼들이 그녀를 양육한다. 성장한 아탈란테는 미모도 빼어났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전투력이었다. 사냥의 여신과 사냥꾼 남자를 부모 삼아 성장한 아탈란테는 말 그대로 인간병기였다. 숲 속의 노루 몇 마리 잡는 수준으로는 그녀의 명성이 전해질 수 없다. 그녀의 실력에 걸맞은 사냥감이 필요하다. 마침 그녀가 수호신으로 모시는 아르테미스 여신이 그녀가 몸 좀 풀어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냥감을 내려보낸다. 바로 ‘칼리돈의 멧돼지’이다.
칼리돈의 왕이었던 오이네우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축제의 제물을 바쳐야 했으나 깜빡 잊고 말았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인간의 타락에는 별 관심 없다가 자기를 무시하면 벌을 준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칼리돈 왕의 실수를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이고 용서하지 않는다. 난폭한 멧돼지를 내려보내 국토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멧돼지를 잡기 위해 내놓으라 하는 영웅들이 총출동한다. 왕의 아들이자 창의 달인이며 아탈란테에게 반해버리는 멜리아기스, 제우스의 아들 폴룩스, 헤라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신화 대표 영웅인 테세우스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사냥의 화신 아탈란테가 합류한다.
루벤스가 그린 ‘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하는 아탈란테와 멜리아기스’는 바로 이 일화를 다루고 있다. 화면 중앙에 멧돼지와 사냥개가 있고 바로 그 뒤에서 아탈란테가 활을 날리고 있다. 그 녀 뒤편에는 말을 타고 쫓아오는 멜리아기스도 보인다. 미쳐 날뛰는 멧돼지에게 처음으로 화살을 명중시킨 사람이 바로 아탈란테라고 한다. 그림을 보면 활을 맞은 멧돼지가 주춤하는 사이 사냥개들이 달려들고 있다. 잠시 후 멜리아기스가 창으로 멧돼지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 두 다리로 달리며 멧돼지를 추격하는 아탈란테와 말을 타고 쫓아오는 멜리아기스 >
이 그림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멜리아기스는 말을 타고 있는데 아탈란테는 두 다리로 달리고 있을까. 빠른 속도로 폭주하는 멧돼지를 추격하려면 말이 유리할 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아탈란테의 특기가 바로 ‘달리기’ 였기 때문이다. 멜리아기스나 테세우스 같은 쟁쟁한 영웅들이 말 위에 오르며 아탈란테에게 물었을 것이다. “빨리 말에 안 타고 뭐 해요?” 무릎과 발목을 돌리며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던 그녀는 쿨하게 대꾸했으리라. “그런 느려 터진 거, 답답해서 못 타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바람처럼 달려 나가며 활을 당기는 아탈란테를 상상해보라. 정말 멋지지 않은가!
루벤스의 이 작품은 사실 울창한 숲을 그린 풍경화에 가깝다. 바로크 시대에는 풍경화를 저급한 장르로 취급했다. 그러다 보니 풍경화를 그릴 때 은근슬쩍 성경이나 신화의 일화를 조그맣게 삽입하는 수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 작품에서도 그런 의도가 느껴지지만 루벤스의 솜씨는 화면을 가득 채운 숲 속 정경 못지않게 자그마한 아탈란테의 모습에도 집중하게 만든다. 풍경과 신화를 은밀하게 결합한 당시 관습과 루벤스가 뿜어내는 바로크 아우라가 만나 절묘한 걸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 폭풍 속에서 벌어지는 사냥의 시간, 여신 디아나
<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 사냥의 여신, 디아나 >
그리스 신화 속 여전사 이야기의 마지막 주인공은 디아나이다. 디아나는 앞서도 애기한 아르테미스 여신의 로마 버전이다. 디아나는 사냥의 여신이자 야생동물의 여신 그리고 달의 여신이다. 그리스와 로마 지역의 신들이 혼합되며 여러 가지 상징을 한 몸에 간직하게 된 것이다. 디아나는 소녀들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버려진 아탈란테를 보살펴 준 신이 다름 아닌 디아나(아르테미스)였던 것이 이해가 간다.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는 세로로 길쭉한 전신상의 모습으로 디아나 여신을 그려냈다. 단출한 구성이지만 여신을 상징하는 다양한 상징과 화가의 훌륭한 기술이 녹아든 걸작이다. 먼저 여신의 머리 위로 보이는 희미한 초승달은 그녀가 달의 여신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그녀 곁에 있는 사냥개, 왼손의 활, 허리에 찬 화살통은 모두 사냥의 여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여신의 피부가 유달리 흰데 오라치오 그림 손 인물들의 피부색이 다른 화가에 비해 하얀색을 띠고 있긴 하다. 화가의 평소 스타일이 반영된 하얀 피부는 마침 달의 여신 디아나에게 잘 어울린다. 태양이 금색 계통의 노란빛을 발산한다면 달은 은색 톤에 가까운 하얀빛을 내뿜지 않는가. 게다가 디아나는 차갑고 냉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따뜻한 색감보다는 다소 냉정해 보이는 하얀색이 더 디아나 답다.
< 임박한 폭풍우를 암시하는 검은 구름과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 >
조금 더 그림을 들여다보자. 디아나 여신의 머릿결과 옷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만약 화창한 하늘 아래 여신이 서 있다면 여신 옆에서 선풍기를 틀고 있는 것 마냥 어색하겠지만 구름 낀 하늘 덕에 이 장면은 자연스럽다. 즉 여신은 비바람이 몰려오는 언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머릿결은 여신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머릿결이 단순하게 뒤로 쭉 뻗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살짝 위로 올라간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한 편 그녀의 몸은 상당히 뒤틀려 있다. 얼굴과 상반신은 왼쪽으로 틀어져있는데 왼쪽 발은 정면, 오른쪽 발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이런 포즈를 ‘피구라 세르펜티나(Figura Serpentina)’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뱀 포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뱀처럼 몸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신 옆의 사냥개도 고개를 심하게 돌리고 있다. 화가가 인체를 과도하게 왜곡하곤 했던 매너리즘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림 속 여신의 모습이 워낙 아름다워 앞서 보았던 루벤스 그림 속 여전사들 같은 박력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상상력을 동원해보면 사냥의 여신다운 포스를 느낄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림 속 날씨는 폭풍우 직전이다. 아마 낮은 천둥소리도 이미 들려오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내로 피신하고 있을 텐데 여신은 거꾸로 들판으로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한 손에는 활을 들고 한 손으로는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고동을 불며 사냥개와 몰이꾼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역시 사냥은 폭풍우 속에서 해야 제 맛이지. 오랜만에 비바람 뚫고 화살 좀 날려볼까” 여신의 호연지기 앞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 빠르고 날카롭게, 강한 그녀들을 위한 테마곡
< 영화 속 원더우먼 >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종종 매력적인 여전사를 발견할 수 있다. 에일리언의 리플리,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매드맥스의 퓨리오사. 최근에 가장 유명한 영화 속 여전사는 아마도 원더우먼일 것이다. DC 코믹스의 유서 깊은 히로인인 원더우먼은 갤 가돗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다시 한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슈퍼맨이 크립톤 행성에서 왔고 아쿠아맨이 아틀란티스 왕국에서 왔다면 원더우먼은 어디서 왔을까? 원더우먼은 바로 루벤스 그림 속에서 보았던 아마존족의 공주이다.
영화 원더우먼은 액션도 멋있지만 OST가 원더우먼의 포스를 끌어올리는 데 제대로 한몫한다. 그중에서도 ‘원더우먼의 분노(Wonder Woman’s Wrath)’는 걸작이다. 제목 그대로 원더우먼의 분노가 폭발하는 시점, 그러니까 액션이 시작될 때면 이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는 타악기 리듬은 아마존 족의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킨다. 음악이 시작되고 1분 20초가 지나면 강렬한 메인 멜로디가 나온다. 투쟁심을 자극하면서 신화적인 신비스러움이 가미된 이 멜로디는 압권이다. 2분 5초 정도가 되면 속도와 키를 모두 올려서 메인 멜로디가 반복된다. 원더우먼 테마는 여성 영웅, 즉 히로인에게 더없이 어울린다. 그 유명한 슈퍼맨 테마와 비교하면 확연히 그 점을 알 수 있다. 슈퍼맨 테마가 장엄하고 육중한 저음역 음악이라면 원더우먼 테마는 – 아탈란테처럼 – 날렵하고 날카로운 고음역 음악이다.
영국 작곡가 루퍼드 그레이슨이 작곡한 이 곡은 여러 음악가들을 매혹시켰다.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꼬네와 함께 영화음악 빅 쓰리로 불리는 한스 짐머는 이 곡의 멜로디를 차용해 ‘배트맨 대 슈퍼맨’의 원더우먼 테마(Is She with you?)를 만들었다. 세계 최정상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인 드림 시어터의 기타리스트, 존 페트루치도 이 곡을 일렉기타 버전으로 편곡해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한다. 이 곡은 메탈 기타리스트의 피를 끓게 할 만큼 힘이 넘친다.
앞서 스파르타 군의 군가가 메탈리카 음악이라고 애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아마존 여인들의 군가로서‘원더우먼의 분노’만큼 어울리는 곡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