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미술 감상하는 방법을 딱 하나만 알려달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지 마세요.” 이것 하나만 실천해도 미술 감상의 새로운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프라도 개관 20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미구엘 팔로미로 프라도 관장은 촬영 금지에 대한 철학을 애기한 바 있다.
첫 째, 방문객들이 스마트폰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미술을 감상하기 바란다는 것이고 둘째, 셀프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인해 다른 관람객이 지장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타인을 위한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든 타인을 위해서든 안 찍는 것이 좋다.
우리가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유는 진품을 감상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사진으로 작품을 보려 한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럽 여행을 갈 필요가 없다. 미술관 홈페이지에 웬만한 작품은 다 올라와 있다.눈앞에 있는 진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사진 찍기에 공을 들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작품이 좋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얘기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다시 애기 하지만 웬만한 작품은 인터넷에 다 있다. 전문가가 작업한 고해상도 사진을 놔두고 반드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작품이 아니라 소위 셀카를 찍는 분도 있다. 이 경우에는 더더욱 작품에 집중할 수 없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목적이 ‘감상’이 아니라 ‘추억 남기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라도 관장이 얘기했듯 다른 관람객에게 지장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조금 더 얘기해보자. 사진도 찍고 감상도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게 되면 감상은 뒷전이 되기 쉽다. 사진은 묘한 착각을 준다. 작품을 사진으로 담으면 마치 그 작품을 소장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천천히 들여다보지 않고 ‘나중에 사진으로 다시 보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금세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당연한 애기지만 사진은 진품의 아우라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작품에 집중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집중해서 보다 보면 얼핏 보았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다양한 요소가 눈에 들어온다. 인물의 표정, 인물 너머의 배경, 색채, 구도, 질감,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 미술 감상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5. 가이드를 활용하라
유럽의 대형 미술관을 방문하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거나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거나 그냥 혼자서 보거나. 미술에 대해 친숙한 분이 아니라면 아무 설명도 없이 둘러보는 방법은 추천하지 않는다. 배경 지식이 없이는 미술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것이다. 전문가는 관련 학위 소지자일 수도 있고 다양한 경력을 통해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일 수도 있다. 가이드 섭외는 신중해야 한다. 훌륭한 가이드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가이드도 적지 않다.
훌륭한 가이드는 팩트를 넘어 팩트가 주는 의미까지 전달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이드는 달달 외운 몇 줄만 전달한다. 훌륭한 가이드는 미술관에 걸려있는 어떤 작품이라도 설명해 내지만 그렇지 않은 가이드는 ‘대표작’ 옆에 걸려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훌륭한 가이드는 미술 자체를 좋아하게 만들어 주지만 그렇지 않은 가이드는 미술관에 있는 몇 시간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좋은 가이드를 찾는 데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말자. 가이드의 과거 경력, 가이드에 대한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면 좋은 가이드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유명한 미술관은 대부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한다 >
만약 좋은 가이드를 찾기 힘들거나 혼자서 감상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이라면 오디오 가이드도 괜찮은 선택이다. 오디오 가이드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째, 다양한 작품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가이드 투어는 보통 대표작 위주로 설명하지만 오디오 가이드는 더 많은 작품에 대해 해설을 들려준다.
둘째, 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 오디오 가이드의 정보가 틀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작품에 대한 지식은 계속해서 변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10년 전 출판된 책에 적힌 글들이 지금에 와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미술관의 공식 오디오 가이드는 대부분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셋째, 자유롭게 시간 조절이 가능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충분히 감상할 수 있고 피곤하면 언제든 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