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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재 Jul 02. 2023

유럽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 - 카페를 이용하라

8. 카페를 이용하라


'플란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죽을 때까지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은 딱 두 점이었다. 루벤스의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유럽의 대형 미술관에는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림에 필적하는 작품들이 어마하게 쌓여있다.


네로가 루브르 방문한다면 1주일은 나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우리가 플란다스 소년만큼의 감수성은 없더라도 2-3시간 만에 수많은 걸작을 훑어보는 것은 너무 아쉽다. 유럽 각 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을 방문한다면 종일 그곳에 머물러 보자.

    

< 빈 미술사 박물관 카페. 개인적으로 방문해 본 미술관 카페 중 가장 아름다웠다. >


미술관 카페 이야기를 하려다 서론이 길어졌다. 미술관에 종일 있기 위해서는 카페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미술 감상은 체력이 필요한 활동이다. 2시간 정도 감상하다 보면 몸도 지치고 목도 마르다. 그러다 보면 미술관에서 나가 카페라도 가고 싶어 진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카페는 미술관에도 있다! 당신이 - 미술관에 있는 카페를 놔두고 - 미술관 밖으로 카페를 찾아 나간다면 언제 다시 이런 멋진 장소를 방문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섣불리 밖으로 나가지 말고 미술관 카페로 향하자. 멀리 갈 필요도 없고 다시 대작들과 마주할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미술관 카페의 이점은 이 외에도 있으나 일단은 미술관에 오래 머무르기 위해서 – 궁극적으로는 이왕 유럽까지 온 이상, 최대한의 예술적 경험을 하기 위해서 - 꼭 필요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점심시간 무렵이라면 가볍게 식사를 해도 좋다.     


< 오르세 미술관 카페 'La Campana'. 이름 그대로 종으로 장식했다. >


미술관과 카페는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미술을 보다 보면 커피가 생각나고 커피를 마시면 예술적 감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커피를 사랑했던가. 베토벤은 커피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커피 60알을 정확히 세어서 커피를 내렸다고 한다.


우리가 커피를 마신다고 운명 교향곡을 작곡할 순 없지만 작품의 가치를 더욱 예리하게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커피에 더해 달콤한 디저트로 당충전까지 완료하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카페에 앉아 감상했던 작품을 복해 보거나 이후 관람하게 될 작품을 미리 검색해 보는 것도 좋다. 앞서 애기한대로 작품에 대해 틈틈이 기록해 두었다면 이럴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화가나 작품에 대해 검색해 보고 자세한 내용을 읽다 보면 다시 그 작품이 보고 싶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그림 앞으로 다시 찾아가자. 감동이 몇 배나 늘어날 것이다.       


< 프라도 미술관 카페. 비교적 단출하고 모던하다. >

   

미술관 카페는 조용한 장소가 아니다. 음식이 특별하지도 않다. 소위 말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는 거리가 있다. 보통 카페를 오아시스에 비유한다. 사막 같은 일상에서 한 발짝 벗어난 나만의 쉼터. 하지만 미술관에 있는 카페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일상을 벗어난 곳이 오아시스라면 미술관 그 자체가 오이시스다. 그렇다면 미술관 카페는 어떤 공간일까. 그곳은 오아시스 입구에 있는 대기소이다. 미술관이라는 물웅덩이의 푸르름을 더 느긋하고 깊게 즐기고 싶다면 가끔 대기소로 돌아와 몸과 감수성을 충전해 보자.          




9. 기념품을 구입하라.     


유럽 미술관을 즐기는 10가지 방법을 제시하면서도 그중에서 ‘기념품을 구입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소비를 부추길 의도도 없고 특정 제품을 홍보할 의도도 없다. 우리는 대부분 여행 중 무엇인가를 구입한다. 어차피 쇼핑을 한다면 미술관은 괜찮은 선택이다.     


여행지에서 쇼핑을 할 때는 둘 중 하나를 고려하게 된다. 기념성 혹은 실용성. 여행지 이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I Love N.Y. 같은 - 볼펜, 마그넷, 티셔츠 같은 것은 기념성이 강한 물건들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기념품은 갈수록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자기가 쓰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망설여진다. 잘 못 하면 주고도 욕먹는다.


다음으로는 실용성이 강한 물건이 있다. 유럽 여행이라면 이름 있는 의류나 패션 액세서리, 화장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할 수 있으니 좋지만 여행의 추억을 담기는 부족하다.  


< 프라도의 마우스 패드. 프라도 홈페이지 이미지 >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굿즈는 기념성과 실용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문구류가 있다. 미술작품으로 디자인 한 마우스패드나 파일홀더는 세련되기도 하고 실제로 자주 사용하기도 한다. 자신이 사용한다면 유럽에서의 추억을 떠올려 줄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선물한다면 특별한 물건이라는 인상도 줄 수 있다. 문구류는 그리 비싸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책갈피를 권해 드리고 싶다. 본인은 책갈피를 여러 종류 가지고 있는 데 그중 미술관에서 구입한 책갈피가 가장 마음에 든다. 책이라는 매체에는 미술품으로 디자인한 책갈피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책갈피 역시 아주 저렴하다.     


< 개인적으로 미술관에서 구입한 책갈피들 >


미술관 샵에서는 소장품을 고화질로 인쇄해주기도 한다. 미술관에서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 있었다면 인쇄본으로 구입해 가는 것을 권유한다. 집안 인테리어로 그림만큼 좋은 아이템도 드물다. 한국에서 액자로 제작될 만큼 인기 있는 작가는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모네, 르노와르, 고흐, 마티즈, 클림트... 익숙한 화가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이왕 미술관에 갔으니 자기만의 취향을 담아 그림을 골라보자.


엽서도 괜찮다. 사무실 컴퓨터 옆에 붙여 놓으면 벽면에 걸어놓은 커다란 액자 이상으로 멋진 장식이 된다. 사무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잠시 그림을 보며 한숨 돌리자.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책을 놓치지 말자. 미술관에는 다양한 화집을 판매한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귀한 자료가 많다. 특히 미술관 공식 가이드북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한국에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들이 여럿 있지만 공식 가이드 북은 차별점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해설하는 작품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미술관에서 구입한 책들 >


프라도의 한국어 가이드 북은 번역 수준도 높고 수록 작품도 다양해서 만족도가 높다. 루브르 가이드북은  번역이 다소 아쉽지만 수록 작품의 양과 다양성은 훌륭하다. 오르세 가이드북은 강추이다. 번역이 좋고 무엇보다 19세기 후반 미술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보통 시중에서 판매되는 오르세 가이드북은 너무 인상파에 치우쳐 있다. 공식 가이드북은 관학파, 인상파, 바르비종, 나비파, 상징주의 등 19세기 후반의 수많은 미술 사조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18세기 유럽인 특히 영국인들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그랜드 투어를 다녀왔다는 애기는 유명하다. 그랜드 투어에 나섰던 영국인 대부분은 자신을 그린 초상화나 베네치아 풍경화를 구입했다고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휴가철이면 유럽 미술관을 방문하고 있으니 18세기에는 귀족이나 가능했던 호사를 비교적 손쉽게 누리고 있는 셈이다.


다만 우리는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작품을 주문할만한 여력은 없다. 하지만 미술관 굿즈만으로도 ‘21세기판 그랜드 투어’를 기념해 볼 수 있다. 미술관에서의 ‘그랜드’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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