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ve me. 마드리드 근처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이 있습니다. 라 그랑하(La Granja) 궁전입니다. Believe me." 말라가 여행 중 크리스털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대로 귀족 집안이었던 듯한 분위기를 품기던 박물관 주인이 직접 안내해 주었는데 평소 사람들이 자기 말을 안 믿어주기라도 하는 듯, Believe me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분이 자신의 콜랙션을 소개하는 도중에 라 그랑하 궁전을 격찬하는 것이 아닌가. 그분이 소장하고 있는 크리스털 콜랙션을 보니 그분의 심미안을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드리드로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그랑하 궁전을 방문하였고 그분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랑하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단언하지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 후보 중 하나로는 꼽을 만했다. 이 자리를 빌려 말라가의 그분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I believed you. And Thank you.”
줄여서 라 그랑하라고 부르는 라 그랑하 데 산 일데폰소(La Granja de San Ildefonso) 궁전은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100km가량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수도교와 알카사르 궁전으로 유명한 세고비아와 가깝다. 과다라마(Guadarrama) 산맥 속에 자리 잡은 이 궁전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런데 궁전의 모습이 왠지 스페인 다른 건축에서 보아오던 모습과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그랑하는 프랑스 왕궁을 모델로 하였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궁이 프랑스 양식을 가지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기회에 간단히 통일 스페인 왕국이 성립된 16세기 이후의 스페인 왕실 역사를 알아보자.
< 라 그랑하 궁전 정원 >
유럽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왕가가 두 개 있다. 바로 합스부르크와 부르봉이다. 합스부르크는 15세기 이래 신성로마 제국의 제위를 독점하다시피 한 가문이고 부르봉은 16세기 앙리 4세 이후 이어진 프랑스의 왕가이다. 스페인은 이 두 왕가가 번갈아 통치하였다. 16세기 초부터 17세기까지 200년간은 합스부르크가, 그 이후는 부르봉 왕가가 다스렸다. 한 때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왕실이 폐지되었던 적도 있지만 1975년 프랑코 사후, 부르봉 왕가가 복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현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는 부르봉 가문이다. 프랑스는 왕정이 폐지되었으니 부르봉 왕가의 명맥은 이웃나라 스페인에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17세기 후반,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가 자녀 없이 사망하자 후계자 문제가 불거진다. 카를로스 2세는 유언을 통해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를 후계자로 지목한다. 스페인과 프랑스 왕실은 혼맥으로 맺어져 있었는데 펠리페는 카를로스 2세의 선왕, 펠리페 4세의 증손자였다. 하지만 승계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태양왕의 영토 욕심에 바람 잘 날 없던 유럽 대륙은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유럽 초강대국의 탄생을 의미하였고 이는 유럽 다른 국가에게는 공포의 시나리오였다.
일단 오스트리아 쪽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계승권을 주장했고 - 여기도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 프랑스에 반대하는 것이 곧 나라가 흥하는 길이라 여기던 영국이 오스트리아와 한 편이 되어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이것이 18세기 벽두에 유럽의 지형도를 바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다. 전쟁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결국 태양왕의 손자가 왕위에 오른다. 혹 프랑스가 전쟁에 이겼다는 오해가 있을까 봐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어느 한쪽이 전쟁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서로 합의로 끝나게 된 것이다.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알만사 전투 >
부르봉 가문 출신의 첫 번째 왕이 된 펠리페 5세는 우울증이 있었다고 한다. 우울증 때문인 지 원래 자연을 좋아해서 그런 지 몰라도 왕은 사냥을 즐겼다. 왕이 선호한 사냥지는 과다라마 산맥 인근 발사인(Valsain)이란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이미 중세 때부터 수려한 경관으로 왕의 사냥터로 사랑받던 곳이다. 발사인 지역의 경관에 반한 펠리페 5세는 이곳에 왕궁을 짓기로 결심한다. 그 유명한 베르사유에서 태어나고 자란 펠리페 5세는 베르사유 풍의 궁전을 짓도록 명한다. 프랑스 풍의 궁전을 위해서는 프랑스 예술가가 필요한 법. 그랑하 궁전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조각상들은 프레밍(Fremin), 티에리(Thierry)를 비롯한 프랑스 조각가들의 작품이다. 아울러 정원의 디자인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책임자였던 앙드레 노트르(Andre de Notre)의 구상을 참조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그랑하 궁전이 프랑스 풍의 모습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그랑하는 종종 베르사유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이제 궁전 안으로 들어가 보자. 다시 말하지만 그랑하는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베르사유가 정원이 유명한 것처럼 - 물론 내부도 아름답다 - 그랑하도 정원이 유명하다. 정원은 울창한 나무 숲과 더불어 21개의 분수와 수십 개의 야외 조각을 품고 있다. 21개의 분수 모두를 돌아보려면 족히 1만 보는 걸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분수는 일부 기간 - 주로 여름의 주말 혹은 중요 축제일 - 에만 작동된다. 분수를 상시적으로 가동 하기에는 물이 부족하다고 한다. 분수가 작동하는 날이라 해도 모든 분수를 한 번에 작동하는 경우는 1년에 3회 이내이다. 분수 가동 일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실망할 필요 없다. 분수가 작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수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분수가 작동하는 날은 사람들이 너무 붐비기 때문에 한적한 산책을 원하는 분은 오히려 이 날을 피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모든 분수가 아름답지만 몇 몇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명성의 분수(Fuente de Fama)'를 보자. 조각상의 가장 위에 말을 타고 있는 천사가 바로 명성을 상징한다. 명성이 올라탄 말은 네 명의 인물을 밝고 서 있다. 네 명의 인물은 각각 질투, 야비, 흉악, 무지를 상징한다.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이 네 가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애기일 수도 있고 명성을 얻으면 이 네 가지가 따라붙기 쉬우니 이를 경계하라는 애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유달리 수직으로 뻗어 있는데다 42미터까지 치솟는 물줄기는 평평한 곳에서 솟구치듯 올라가는 명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도 정점에 이르면 맥없이 곤두박질친다. 인간세상에서의 명성도 영원히 올라가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명성의 분수 >
'디아나의 목욕(Fuente de los Banos de Diana)'은 21개 분수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분수이자 가장 물을 많이 소비하는 분수이다. 이 정원의 총괄 책임자는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디아나는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이기 때문이다. 왕이 좋아하는 ‘사냥’의 여신에게 가장 풍부한 물을 바치는 센스를 보라. 게다가 목욕과 분수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 조합인가. 앞서 명성의 분수에서 치솟는 물이 명성을 떠올르게 한다면 디아나의 분수는 샤워실에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떠올리게 한다. 디아나는 사냥을 한 바탕 마치고 욕실에서 시원하게 땀을 식히고 있다. 디아나 조각 상 주변에는 여신을 시중드는 님프와 사나운 사냥견이 보인다. 이 분수가 작동하는 것을 본 왕은 “3분의 즐거움을 위해 3백만 레알을 사용했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3백만 레알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60억 원이다. 왕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대구를 이뤄서 한 마디 덧붙였다. “Ni le costo tanto, Ni le divirtio tan poco.” 직역하면 “그렇게 많은 비용도 아니고 그렇게 작은 즐거움도 아니다.”정도로 해석되고 의역하면 ‘이 정도 즐거움이라면 이 정도 비용은 아깝지 않다.’ 가 될 것이다. 당시 왕실의 호사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대사이다.
< 디아나의 분수 >
분수 중에 가장 면적이 넓은 분수는 ‘말의 길(Fuente de la Carrera de Caballos)'이다. 정확히 말하면 길을 따로 차례로 펼쳐져 있는 세 개의 분수를 통칭하여 그렇게 부른다. 말의 길은 넵툰(Neptuno), 마스카롱(Mascaron), 아폴로(Apolo) 분수로 이어진다. 넵툰 분수는 두 마리 히포 캄포스(상반신은 말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신화 속 동물. 인어가 아닌 마어인 셈)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있다. 바다의 신이기에 정원에서 가장 넓은 연못에 배치해 둔 것이리라. 넵툰 분수와 아폴로 분수를 이어주는 계단에는 마스카롱(분수나 기둥에 장식하는 기괴한 인면) 분수가 있다. 가장 상단의 아폴로 분수를 보면 아폴로가 자신이 무찌른 거대한 뱀 파이톤을 밝고 서 있다. 아폴론 옆의 여신은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이다.
< 말의 길 분수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
< 넵툰의 분수 >
< 아폴로의 분수 >
이 궁전의 정원이 너무 좋아 계절별로 방문하였다. 그 중 가을이 가장 좋았다. 11월초에 정원을 거닐다보니 노부부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휴일이면 여전히 아름다운 데이트 코스를 찾아 방문하는 그분들의 금슬이 부러웠다. 계절이 주는 선물을 함께 나누고픈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도 많았다.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유모차로 편안히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잘 알고 있다. 엄마, 아빠의 웃음소리와 곱게 물든 단풍 빛깔 속에 아기는 마냥 행복하지 않았을까. 결혼식 들러리로 온 듯, 흰 드레스를 차려 입고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는 그녀들도 마음을 화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학교 교실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마음껏 환호했다. 남녀노소 모두 저마다의 감성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 정원을 산책 중인 노부부 >
< 웨딩 촬영 중인 신부와 친구 >
< 자연과 조각이 어우러진 늦가을 정원 >
정원 산책을 마치고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테피스트리 콜랙션을 만날 수 있다. 테피스트리를 감상한 후 건너편으로 입장하면 커다란 집단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이 왕궁을 짓도록 명령한 펠리페 5세의 가족을 그린 작품이다. 진품은 프라도 미술관에 있고 이 곳의 그림은 복제품이다. 중앙에 앉아있는 두 사람은 펠리페 5세와 그의 두 번째 아내, 이사벨 파르네제이다. 펠리페 5세 옆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후계자인 페르난도 6세이고 화면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는 페르난도 6세의 후계자 카를로스 3세이다.
< 페리페 5세의 가족 - 루이 미셀 반 루 >
그랑하는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장소이다. 마드리드에 대한 글을 쓰고자 했을 때 마드리드와 인근의 숨겨진 보물들을 적극 알리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랑하는 그 의도에 딱 맞는 장소이다. 그랑하는 세고비아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이다. 세고비아를 방문하는 김에 함께 방문해도 좋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따로 하루 방문해도 좋다. 기본적으로 그랑하는 산책하느라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세고비아와 그랑하를 다 보기에는 조금 피곤하긴 하다. 이 글 덕분에 그랑하를 방문하게 되고 또 그 매력에 흠뻑 빠지실 분들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