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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을 창조하다.

마드리드 성당에서 체험하는 압도적인 회화의 세계

by 강명재

산 안토니오 데 로스 알레마네스 성당은 마드리드의 숨겨진 보석이다. 마드리드 안내 책자에 소개되는 경우도 드물고 현지인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건물 크기는 다른 관광지에 비해 자그마한 편인 데다 겉모습도 수수하다. 애써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건물이다. 하지만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바로크 회화가 방문자를 압도한다. 성당 안은 천장과 사방 벽면 가릴 것 없이 프레스코 화로 가득 매워져 있다.

< 산 안토니오 데 로스 알레마네스 성당 내부 >

이 성당은 1624년에서 1633년 사이에 세워진 건물이다. 당시 포르투갈은 스페인이 다스리고 있었고 자연히 마드리드에는 포르투갈인이 다수 거주했다. 당시 스페인 왕이었던 펠리페 3세는 포르투갈인들을 위해 병원과 성당을 각각 건립하였다. 병원은 육체를 돌보고 성당은 영혼을 돌본다는 의미이다. 포르투갈인을 위한 시설물이었기에 그 이름도 ‘포르투갈인들을 위한 안토니오 성인’즉 ‘산 안토니오 데 로스 포르투게스(San Antonio de los portugues)’라고 지었다.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 태생의 프란시스코회 신부였다.


17세기 후반기에 접어들어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 성당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어떤 이름이 적합할 것인가. 당시 마드리드에 새로 정착한 사람들 중에는 독일인이 많았다. 당시 국왕인 펠리페 4세의 두 번째 부인이 독일 출신인 마리아나(Mariana)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성당의 이름은 ‘독일인을 위한 안토니오 성인’이라고 이름을 바꾸게 된다. 성당 이름에서 포르투갈인이 독일인으로 바뀌었지만 안토니오 성인은 살아남았다. 성당 안의 장식이 온통 안토니오 성인과 관련하여 만들어져 있는데 이를 다시 독일의 성인으로 바꾸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성당 안은 바닥을 제외하고는 온통 프레스코화로 채워져 있다. 자세히 보면 이 프레스코화들은 회화의 평면성을 뛰어넘어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트롱프뢰유가 사용되었다. 트롱프뢰유는 ‘눈속임 기법’이라고 해석된다. 세밀한 묘사를 통해 그림이 아니라 실재의 사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천장 위에 그려진 웅장한 대리석 기둥이나 벽면에 그려진 화병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안토니오 성인의 기적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테피스트리로 묘사된 점이다. 그림의 외곽을 자세히 보면 테피스트리 천을 알아볼 수 있다. 그림 상단의 천사들이 테피스트리를 잡고 펼쳐 보이는 듯하게 묘사한 것이다. 소설로 치자면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액자소설 같다고나 할까. 다른 예를 들자면 그림을 원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 속의 그림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화가는 그림만으로 교회 안을 대리석 기둥, 화병, 테피스트리를 채워 넣었다. 화가가 창조해 낸 것은 사물만이 아니다. 땅 위에서 일어난 성인의 기적과 하늘 위에 나타난 성모와 성인까지. 이 교회는 화가들이 붓과 물감만으로 만들어 낸 하나의 완벽한 세계이다.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회화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테피스트리 : 색실을 짜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직물공예

< 천사들이 테피스트리를 펼쳐 보이고 있다 >
< 웅장한 기둥 그림이 실제 대리석 같이 같이 느껴진다. >
< 화병이 실제 장식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

여담으로 한 가지 얘기하면 르네상스 이후 화가와 조각가 사이에는 소위 기싸움이 있었다. 회화와 조각 중 어느 예술이 더 위대하느냐는 것이다. 조각이 회화보다 위대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입체성이었다. 화가는 조각가가 자랑하는 입체감은 화가도 해 낼 수 있다고 응수했다. *그리자이유’나 트롱프뢰유 같은 것들이 평면에 재현해 낸 입체감의 예이다. 이 성당에 그림을 채운 화가들이 조각가를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체감을 표현하는 자신의 기술에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자이유 : 회색조로 명암과 농담을 나타내는 것. 조각을 닮게 그리는 경우도 그리자이유라고 명명한다.


< 얀 반 에이크의 수태고지. 그림으로 조각을 표현한 대표적인 그리자이유 작품이다. >


이제 그림들을 자세히 보자. 일단 천장을 올려보자. 안토니오 성인이 성모 마리아 앞에 두 팔을 벌린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타원형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기둥들로 인해 천장은 실제보다 더 높아 보인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출신의 성인들이 그려져 있다. 천장화는 스페인 왕실 화가인 후안 까레뇨 미란다(Juan Carrenyo de Miranda)와 프란시스코 리치(Francisco Rizi)가 그린 것이다. 성당 안의 의자에 앉아 찬찬히 천장 위를 올려다보면 지금 내 눈 앞에 성모와 성인이 나타난 듯한 느낌이 든다. 캔버스 속의 성모보다 저 멀리 천장 프레스코화 속의 성모가 더 실감 나는 것은 왜 일까. 성모나 성인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상상해 보자. 아무래도 땅 위에서 보다는 하늘에서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 눈높이에 걸려있는 그림보다 저 멀리 천장 위에 그려진 성모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 천장 프레스코 모습 >

이제 시선을 벽면으로 돌려보자. 앞서 애기 한대로 테피스트리 그림 형식으로 안토니오 성인이 행한 8가지 기적이 묘사되어 있다. 벽면의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인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의 작품이다. 루카 조르다노는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왕이었던 카를로스 2세(Carlos)의 초청으로 스페인을 찾았고 왕실 관련 작품에 많이 관여하였다. 루카 조르다노는 여러모로 이탈리아 화가답다. 일단 색채가 밝고 인물 묘사가 부드럽다. 그리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화가가 유독 많았던 이탈리아 출신답게 작업 속도가 아주 빨랐다고 한다. 속도가 빠르다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작품의 완성도도 아주 높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업무의 ‘질’과 ‘양’은 공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 천재적인 화가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진 화가이다.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매료되는 것은 바로 이런 천재성 때문이다.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8가지 기적 중 흥미로운 기적을 소개하자면 일단 입구 왼쪽에 있는 가짜 시각 장애인 이야기가 있다. 양팔을 벌린 안토니오 성인 앞에 한 새내가 눈가에 피를 흘리며 앉아있다. 안토니오 성인이 환자를 치료한 이야기로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꽤나 엄중하다.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람이 안토니오 성인을 찾아와 눈을 뜨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한다. 하지만 이 사람은 사실 시각 장애인이 아니었으나 성인을 조롱하기 위해 그런 행세를 한 것이다. 과연 이 사람에게는 어떤 기적이 일어났을까. 놀랍게도 두 눈이 뽑혔다고 한다! 성인을 조롱한 대가는 크다.


< 성인을 놀린 대가를 치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 >


다음으로 정면 예배단의 바로 오른쪽에 있는 그림을 보자. 안토니오 성인이 아이를 안고 있고 그 앞에 남녀가 놀란 모습을 하고 있다. 성인이 죽은 아이를 살려내거나 치료한 애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지로 가톨릭 성인과 관련된 그런 이야기들이 많고 이 성당 안에도 아이를 치료한 기적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추측이 빗나갔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친자 확인(?)’이다. 한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며 아내가 간통하여 낳은 아이라고 주장했다. 유전자 검사도 없고 여자의 신분이 불안정했던 그 시절에 이 여인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는 극히 힘들었으리라. 그때 안토니오 성인이 나선다. 성인이 아이를 안고서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말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 순간 갓난아이는 열 살 아이의 목소리로, 스타워즈의 명대사 "I am your father"와 비슷한 대사를 남긴다. 이 아이는 남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내 아버지이다."


< 친자 확인의 기적을 일으키는 성인. 아이가 사내를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다. >


이 성당에서는 그림이 단연 주인공이지만 흥미로운 조각품도 볼 수 있다. 벽 면의 그림들 사이에는 아치형 재단이 있고 거기에는 조각으로 된 성모와 성인들이 모셔져 있다. 정면을 보고 오른쪽에 있는 세 개의 조각은 스페인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렸던 알론소 카노(Alonso Cano)의 작품이다. 세 개의 조각 중 ‘외로운 자들의 성모’라고 불리는 조각상은 눈물을 흘리는 성모의 표정이 너무나 사실적이라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는 성모의 존재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떠나고 처절하게 외로워질 때. 그때서야 외로운 나를 불쌍히 여기는 성모의 눈물을 보게 될 것이다.


< 알론소 카노 - 외로운 자들의 성모 >

이 성당은 18세기 초부터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줬다고 한다. 당시 나눠졌던 음식은 생수와 흰 빵, 삶은 계란이었다고 한다. 현재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성당 입장료인 2유로는 노숙자들을 위한 음식을 마련하는 데 사용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조그마한 성당은 대가들의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예술품을 감상하기 위해 지불하는 입장료는 선행에 사용되고 있다. 분명 이 성당은 애써 찾아낼 가치가 있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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