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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May 16. 2021

나는 에메랄드 같은 사람이다.

보석 인간 시리즈 1.

[단상 - 보석을 취미로 삼으며]


특별히 보석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아는 보석을 말해보라면 몇 가지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금 (보석이 아니다),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진주 정도? 그러나 보석은 정말 다양하다. 나는 이 다양한 보석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사람을 보석에 비유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아몬드 류의 인간은 간단하다.

모두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밝고 유쾌하고 온화하고, 농담을 좋아하지만 단 한 번의 선을 넘지 않으며, 외모도 준수하고 굉장히 똑똑하면서도 정중하고 갈등은 피하지만 불의 앞에서는 적절히 목소리를 내는- 굳이 찾아봐야 그 완벽함이 시샘이 나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까, 정말 완벽한 친구다. 이 친구는 다이아몬드 같은 인간이다. 캐럿 크고, 컷팅이 완벽하고, 내포물 없고 색깔 확실한 완벽한 화이트 다이아몬드. 누구나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하고, 모두가 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캐럿 크고, 등급 높대' 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 그의 가치를 모두가 이해하는, 그는 그런 다이아몬드 같은 인간이다.


루비나 사파이어, 에메랄드는 어떨까.

어떤 면에서는 내가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이 돌들은 귀보석으로 분류된다. 솔직히 정확히 뭘 보고 이렇게 분류하는지는 모르겠다. 저렴한 돌에 속하는 준보석 투어멀린은 색상에 따라서 이 귀보석들보다 캐럿당 가격이 훨씬 높기도 하니까. 아무튼, 이 돌들은 누구나 아는 보석이다. '에메랄드예요' 하면 '그게 뭔데요?' 하는 사람은 잘 없다는 거다. '아, 비싼 거구나' 하겠지. 나는 학벌면에서 여기에 속하는 인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XX대 박사예요' 하면 사람들은 응당 내가 가치 있는 인간이려니 하는 거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보석인 에메랄드를 예로 들어보자.

에메랄드 후가공: 오일 처리 예시 사진

(출처: https://www.gemsociety.org/article/emerald-enhancements-consumer-and-trade-guide/)

에메랄드는 굉장히 약점이 많은 보석이다. 일단, 내구성이 약하다. 세공 과정에서 깨질 염려가 크다. 태생적으로 내포물이 많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깨끗해야 보석의 가치가 높아지는데, 에메랄드는 그런 면에서 더욱 불리하다. 그래서 오일 처리 등을 통해서 (위의 사진에서 보듯) 내부의 inclusion을 줄이기도 한다. 보석의 가치는 당연히 낮아진다.


왜 에메랄드 얘기를 꺼내냐면, 에메랄드가 비싸고 귀한 보석이라는 건 다들 알지만, 같은 에메랄드라도 등급이 천차만별이라는 건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 박사라면 사회적으로 봐주는 어느 정도의 시선이 있다. 근데 ##대 박사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우리 연구실에는 지 능력으로는 논문 제목 한 줄 쓸 수 있을까 싶은 머저리가 오로지 교수가 밀어줘서 다른 사람이 써준 논문으로 박사를 받은 놈이 있다. 나는 IF가 고작 3점대인 논문을 학위 논문으로 간신히 내고 졸업했다. 교과서를 바꾸는 발견을 한 내 사수나 우리 연구실 후배와 내가 같은 대학의 학위증명서를 받았다고 한들, 똑같은 박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여전히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학계를 떠나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에메랄드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들은 내포물이 없고 캐럿 큰 콜롬비아산 에메랄드고, 나는 캐럿만 크고 inclusion이 난리 난 에메랄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에메랄드가 5캐럿이래!' 하면서 값진 줄 알겠지만 실상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야, 사지 마. 그거 퀄리티가 쓰레기야.' 하는 거다.



또 자괴의 늪에 빠졌지만.



그지 같은 에메랄드라도 누군가는 그래서 더 이뻐하더라.

전문적으로 보석을 감정하고 다루는 사람들 말고, 나처럼 취미로 돌을 모으는 사람들 중에 오히려 천연석이 가진 '자연스러운 특징'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티 한 점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깎아놓은 그런 완벽한 돌 말고. 돌에서조차 인간미를 찾는다. 특정 위치에 있는 불순물을 '얼굴'이라고 부른다. 내포물로 희뿌옇게 된 돌의 '느낌'을 좋아한다. 세상에 똑같은 천연석은 없기에 나름의 '특징'을 가진 '내 돌'을 찾는 거다.


나의 내포물은 어떤 걸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에메랄드로 치면 어떤 에메랄드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한 많고, 화 많고, 많이 두들겨 맞았으니 내포물도 그만큼 많겠지. 내가 가진 내포물들은 그저 보석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불순물일까, 더욱 매력적인 특징을 부여하는 어떠한 흔적일까. 학위 과정을 하고 있는 많은 후배들이 방황하고 힘들어한다. 각자의 이유가 다른데 나는 대부분 다 겪어봤다. (진짜 더럽게 재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위로를 할 수 있다. (연구 외적으로) 부침 없이 학위 과정을 마무리한 사람은 모르는 그런 찌질하고 가슴 아픈 상처들 말이다. 나는 젬스톤 시장에서 찾는 에메랄드는 아니라도, 어떤 수집가를 위한 에메랄드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가 가진 그 불순물 때문에 더욱 나를 찾고 있지 않나.


어쭙잖은 정신 승리로 글이 마무리되는 기분이긴 하지만-

사실 처음에 글 쓸 때는, 귀보석의 등급 말고, 준보석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아는 사람만 아는 특별한 보석'에 대해서 말하면서 한국 사회의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나한테는 너무 귀하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글을 길게 쓰면 안 되겠더라. 다음에 또 써야지.


글을 읽는 분들도 나는 어떤 돌일까-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은근히 '내가 가진 장점/강점/가치의 발견에 도움이 된다. 역시 gemstone은 healing energ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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