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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May 21. 2021

만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요.

양자역학의 농담


촉각은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감각이다. 


똑같은 어깨 터치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서 따뜻한 격려가 되기도 하고, 불쾌한 성추행이 되기도 하니까. 낯선 사람과 맨살이 맞닿는 건 상상만으로도 불편한 일이지만, 마사지샵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기꺼이 옷을 벗고 몸을 내어준다. 버스 안에서 낯선 사람과 손등이라도 스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피하지만, 아기를 만나면 쥐기 반사를 기대하며 손가락을 먼저 내밀기도 한다. 조그만 아기의 손이 손가락을 꽉 움켜쥘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행복해진다.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언제부턴가, 손은 세균과 바이러스를 옮기는 캐리어가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어야 하고, 손 소독제, 손 세정제를 수시로 사용한다. 요즘 사람의 손들은, 건조하고 차갑다.


내 기억 속, 옛날의 손은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의 나는 식탐이 있었다.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면 밥을 서너 공기씩 먹곤 했는데, 그러고는 기어이 체했다.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어깨서부터 팔꿈치, 팔뚝을 지나, 손목, 그리고 손가락 끝까지 두 손으로 쭉쭉 쓸어내렸다. 몇 번을 그러고 나서는 손을 쥐어짜서 엄지손가락으로 피를 밀어냈다. 손가락에 보라색이 돌면 실로 몇 바퀴를 동여매고 바늘로 손톱 아래를 쿡 찔렀다. 시커먼 피가 맺히면 실을 풀어줬다. ‘이제 곧 내려갈 거다’ 라며 손바닥으로 등을 한참 동안 쓸어 주셨다. 엄마 손은 따뜻했고, 약손이었다.


그 시절의 나만한 자식을 낳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있는 고향 집과는 차로 4시간이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과식을 하지 않아도 종종 체한다. 소화제를 먹고 뻗어서 누워있노라면 손을 쥐어짜던, 등을 쓸어주던 엄마의 손이 그리워진다. 우리 엄마 약손으로 한 번만 쓸어주면 금방 다 나을 거 같은데. 

야속하게도 촉각은 직접적인 시공간의 공유를 필요로 하기에, 그 손길을 다시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공간 상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면 나눌 수 없는 감각이다.


나는 이것이 늘 서글펐는데, 천체물리학을 공부한 친구와의 대화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 친구의 말은 양자역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키스를 하는 연인의 입술도, 실은 맞닿아있지 않다는 거다. 우리의 입술을 구성하는 원자의 입장에서 보면, 원자핵과 전자는 어마 무시하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원자핵은 닿은 적이 없고, 전자구름 역시 서로를 반발력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직접 닿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저, 전자의 반발력을 닿았다고 느꼈단 거다. 이 이야기는 원자핵과 전자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지를 나타내기 위한 비유지만 나는 여기서 나름 위로가 되는 답을 찾았다. 양자역학의 말장난을 빌리면 ‘닿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묵은 기억 속에서 엄마의 손길을 꺼내어 본다. 

뇌는 그때의 감각을 어렴풋이 재현한다. 

아픈 내겐 그게 치유가 된다. 

역시 과학자의 농담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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