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동반 전시 <네게 보인, 내가 봄> 기획의 기록
다음 달 중순에 일주일 간 용산 하이브 사옥 인근의 갤러리에서 내가 기획한 첫 번째 전시가 열린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압도적으로 우선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기록은 남겨본다.
이번 전시는 일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했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과는 다르다.
단순히 반려견을 대상으로 한 놀이 공간의 개념이 아닌, 개가 아닌 반려인,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들이 전시의 대상이다.
여러 가지 기술과 소재를 이용해서 개가 보는 세상을 구현하고, 사람들이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원래는 공간 컨설팅의 아이디어로 시작했으나, 이런 저런 여건 상 전시로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동물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가장 최근에 키웠던 건 고슴도치인데, 이 친구는 병으로 죽었다.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 왜냐면 나는 또치가 아프다는 걸 꽤 늦게 알아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입맛이 없고, 식욕이 떨어진 것으로만 생각해서 밀웜을 새로 주문한 터였다. 겨울이어서 날이 추워서 그러나 했는데, 어느 날 뒷다리를 끌면서 걷기 시작했다. 근 20년 전이라 고슴도치 같은 소동물을 보는 병원이 없었다. 간신히 집에서 먼 곳의 동물 병원을 수소문해서 갔고, 신장 쪽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수술도, 약물 치료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죽어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수 밖에는. 친구들에게 말할 때는 '지옥이었다'고 간단히 표현하지만, 사실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고통이었다. 지금도 자꾸만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가슴이 옥죈다.
그때 철이 들 듯,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나는 또치 언니였고, 또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주고 또치와 나는 세상 둘도 없는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쩌면 나 혼자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또치가 아픈 동안 미친 듯이 바랐던 게 두 가지가 있다. 또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말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또치의 병을 내 몸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나는 병원 가서 수술이라도 할 수 있으니, 너만 다시 살 수 있다면. 둘다 허황된 생각이었고, 또치를 그렇게 가슴에 묻고, 다시는 반려 동물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것을 보고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지내며 언제부턴가 '보다' 라는 단어에 꽂혔다. '본다'는 것이 시각적인 행위인 동시에 현상에 대한 인식일 수 있다는 사실이 몹시 흥미로웠다. 우리말의 '관점'이 볼 관觀자를 쓰는 것도, 영어에도 POV (point of VIEW)라는 동일한 표현이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인간은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지만,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감각은 시각인가- 하는 질문도.
생물학의 방향에서 보면 또다른 재미있는 지점이 있다. 똑같은 광경이라도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전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뭔가를 볼 때는 빛이 눈의 망막에 맺히고 신경 세포를 통해서 뇌로 전달된 뒤에 뇌에서 빛 정보를 분석해서 어떤 장면으로 해석해낸다. 여기서 사람마다 '다르게 볼 수 있는 지점'이 여럿 생긴다. 안구의 생김새가 약간씩 다를 것이고, 세포의 수, 분포, 종류 등도 약간씩은 다를 거다. 물리적으로 망막에서 받아들이는 빛의 정보부터 차이가 난다. 뇌에서 그 정보를 분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났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을, 반려동물에 적용해 본다면?
반려견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구현한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보게 하는 전시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글이 꽤 길어졌으므로, 그 뒷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긴다.
혹시라도 전시에 관심이 생겼다면 2023년 8월 12일 - 18일, 용산 디멘션 갤러리를 방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