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큰언니가 얼마 전 쌍꺼풀 수술을 했다. 눈 처짐 때문에 주변에서 많이들 하는 걸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운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 건 처음이라 마음이 남달랐다.
사실 지켜봤다기보다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한국에 대한 정보가 어두운 언니를 대신해서 이리저리 정보수집을 했고 친척 중에 피부과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락처를 수소문했고 도움을 청했고 성형외과 상담과 수술 후 도우미 역할까지 했으니 말이다.
큰언니는 수술 후 며칠간 호텔 생활을 하며 부기를 뺐는데, 초반 며칠을 함께 지내며 그간의 심적 고충을 들었고 후반 며칠은 전화로 반복해서 들었다. 반복이었다. 언니는 이걸 내가 왜 했나 모르겠다부터 시작해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후회까지 계속 되풀이했다.
처음에는 원래 눈가 주름 등을 바로잡고 피부톤을 밝게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쌍꺼풀과 하안검까지 한 후였다고 했다. 계속 같이 있었던 나로서는 좀 어이가 없기도 했다. 왜냐면 상담할 때 호소한 불만사항을 해결한 거니까.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푸념이 숨어 있었다. 한동안 거울을 보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자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언니는 원래 예뻤다. 한 번도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얼굴 때문인지 그것과 별개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살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에게 나 건드리지 마, 한 마디 하고선 가만히, 정말 앉은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지금껏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언니는 주부로 살다가 뒤늦게 자신의 가게를 열었고 두 배 매출을 올릴 만큼 장사가 잘 되어 남부럽지 않은 큰 집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굳이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갈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로 편안하다고 스스로도 말한다. 그럼에도 지금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태. 늙고 주름지고 병들고 추해진 몸. 몸이 보여주는 인생무상. 언니는 거부하고 싶은 몸을 살고 있었다.
옥희살롱의 김영옥 여성학자는 “몸이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늙고 주름지면서 예전의 나와는 다른 외연을 갖게 되기는 했지만,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길을 살아온 나의 역사를 온몸에 새기고 있는 '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바로 갱년기다. 완경을 통해 ‘몸의 굴레’를 벗어나고, 사회적 시선과 책무에서도 벗어나 ‘나’에게 침잠하는 시간을 거쳐야만 나의 몸이 가진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여길 수 있다. 그런 ‘갱년’의 과정을 거친 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고 싶은 생리적 욕구(김영옥)”에 충실하게 되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몸을 살게 된다.
아쉽게도 언니는 ‘젊고 건강한 몸’만이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젊고 건강한 몸으로 되돌아가기를 선택하고 말았다. 자신의 몸을 부정하고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의 날들을 반복적으로 푸념하면서.
에포케, 잠시 멈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외연이 아니라 내면의 성장을 돌보았더라면. 고요한 일상 속에서 나이 듦의 감각이 오히려 되살아난다는 걸 경험했더라면.
결과적으로 나도 언니에게 그런 선택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말아서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갱년기를 의료화하는 자본에 기여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피붙이에게, 더구나 언니에게 조언을 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이 갱년기에 대한 글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끝까지 언니가 반복하는 후회와 푸념에 귀 기울여주고, 되풀이하는 동안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의료의 도움 없이 성찰할 수 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약간의 도움을 통해서라도 완경을 넘어 다시 갱, 갱년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