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철학이 내 손을 잡을 때(김수영 저, 우리학교)
2024년 여름휴가, 아내의 바람대로 평산책방에 들렀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지 못했지만, 만나고 싶은 책과 책방을 만났다.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책방은 간간이 들려오는 소음이 문득문득 이질감을 느끼게 했지만, 그래도 나무, 하늘, 바람 그리고 책의 조합이 평안함을 주었다.
그리고 아내가 선물한 '철학이 내 손을 잡을 때'는 철학이 갖고 있는 난해함과 복잡함이란 포장지를 걷고, 일상 속 문장과 단어를 파헤쳐 일상 속 현실을 대조하게 만든다. 여러 문장 중, 유독 이 책에서 눈에 들어온 단어와 문장들을 요약하면 '지금, 여기.'이다.
추상과 형식의 시대에서 지금 우리는 '실제와 실질'의 시대, 막연한 우리가 아닌 구체적인 나로부터 시작하는 변화를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전히 우리가 혹은 내가 추상과 형식, 포장된 성과를 내세우지는 않는지, 현재가 아닌 과거 혹은 막연한 미래만을 바라보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여기가 로도스다. 지금, 여기서 뛰어야 한다. 헤겔이 말한 대로 그 과정을 아름답게 인식하고,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모르 파티이다. 그 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Hic Rhodus, hic saltus!)
"우리가 흔히 영어 이름으로 이솝이라고 부르는 아이소포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듬뿍 담은 우화집을 남겼는데요. 여러분도 어렸을 때 한 번씩은 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느 떠돌이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반가운 고향 친구들을 많이 만났겠죠. 친구들 앞에서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허풍이 좀 센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로도스에서 멀리뛰기 시합에 참여했는데,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었다고 자랑했죠. 말없이 듣고 있던 친구가 따끔하게 쏘아붙였습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 보아라!' (중략) 이후 에라스뮈스가 1500년에 펴낸 <격언집>에 이 문장이 실렸습니다."(15p)
에라스뮈스 이후로 여러 사람이 이 격을 인용했지만,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의 경우는 특별히 눈여겨볼 만합니다. 1820년에 <법철학>이라는 저서를 출판했는데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17p)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 문장을 조금 고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Amor Fati)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아모르 파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중략) 아모르 파티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뜻입니다. 네가 가는 모든 길, 네가 내리는 모든 선택과 결정은 필연적이니 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뜻이죠. 불행한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숙명론과는 다릅니다."(31p)
나는 세상에서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더 많이 배우려 한다.
그러면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모르 파티,
이제부터 그것이 내 사랑이 되도록 하자!
(Carpe Diem)
"이 문장 '카르페 디엠'의 저작권은 고대 로마의 시인 퀸투스 호라티우스에게 있습니다. 그는 기원전 1세기 격동의 로마제국에서 활동했는데 <송가>라는 연작시에 이 문장이 등장합니다."(135p)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세월은 우리를 시기하며 흘러만 가네.
오늘을 잡아라.
미래는 믿지 말고
(Chronos, Kairos)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이를테면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죠. 그러나 카이로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루한 하루가 다른 이에게는 매 순간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139p)
"카이로스가 없다면 삶은 육체라는 기계가 작동한 결과에 불과할 것입니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지만 카이로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카이로스는 내가 숙고하고 고민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내가 만들어 내는 시간입니다. 기회입니다. 기회는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141p)
카이로스,
결정적 시간을 지금 만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