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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M Dec 12. 2024

1인칭 시점

두 발을 구르며 나를 발견하고, 글을 쓴다. 그리고 온전한 우리를 위해.

길 건너편에는
비슷한 건물의 처마 아래에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보여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그 비에 팔과 다리가 젖는 것을 느끼면서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와 나란히 비를 피하는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서 비를 피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 시간을 돌아보면 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이 끊임없이 되살아났습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연설문 중에서




연말, 절반도 채 쓰지 못했던 휴가를 냈다.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와 함께 하는 휴가가 아닌 휴가는 처음이었다. 이른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의 아빠표 아침을 차려주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모닝커피를 한잔 내려놓고, 식탁 조명 아래 의자를 돌려놓고 앉았다. 언젠가 읽겠지 하고 쌓아놓았던 책을 펼쳤다. 글자가 제법 눈에 들어왔다. 최근 관심을 두었던 주제라 그런지 글이 잘 읽혔다. 밑줄도 그어본다. 가사가 있는 팝송은 귀에 거슬려서 첼로 음악으로 바꿨다. 나름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그리고, 기온이 올라가기를 기다렸다. 아침 9시 기온은 영하 5도. 자전거를 타기에는 좀 추울 듯싶었다. 10시 30분, 여전히 기온은 영하지만 더 늦으면 몸이 늘어질 것 같았다. 자전거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견딜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옷을 껴입어야 할까를 생각하며 한 겹, 두 겹, 세 겹 걸쳤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집 밖으로 나와 자전거 페달을 구르기 시작했다.


광릉숲길에서

가려지지 않은 얼굴 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아니, 이 정도면 오래 달릴만했다. 오늘은 그동안 가보지 않은 길을 가리라 생각하며 익숙한 길을 지나고 지났다. 지도 앱을 틀어 놓고 모르는 길마다 멈춰 확인했다.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는 구간, 심지어는 오르막과 내리막, 다시 그 길을 오르막과 내리막 하기도 했지만 모르는 길을 가는 그 순간은 분명 1인칭 시점이었다.


내가 자전거 타기, 두발 구르기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복잡한 생각, 나를 타자화하는 생각들을 끊어 내고,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온전하다고 볼 수 없지만 점차 온전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 과정에 의식을 집중하며 점점 감사하고, 또 감사한 감상에 이른다. 자전거 옆길의 산책하는 사람들, 러닝 하는 사람들 모두 1인칭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1인칭과 1인칭들은 각자의 삶을 그렇게 살아나간다.


이 공간의 글들 중 대부분은 이렇게 1인칭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1인칭으로 사유하고 성찰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옮기고 있다. 온전한 나와의 대화를 말이다.


결코 여유롭지 않은 겨울, 또 다른 1인칭들을 조만간 만나러 야 할 것 같다. 온전한 나, 온전한 너와의 만남을 통해 온전한 우리, 온전한 나를 위해서 말이다. 두발을 구르며...


왕숙천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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