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밋닛닞 Mar 31. 2020

트루먼쇼의 또 다른 주인공

부모와 자식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가짜라면?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사실 짜여진 각본이었다면?

이러한 편집증적인 상상력을 작품으로 풀어낸 영화가 있다. 바로 트루먼쇼다.


트루먼쇼의 주인공은 트루먼이다. 모든 서사의 중심을 '트루먼의 탈출'에 두고 보는 만큼 영화의 중심 주제를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평가하곤 한다. 여기서 한번 관점을 다르게 해 보자.

주인공을 트루먼이 아닌 다른 배역으로 옮겨보자. 바로 작중의 감독, 크리스토프로 말이다.

감독 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탈출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트루먼의 아버지를 죽였다가 다시 살리고, 결혼 상대를 임의로 정하고, 트루먼의 첫사랑을 빼앗아가는 등 트루먼의 모든 삶에 간섭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다. 트루먼이 탈출하면 트루먼쇼는 끝난다. 자기 커리어도 예기치 못한 사태로 끝이 나는 거고, 배역을 비롯한 스태프들도 실직하고 만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트루먼을 막으려 한 이유였을까.


트루먼쇼에서 진심을 보이는 역할은 그다지 많지 않다. 트루먼의 절친도, 아내도, 직장동료들도 모두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

그중 본인의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은 트루먼과 트루먼의 첫사랑 실비아 그리고 크리스토프 감독 이 셋이 전부다. 트루먼은 자유를 갈망했고, 실비아는 트루먼의 자유를 응원했다.

그리고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을 끝까지 품에 남기려 했다. 마치 독립하려는 자식을 붙잡는 부모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거의 모든 처음 순간들을 봐왔다.

처음 걸음마를 뗐을때,

처음 학교엘 갔을 때,

처음 이빨이 빠졌을 때,

트루먼의 모든 처음을 봐온, 마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실비아는 크리스토프에게 말했다.

갇혀 사는 트루먼이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이에 크리스토프는 받아치며 말했다.

잠깐 방송에 나와 떠들어댄 정도로 트루먼을 안다고 생각하나?
뭐가 옳은지 안다고 생각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역겨운 곳이야. 그에 비하면 씨 헤븐은 천국이지.

각자 트루먼에게 표하는 방식은 달랐어도 애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다.


크리스토프는 위험한 세상에 트루먼을 내놓기보단,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씨 헤븐에 두는 게 가장 트루먼을 위하는 방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트루먼을 자신의 품에 두려 하는 모습은 맨 마지막 장면, 트루먼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냈을 때도 나타난다.



난 누구보다 자네를 잘 안다네. 항상 자네 인생을 지켜봤어.
자네는 내 세상에 속해 있어.
이 세상에 진실은 없지만 내가 만든 그곳은 다르지.
내가 만든 세상에서는 두려워할 게 없다네.


이에 트루먼은 말했다.


내 머릿속에 카메라를 넣어 보지는 못 했잖아요.

언제나 트루먼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붙잡으려 했지만, 그게 트루먼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 처럼, 결국 트루먼을 붙잡지 못했다.

트루먼은 크리스토프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다.





잠든 트루먼을 쓰다듬는 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는 아마 트루먼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동시에 어떻게든 잘 살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그게 부모의 마음일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스포일러)김규평을 중심으로 보는 남산의 부장들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