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부로 국가애도기간이 끝났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있었던 일은
그럼에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아메리카노와 막걸리 그리고 소주. 각 병에 담긴 내용물은 다르지만 전하는 뜻은 같을 거다. 1번 출구 한켠에 마련된 포스트잇을 작성하는 테이블. 한 중년이 포스트잇으로 뒤덮힌 기둥을 본다. 자녀가 있다면 희생자와 또래였을 것이다. 행복을 찾으러 온 나의 친구들이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1번출구에서 다소 먼발치 떨어진 골목, 한 여인이 외로이 바이올린을 켰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올드랭사인>. 떠나간 친구에게 재회 할 것을 약속하는 노래다.
한 청년이 포스트잇을 붙여주고 있다. 한 노인이 국화꽃을 바라본다. 1번 출구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애도의 뜻이 하늘에 닿은듯 꽃다발 위로 빛줄기가 떨어진다. 시민의 발걸음은 끊기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통과 슬픔 마저도 정쟁거리가 된 시대다.
누군가는 추모를 정치화 말라며 책임 소재 추궁을 멈추라하고
혹자는 추궁을 멈추면 추모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느 말이 옳은지 시비를 따지고 싶지 않다.
이미 마음 속에서는 각자 나름대로의 답을 내렸을 것이며
피곤한 대화만 오갈테니 말이다.
다만 그 나름대로 내렸다는 답의 근원만큼은
고통받은 자들의 편에 선
진심어린 애도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