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감독이 만든 두 가지 부부 이야기
<부부의 세계>가 연일 화제다. JTBC드라마 역사상 <스카이캐슬> 이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OTT 서비스 왓챠플레이 최고의 인기작이기도 하다.
불륜 드라마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모완일 감독은 이전에도 부부라는 주제로 명작을 만든 적이 있다. 바로 <미스티>이다. <미스티>는 JTBC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이며 국내외에서 김남주 신드롬을 만들었던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에 감명받은 시청자로서, 두 드라마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두 작품에 공통된 구조와 주제의식, 그리고 차이점들을 통해 모완일 감독의 작품 속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해, 아직은 부부야"
<미스티>에서 고혜란(김남주)과 강태욱(지진희)은 부부이다.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둘은 ‘아이’라는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고혜란이 9시 뉴스 앵커자리를 맡기 위해 임신중절 수술을 했고 이에 강태욱이 분노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혜란의 시어머니는 아이를 낳으라며 압박을 넣는다. 또한 고혜란의 옛사랑 이재영이 찾아오자 강태욱은 두 사람 사이의 외도를 의심한다. 이재영(고준)은 임신한 부인(전혜진)이 있음에도 고혜란을 흔든다.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와 이태오(박해준)도 사랑으로 결혼한 부부이다. 둘은 혜란 부부와 달리 귀여운 아들도 있다. 하지만 이태오가 여다경과 외도를 하며 문제가 발생한다. 선우와 태오의 갈등은 아이 양육권 문제로 절정에 치닫는다. 태오의 어머니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지선우에게 아들을 용서하라고 부탁한다(자식 문제에 광적인 어머니가 각각 1명씩 나온다는 것도 작은 공통점이다-<미스티>고혜란 어머니, <부부의 세계> 이태오 어머니). 게다가 부부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 손제혁(김영민)은 이 틈을 타 지선우를 흔든다.
이렇게 두 작품 모두 결혼과 가족, 그사이에서 생겨날 수 있는 갈등에 대해서 다룬다는 점에서 같다. 결혼은 너무 순수한 감정으로 시작되어,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축적된 감정으로 갈등을 겪는다.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두 작품은 부인과 남편은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전제하고 시작한다. 커리어적 문제, 아이, 양가 부모님, 주변 사람, 심지어 옛날 사람까지 둘 사이를 혼란하게 하고 갈등을 부추긴다.
"당장 고혜란 모시고 와"
<미스티>에서 고혜란은 최고의 앵커이다. 고혜란이 아닌 뉴스 9는 상상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독히도 가난하던 유년시절을 벗어나기 위해 독하게 살아왔고 일에 대한 욕망이 대단하다. 남편 강태욱은 로펌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엘리트로 자라왔지만, 신념을 위해 검사를 그만두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한다. 그 자신이 선택한 것이지만 대형 로펌, 그리고 비리가 있는 검찰에 대한 패소가 계속되고 수입도 적다. 그는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서 라면을 먹으며 TV로 고혜란의 뉴스를 본다. 그녀의 직업에 대한 열정에 반해 사랑에 빠졌던 태욱이지만, 직업을 위해 임신중절을 택하고,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엔 씁쓸함이 있다.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여태 먹고살았으면서, 애초가 네 것이 어디 있어?"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는 병원 부원장이다. 의사로서의 신념을 지키며 어느 환자든 차별 없고 성의 있게 대하기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어릴 때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자 선우에게는 동정이 쏟아졌고 그게 싫었다. 동정을 받기 싫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기에 그녀는 우아하고 고고하며 빈틈이 없다. 남편 이태오는 그에 반해 무능하다. 성공하지 못한 영화감독이자 작은 이벤트 회사의 사장인데, 그나마 회사의 유지조차 아내 선우의 인맥으로 근근이 하는 실정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아내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내면의 열등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두 작품의 양상은 다르지만, 모완일 감독은 지난한 삶을 이겨낸 단단한 아내를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불편한 심경을 다룬다. 남편의 마음속 작은 갈등이 소용돌이를 만들고 부부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서사이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두 작품에서 외도는 중요한 갈등으로 다뤄진다. 외도의 대상은 공교롭게도 둘 다 젊은 체육인(?) 이성으로 그려진다.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의 외도 대상인 여다경(한소희)은 20대의 젊은 필라테스 강사이다. <미스티>에서 고혜란의 옛사랑 이재영은 강태욱의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이자 갈등의 핵심인데, 그는 구릿빛 피부의 골프선수이다. 부부가 서로 정신적으로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음에도 육체적으로 강한 매력을 갖고 있는, 젊고 당돌한 이성이 외도 갈등을 발생시킨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 My one and only love...
<미스티>의 혜란과 <부부의 세계>의 선우는 모두 트라우마가 있다. 혜란은 어릴 적 동네 보석방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할 뻔했다. 그런 혜란을 지켜주려던 친구 하명우가 보석방 사장을 살해하고 만다. 혜란은 당시 보석방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을 잊지 못한다. 드라마에는 혜란이 이 음악 때문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선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시에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이것도 충격이지만, 아버지의 외도로 분노한 어머니의 의도적인 죽음이라는 심증이 있어 더욱 괴롭다. 그래서 선우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며 트라우마를 떠올리기도 한다. 트라우마와 관련은 없지만 <부부의 세계>에서도 음악이 <미스티>와 비슷한 장치로 등장한다. 태오가 선우에게 프로포즈 할 때 틀었던 음악을 상간녀 여다경과의 데이트에서도 틀었고 이를 선우가 들었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우에게 그 음악은 애증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증오스러운 순간에 흘러나온 음악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여주인공은 모두 어릴 적 트라우마가 있으며, 양상은 다르나 음악이 그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어떤 이야기가 담긴 음악은 그날의 생생한 기억을 환기시키곤 한다.
"제가 누구한테 밟히는 건 질색이라서요"
두 작품 모두에서 여주인공에게 극도의 갈등 상황이 주어진다. 두 드라마 모두 든든한 조력자조차 없었더라면 절망적인 상황들을 보는 시청자들이 정말 인간 세상에 환멸이 났을 것이다. <미스티>에서 고혜란에겐 연예부 기자 윤송이(김수진)가 오랜 친구이자 조력자로 등장한다. 그녀에게 정보를 전해주고 기사를 써주기도 한다. 또한 남편 강태욱은 갈등의 대상이자 동시에 조력자이다. 강태욱은 고혜란은 깊게 사랑하기에 도와주고, 그로 인해 갈등하기 때문이다. 또한 혜란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던 하명우는 감옥 출소 전부터 혜란을 응원했으며 출소 후에는 직접적으로 돕는다. 혜란을 오랫동안 선배로서 존경해왔던 후배 곽기석도 있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 지선우는 고혜란보다 상황이 척박하다. 남편은 진작에 불륜으로 떠났고, 아들 준영(전진서)은 의지의 대상이 되기엔 너무 나약하다. 자신의 화목한 가정이 깨진 게 싫어 어머니에게 반항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둘 다 놓지 못한다. 게다가 믿었던 직장동료 설명숙(채국희)과 이웃집 친구 고예림(박선영) 모두 남편 태오의 불륜을 돕고 있었다. 지선우에겐 진실한 조력자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 저를 이용하세요"
<미스티>에서는 젊은 기자로서 고혜란의 앵커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한지원(진기주)이 등장한다. 그는 처음엔 혜란과 대립 각을 세운다. 하지만 종영 즈음에는 정의로운 보도를 위해 혜란과 함께 싸우고 서로를 선배, 후배로서 인정하게 된다.
<부부의 세계> 지선우는 초반 조력자가 전무했던 만큼, 추가적인 조력자가 많이 등장한다. 민현서(심은우)가 처음에는 약 처방을 계약 조건으로 삼아 선우를 도왔으나, 선우가 자신을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자 진심으로 돕게 된다. 필자는 한지원과 민현서가 다소 비슷한 포지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처음에는 다소 적대적인 관계지만 조력 관계로 성장하게 된다는 공통점과 더불어 신선한 마스크와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연기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선우의 병원에 새로 온 신경정신과 의사 김윤기(이무생)는 선우의 정신적인 상처를 보살펴주며, 준영과 선우의 관계도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돕는 조력자이다. 또한 선우가 양심적인 진단을 함으로써 남편 최 회장의 외도를 알게 된 사모님(서이숙)이 8화부터 조력자로 등장하게 된다.
<미스티>에서는 기본 조력자가 많은 대신 추가적 조력자는 1명뿐이고, 반대로 <부부의 세계>는 회차를 거듭하며 지선우의 조력자가 늘어난다.
"난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두 작품을 전격 비교해보니 확실히 공통된 구조가 많고, 그 안에서는 서로 다른 가정의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름다웠던 사랑이 전쟁이 된다’라는 관통하는 서사가 가장 큰 공통점이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와 시원시원한 여자 캐릭터 면에서는 <미스티>의 편을 들고 싶고 인간의 내밀한 면에 대한 통찰 그리고 캐릭터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듯한 인생사에 대해서는 <부부의 세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미스티>는 결말이 다소 허망하여 아쉬웠는데 앞으로의 회차가 더 많이 남아있는 <부부의 세계>는 칠성사이다였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