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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연 May 03. 2024

서른에 시작하는 취향의 탐닉

뭐 하나 고민스럽지 않은 게 없는 나의 인생 점검 에세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장르는? 주말에 즐기는 취미는? 여행할 때 어떤 스타일이에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무엇이죠? 이 질문에 바로바로 답변할 수 있었나요?



(1) 인생은 속도보다 '취향'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뒤쳐지면 심한 압박을 받는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이다. 그런데 나는 취향을 탐닉하는 것이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리라고 믿는다.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가는 인생보다 잠깐 돌아서 취향의 오솔길을 걸어보는 인생이 좀 더 개인의 삶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든다.


20대에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게 중요했다. 또한 다양한 걸 경험하는 것에 집중했다. 또래집단에 소속되고 뒤쳐지지 않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 나이에만 할 수 있어’라는 말에 매몰되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노력했던 우정과 경험 중에 지금 남은 것은 1%쯤 될까말까 한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낭비 없는 효율적인 삶을 살기엔 너무 감성적이었고 후회 없는 성장을 하기엔 나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


이제는 취향 가득한 삶을 좋아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매력적이다. 이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상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히 없다, 잘 모르겠다, 끌리는 대로'라는 답변보다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포인트를 좋아하는지 잘 설명해 줄 때 더욱 매력 있다고 느낀다.


20대 동안 다양한 취미를 경험해 보았고 이 중에서 어떤 게 나의 취향에 맞는지 탐구해 봤다. 그리고 이제는 탐구는 줄이고 '탐닉'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 글에서는 나의 취미와 취향의 일대기를 소개해볼 생각이다.


(2) 20대 제너럴리스트의 취향 탐구의 시간

예전에 롤러코스터라는 프로그램에서 대학교 학년별 패션을 보여준 적이 있다. 새내기 때는 무작정 과하다. 2학년때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알기에 가장 패셔너블하다. 3학년 때는 CC를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덜 꾸민다. 4학년때는 취준 하느라 꾸미지를 않는다. 취향탐구의 흐름을 단적인 예로 보여주는 것 같다.


20대에는 취향을 탐구했다. 한 번씩은 경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넓고 얕은 취향과 취미를 찍먹하는 제너럴리스트였다. 첫째로 여행이 그랬다. 20대 초반에는 기운이 넘치고 돈은 부족해서 하루에 2만보씩 걷고 밤에는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시는 내일로 여행을 다녔다. 20대 중반에는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친구네 시골별장에도 가보고 고급 호텔과 리조트에 다녀보면서 정말로 다양한 여행을 해봤다. 20대 후반에는 차를 타고 여행하기 시작했고, 혼자 여행하는 것의 재미도 느꼈으며, 캠핑을 처음 해보면서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친구들과 가되 각자의 시간도 있는, 낮에는 뽈뽈거리며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밤에는 모든 게 갖춰진 호텔에서 지내는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둘째로 음악 취향에 있어서는, 20대 초반에는 잔잔한 팝이나 설레는 인디음악을 들었다. 스탠딩에그, 어쿠스틱콜라보, 치즈 등의 아티스트들을 좋아했고 뷰티풀민트라이프에 다녔다. 20대 중반쯤엔 신나고 흥이 넘치는 EDM에 빠져서 galantis, jonas blue 같은 트로피컬 장르를 듣고 UMF에 다녔다. 20대 후반에는 예능 PD가 되어 음악방송을 하고 취미로 방송댄스를 해보면서 아이돌 음악을 들었다. 현재는 돌고 돌아 다시 잔잔한 로파이 음악을 듣고, EDM보다는 약간 절제되게 몸이 둠칫거리는 R&B 팝을 즐겨 듣는다.


음주가무는 항상 좋아했는데, 20대 초반에는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인기곡을 부르고 춤을 췄다. 20대 중반에는 뮤지컬을 보거나 술 마시고 EDM페스티벌에 갔다. 20대 중반부터는 야구장에 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3) 30대 스페셜리스트의 취향 탐닉의 시간

20대 동안 탐구한 취향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답변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누군가 나의 취향에 대해 물어보면 어릴 때의 나는 '어......... 내가 뭘 좋아하더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딱딱 대답할 수 있는 문항이 많아졌다. '제가 좋아하는 색은 베이지랑 퍼플이고, 요즘 SZA랑 Harry styles 많이 듣고요. 운동으로 댄스 하고, 주말엔 야구 봐요!'


30대에는 나만의 취미를 발전시키는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는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취미에 깊게 파고든다. 운동을 좋아해서 러닝크루에 가입하고 마라톤에 나가는 친구가 있고,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다가 해녀학교까지 수료한 친구도 있다. 나도 지금 커버댄스 동아리에 몸담고 있는데, 우리는 방송댄스 1곡을 연습한 후 촬영감독을 불러서 완성된 안무를 카메라에 담는다. 대부분 직장인이지만 퇴근 후에 만나서 함께 연습하고, 촬영날에는 아이돌 못지않은 헤어, 메이크업, 코디까지 장착한다. 또한 요즘에는 안무 영상 촬영에도 관심이 생겨서 배우고 있다. 영상 하나 찍을 때까지 드는 수고가 상당하다. 한 프로젝트를 잘 해내면 미치게 뿌듯하다. 아마 내 영상은 내가 제일 많이 봤을 것이다. 취미가 나의 성취감과 행복감의 주역이 되고 있다. 주변에도 내가 춤을 즐긴다는 게 강한 이미지로 잡혀가고 있다. 나라는 사람을 브랜딩 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취향의 발견과 취미의 발전은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존과는 상관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또한 취미에서 얻어낸 소소한 성취감이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이런 정신적 만족감이 본업에서의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물론 인생의 속도는 누구나 다르기에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10대에 이미 취향탐구를 끝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30대인데도 아직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관없다. 본업이 아닌데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취향 측면의 메타인지가 큰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누가 나의 오솔길을 점검하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나의 취향을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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