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우연 May 06. 2019

로코 여주가 되기 싫어! <어쩌다 로맨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에 대한 정면 풍자 코미디!

젠틀한 미소의 백만장자, 좌충우돌 열심히 살아가는 여자, 장미꽃과 화려한 드레스...로맨틱코미디의 전형적인 미장셴이다. 이것을 코미디 영화의 세팅으로 쓴 영화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쩌다로맨스(Isn't it romantic?)(2019)>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 자체를 패러디해버린 이 코미디 영화에는 잔재미와 괜찮은 메시지가 있다.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나탈리는 로맨틱코미디를 싫어한다. 어릴 때 로코영화를 볼 때마다 환상을 깨던 어머니는 동화같은 사랑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자란 딸이 현실에서 느낄 충격을 걱정하셨나보다.  어머니의 노력(?)과 실제로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 때문에 로코를 정말 싫어하는 나탈리였다.

그러던 나탈리가 로맨틱 코미디 세상에 갇혀버린다. 남자들은 로코 속 장발의 포마드 헤어나 5:5가르마를 하고 있고 길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장미를 건네고, 틈만나면 로맨틱한 멘트를 던진다. 거리에는 장미와 색색의 원피스, 스포츠카, 따사로운 햇살만이 가득하다. 온 세상에 로코 남주밖에 없는 장면, 즉 로코과부하 세상은 마치 휘핑크림을 높이 올린 커피 같았다. 한껏 부풀어 너무 달콤하고 느끼하고 덧없는 느낌.

지극히 현실적인(아니 거의 염세적인) 나탈리는 철벽방어를 하다가, 이 로코 세상에서 빠져나가려면 영화가 끝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백만장자와 사귀기로 한다. 화려한 옷장, 레스토랑,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친구와의 연애라는 달콤함에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공주가 되려면 평범한 친구들, 내 이름, 그리고 직업까지 버리고 '공주답게' 자신을 세탁해야 했다.


기존의 로코영화, 공주-왕자 로맨스라면 그렇게 여주인공은 새인생을 행복하게 살았겠지만 나탈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백만장자의 제안이 불쾌했다. 그건 원래의 나 자신을 촌스럽고 볼품없다고 인정하는 거잖아,내 직업에 만족하고 있어, 싫어.

그렇게 로코의 틀을 거부하는 듯했던 나탈리는 다시한번 로코의 전형적인 전개에 사로잡힌다. 바로 왕자님이 아니라 내 남자는 사실 나의 오랜 남사친이었다...라는 유형이다. 나탈리는 사실은 소박하고도 나랑 쿵짝이 잘맞는 남사친이 '트루러브'였음을 깨닫고 그의 결혼식을 망치러 간다. '결혼식 반대하는 것도 너무 로코같지만!'이라고 외치면서.


남사친에게 거절 당하고 나서야 나탈리는 로코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꼭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나? 일단 나를 좀더 사랑해보자,고 결심한 그녀의 현실에는 변화가 있다. 염세적인 말투는 사라지고 일상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당당한 걸음으로 출근한 회사에서, 나를 호구취급하던 동료직원에겐 꼽을 주고, 소중한 동료에게는 고마움을 전한다.


영화에서 여성, 남성 인물의 스테레오 타입에 지겨워진 요즘이다. 이러한 니즈를 캐치해서 <오션스8>같은 젠더스와프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스테레오 타입이 가득한 장르 자체를 패러디해버린 <어쩌다로맨스>의 해법이 참 유쾌했다. 결말이 싱겁긴 했지만 로코의 클리셰에 대한 충실한 '고증'과 이를 바탕으로 한 '풍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역사적 공백을 채운 고증 판타지, <한복 입은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