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건 일요일 오후, 찰리 파커의 음악을 들으며 단편 소설을 마무리 짓고 있을 때였다. 단체로 발송된 부고 문자에는 장례식장의 위치, A의 이름, 발인 날짜가 적혀 있었다. 부고 문자에 적힌 A의 이름 세 글자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번호는 이미 주인을 잃었지만 나는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태롭게 이어지던 통화 연결음 끝에 간신히 전화가 연결되었다. A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도 건너편에선 말이 없었다.
“이거 A 전화 아닌가요?”
얼마간의 침묵 끝에 마치 오래전부터 바다에 잠겨 있던 종소리를 닮은 음성이 들렸다.
“진우구나.”
수화기 건너편의 사람은 A가 아니었다.
A는 말하자면, 동네 친구였다. 함께 학교를 다닌 적도, 같은 학원에 다닌 적도 없다. 나는 외동이었고 A는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형님이 있었다. 부모님끼리 친분이 있지도 않았고 함께 아는 친구도 없다. 어릴 적 서로가 혼자인 시간에 우리는 우연히 만났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날의 우연이 아니었다면 A라는 사람은 내게 그저 ‘누군가’였을 것이다. 아마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겠지. 친구가 된 이후에도 우리는 함부로 각자의 세계에 다가가거나 일부러 멀어지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모양새가 유지되었다. 마치 단단한 알맹이의 포도알 같았다.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의 접점으로 잠시 맞닿았던 것뿐이다.
내가 문예지에 몇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소설을 쓰는 동안, A는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펀드매니저가 되었다. A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 A의 집에 놀러 가면 나는 책장 앞을 서성이며 읽을 만한 책을 골랐고, A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그림이 펼쳐졌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나는 크림색의 소파에 앉아 A의 연주를 들으며 책장을 넘겼다. A가 연주를 끝낸 후에도 나는 계속 책을 읽었고, 어느새 A는 가만히 내 옆에 앉아 무슨 책을 보느냐고 물었다. 나는 책을 뒤집어 제목을 보여주며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고 말했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방금 친 곡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라흐마니노프”
A의 집에 갈 때마다 내가 고르는 책은 달라졌지만 A가 연주하는 곡은 언제나 라흐마니노프였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기교는 둘째치고 완곡도 어려운 음악이지만 A의 실력은 갈수록 늘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종종 읽던 책을 덮고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A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지난한 입시가 끝난 후 각자 대학교에 입학했던 봄, 나는 오랜만에 A의 집에 놀러 갔다. A는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주었다. 나는 어느새 색이 바랜 그때의 크림색 소파에 앉아 라흐마니노프를 들었다. 음악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청각적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예민한 편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A의 연주를 듣는 내내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A는 감정을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그날의 라흐마니노프는 뭐랄까, 한껏 들뜬 채로 웃고 있었다. 나는 건반에서 A의 긴 손가락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요새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A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A의 장례식장은 붐볐다. 학창 시절의 동창들, 군대 선후임, 직장 동료, 유족들과 그 외의 조문객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중 익숙한 얼굴은 A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님뿐이었다. A의 영정에 향을 피우고 국화꽃을 올렸다. 함께 담배를 같이 태워본 적도 없는데, 우리 둘 사이를 가르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A의 영정에 절을 하고 상주에게도 절을 올렸다. 사고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은 슬프기보다는, 공허했다. 온몸의 기운이 어딘가에 난 구멍 틈새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도저히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 장례식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절편과 꽈리고추가 들어간 멸치볶음, 홍어무침과 진미채 볶음, 육개장 등의 음식이 내 앞에도 차려졌다. 편육을 한 점을 집어 새우젓에 찍어 입에 넣었다. 퍽퍽한 편육을 천천히 씹으며 플라스틱 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육개장을 한 입 먹으려는 찰나 뒤편 구석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A의 회사 동료인 것 같았다.
-자살이야. 그 시간대에 도로 위에 차가 어디 있어, 내가 아는 경찰 말로는 브레이크를 밟지도 않았대.
나는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고 소주를 따랐다.
-거기 바로 밑이 버려진 폐차장인데 철거한다고 얘기만 수년 째지 진척된 건 하나도 없는 곳이거든. 주변에 다 공원이고 유원 진데, 막말로 50m만 더 갔으면 한강 공원에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
-진짜요? 도대체 왜?
나는 짐짓 모른 척하기 위해 앞에 놓인 소주를 조용히 들이켰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 답을 말해줄 유일한 사람이 죽어 만들어진 자리 아닌가. 왜?라는 바보 같은 질문이 허공을 맴돌다가 사방의 벽에 부딪혀 끝내 사라졌다.
-낸들 알아. 그러니까 사람 속은 모르는 거지. 특별휴가 받은 걸로 미국에 가 있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기만 했지. 휴가 가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인데…
새벽 세 시, A는 강변북로에서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해 사망했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뒤 포상으로 받은 일주일 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하기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 A는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 동네에서 자취를 하고 취업을 해서도 쭉 그곳에 살았다. 내게도 익숙한 동네였다.
“나는 아무래도 글이나 쓰면서 살 팔자인 것 같아.”
군대에 다녀와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술에 취해 A에게 이렇게 말했다. A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마셨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A에게서 나는 멋대로 나를 향한 신뢰를 읽었다. 너는 무슨 일을 할 거야? 하는 물음에 A는 무심한 표정으로 어디든 취업을 해야겠지, 간결하게 답했다. 평소보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는 외면하기 힘든 짙은 체념이 묻어났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A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짓는 희미한 미소에 이어지는 무표정, 그리고 술병만이 속수무책으로 비어 갔다.
“나 헤어졌어.”
나는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별을 고한 것은 누구였는지, 헤어진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지금 자신은 어떤 기분인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A는 묵묵히 술잔을 비웠다. A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처음 말해주던,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듣던 오후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A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녀에 대해, 혹은 그녀를 향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A의 마음이 어느 정도의 무게였는지, 또 그 마음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공명했다. A와 나 사이에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줄곧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A가 뜬금없이 말했다.
“한번 진지하게 써 봐. 뭐가 됐든.”
그 뒤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A에게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소설을 하나 썼는데 읽어보겠느냐고. A는 하얀 종이 뭉치를 건넸다.
이야기의 제목은 <Largo>였다. 주인공은 어느 날 새벽,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이라 주인공은 친구가 죽기 전의 행적을 뒤쫓는다.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였다.
아, A의 소설 속 주인공의 친구도 강변북로에서 핸들을 꺾어 죽었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티가 났는지 뒤편의 목소리가 멎었다. 더 이상 듣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다. 다시 잔을 채웠을 때 양복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진우야, B 선생님이 돌아가셨어.”
그런 순간이 있다. 이 공간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진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질적인 순간. 방금 내가 씹은 게 뭐였지? 입 안에 남은 이 비릿한 맛은 뭐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몸은 누구의 것이고 저기 누워 있는 사람은 누구지? 장례식장 특유의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가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생생하다. 오한으로 몸이 가볍게 떨렸다. 전쟁통도 아니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도 아닌데, 장례식장에서 다른 누군가의 부고를 듣는 건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다. 손가락을 펼쳐 가만히 움직여 보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B선생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다. 졸업 후에도 고민이 있을 때면 찾아가 자주 술을 마시곤 했다. 최근에 퇴직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직 축하한다는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때를 놓친 축하는 이제 영영 닿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앞에 놓인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낮에도 제법 쌀쌀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대리 운전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뒷자리에 앉아 창문을 내렸다. 맞바람에 얼굴을 내맡기니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가뜩이나 세상에서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이 없는 내게, 한꺼번에 둘씩이나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시큰해지는 눈과 코를 애써 무시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한 채 정신이 아득해졌다.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은 먼저 도착해서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영정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A와 마찬가지로 준비된 사진이 아니었다. 평소에 알고 지냈던 사모님과 선생님의 두 딸, 어린 아들에게도 절을 했다. 나를 보자 사모님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울자 두 딸과 아들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올해로 열세 살이 된 막내아들은 안 본 새에 얼굴이 잔뜩 탔다.
밖으로 나와 먹고 남은 반찬을 정리하고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옮겼다. 따로 인사를 드릴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아 신발 정리를 했다. 남은 친구 한 명이 도착했고, 우리는 가벼운 눈인사만 주고받은 뒤 각자 말없이 움직였다.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았고,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일 인분의 역할을 도맡았다.
해가 떨어지고 조문객들도 하나둘씩 빠져나가자 우리는 그제야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구석 자리에 모였다. 간단한 음식만 놓고 술을 마셨다.
선생님은 가족들과 하와이 여행을 갔다가 낙마해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머리 쪽에 충격을 입으셨는데 필요한 조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해 상태가 악화되셨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말에서 떨어져 죽기도 하는구나.”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자칫 불경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어렵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 같은 푸념이었다.
“나랑 같이 서핑 동호회 하는 사람은 동해에서 파도를 타다가 상어에 물려 죽었어.”
자동차 정비를 하는 친구가 말했다. 시신을 수습하긴 했지만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해안가에 붉게 물든 파도가 밀려오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씨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람은 원래 그렇게 죽어. 상어에 물려 죽든, 하와이에서 말에서 떨어져 죽든 그게 무슨 소용인데.”
의사 친구가 말했다. 친구는 무수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선생님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거푸 술잔을 비웠다. 발음이 뭉개져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죽음과 맞닿은 직업 특유의 냉소만은 선명했다.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도산대로를 건너는 중에 신호를 위반하고 과속하던 람보르기니에 치여 죽었다.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63%. 만취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미친 황소를 몰다가 야근하고 귀가하는 새신랑을 들이받은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죽음도 있다. 인간에게 죽음은 보편적인 일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하나의 죽음을 제각각의 무게로 받아들이기에, 그 죽음은 무수히 분열해 개별의 경험으로 남는다.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이 일상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분명 좋은 순간은 있기 마련이지만 매 순간이 그렇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리면 그저 일상으로 치부했던 모든 작은 순간들이 앞다투어 되살아난다. 다시는 그 순간을 경험할 수 없고 이제는 홀로 추억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온다. 그 사람의 말투, 작은 습관들, 그런 것들이 아직 이 세상에 남은 나를 압도하고 짓누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지만 아직은 멀리 가지 않았을 그들이 그리웠다. 선생님도, A도.
친구들이 전부 잠에 든 후에도 나는 이상하게 취하지 않았다. 재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폐 깊은 곳에 닿는 느낌이 생소했다.
사람이 12년 전, 자신이 썼던 소설 속 내용과 동일한 방법으로 죽을 수 있을까. A는 무슨 생각으로 그 글을 쓰고 나에게 보여준 걸까. 그 후 12년 동안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했다면 왜 하필 지금에서야 행동으로 옮겼을까. 연기를 뱉을 때마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같이 쏟아졌다.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죽음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대리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가로등도 없이 전조등에만 의지해야 하는 어둑한 시골길이었다. 도로와 도로가 아닌 곳의 경계가 모호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걸까. 마치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르는 길 같았다. A가 썼던 소설을 찾는다고 해서 A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소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고 어지러웠다. 아마도 술을 마셔서 그런 거겠지.
동이 틀 때까지 집안 곳곳을 뒤졌다. 구석에 쌓여 있는 원고들을 헤집고 대략적인 년도를 가늠해 수신한 모든 메일을 확인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이제 나의 집에서 A의 소설을 찾을 길은 없었다. A가 다른 사람에게도 글을 보여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일까.
새벽의 어스름은 금세 가셨고 해가 빠르게 떠올랐다. 거실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땐 이미 정오가 넘은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남아있던 친구의 부재중 전화에 급한 일이 생겨 먼저 올라왔다고 답했다. 세수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내일이 발인인 A의 장례식장은 조금 한적했다. 나는 나무처럼 자리를 잡고 앉았다. A의 아버지와 형님이 가끔씩 찾아와 술을 주었다. 나는 형님에게 혹시 A가 쓴 소설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소설? A가 그런 것도 썼나?”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짓는 형님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렸다.
“방금 저기 온 사람이 대학교 동창이라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한 번 물어봐.”
나는 멀찍이 테이블 너머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 곁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한 남자와 두 명의 어린아이가 앉아 있었다. 검은색 생머리의 여자는 유독 희고 긴 손가락으로 작은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두 아이는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곧은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아니에요. 확실치도 않은데요.”
여자와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발인이 끝난 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설을 찾느라 난장판이 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고 잡동사니를 하나씩 정리했다. 어지럽게 흩어졌던 물건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듯 나도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단편 소설을 마무리하고 칼럼에 기고하는 글 몇 편을 썼다. 배가 고프지 않아 끼니는 여러 번 걸렀다. 암막 커튼으로 창을 가려 종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좁은 방에서, 나는 밤낮없이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발인 이후 처음으로 커튼을 걷고 방을 나섰다. 엉망으로 쌓인 우편물 틈에서 낯선 소인이 보였다. 발신 위치는 미국이었다. 나는 나머지 우편물을 현관에 던져 놓은 뒤 도로 책상에 앉았다. A가 죽기 전, 미국에서 보낸 우편이었다.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지금은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가 끝나서 일주일 간 휴가를 받을 수 있는데 그때 미국으로 가면 잠깐이라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답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결국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비행기의 이륙 방송을 들으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Largo라는 재즈 카페에서 기다리겠다는 연락을 남겼다.
A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캘리포니아의 Largo를 찾아갔다. 그 주변의 허름한 모텔에 짐을 풀고 매일 같이 그곳에 찾아갔다. 시간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계속 마셨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람들은 내게 이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무엇을 하느냐고 묻곤 했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카페 한쪽 구석에는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이 있다. 주말이면 초청 밴드가 라이브 공연을 했지만 평일이라면 누구든 올라와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고, 마음껏 노래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다.
A는 가게 영업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동이 트고 마지막 손님이 나가면 그제야 숙소로 돌아가 잠에 들었다. 그리고 Largo의 오픈 시간이 되면 다시 일어나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 될 때까지 그가 기다리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 무대 위에선 어떤 흑인 뮤지션이 트럼펫 솔로를 연주하고 있었다. A는 안면이 생긴 종업원에게 술을 주문했다. 그때 A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이 Largo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지만 A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트럼펫 연주자의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그 박수소리 위로 A는 가만히 손을 들었다. 무대 위에 있던 흑인 트럼페터가 A를 가리키자, A는 무대 위로 올라가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라흐마니노프.
재즈 카페에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었지만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은 A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페르마타.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눈부신 조명 너머로 나는 그의 얼굴을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떤 여자와 손을 맞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연주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난 걸까. 아니면 보고 싶은 마음이 멋대로 만들어낸 환영이었을까.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박수 소리를 뒤로한 채 쓴웃음을 지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갑 속의 돈을 털어 종업원에게 술값을 두둑이 쥐어주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보낸 일주일의 시간이 마치 꿈처럼 아득하다. 내가 본 남자가 그인지, 그저 내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영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르고 또 고르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드는 일에 나는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번번이 실패했다. 내 마음을 전달할 단어가 나에게는 없었다. 표현할 단어가 없으니 내 마음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그와 마주치는 순간까지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했다. 그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처럼 피아노 앞으로 향했고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그와 함께였던 시절에 자주 그랬듯이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그 사람은 항상 내 연주에서 나조차도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을 들어주었다.
A가 죽은 뒤 가끔씩 A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뭐가 됐든 한번 진지하게 써보라는 A의 말이 생각난다. A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A는 내가 자신에 대한 글을 쓰리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라면 그래 주길 바랬던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나에게 ‘뭐가 됐든’이라는 말로 시작할 용기를 주고 ‘진지하게 써보라’는 말을 등불 삼아 끝을 낼 수 있게.
그를 생각하면 내가 언제나 느끼는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는 채로 친구가 되었는데 잘 모른다는 이유로 멀어져 이제 와서 슬퍼한다. 웃기는 일이다. 내가 내 친구를 잘 모른다. 그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슬프게 하고,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A를 향한 내 막막함이 그가 선택한 인간으로서 가장 확실한 운명마저 가려버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A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혹시 나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것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홀로 생각을 했다. 나에게 왔지만 나를 향한 것이 아닌 마지막 그날의 기록. 그곳엔 내가 모르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한 남자가 있었다. 이제 그 남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