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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Justin Jan 09. 2020

새로움. 익숙함... 독일

둘 모두 여행자에게는 꿀단지

어떤 이는 ‘여행’을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험이라 부른다. 우리에겐 익숙한 한옥이, 한강이, 재래시장이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정녕 여행은 새로움을 느끼기 위해서만 가는 것일까?

우리는 여행 중 이따금씩 낯선 여행지에 영영 눌러앉아버리는 삶을 그려볼 때가 있다. 단 며칠의 밤으로 그 도시를 단정 짓기엔 아쉬움이 남아 더 알고 싶을 때 또는 그 도시가 어느새 익숙해져 내게 자연스러운 곳이 되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때문에 매 번 새로운 곳으로만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매 번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나 보다.

이번 독일은 나에게 두 번째 방문이었다. 본래 지난번 충분히 즐기지 못한 독일 맥주를 맘껏 먹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왠지 모를 익숙함이 반가워 또 맥주를 잊어버렸다. 그 아쉬움에 난 이 도시들을 다시금 오려한다. 이쯤엔 이런 질문이 나에게 쏟아질지도 모른다. “거길 또 가? 뭐 꿀이라도 발라 놨어?” 그렇다. 난 그곳에 발라 놓은 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꿀 1. 서로 다른 두 도시 걷기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여행의 허브로 알려져 있고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다. 이 두 도시는 마치 서울을 둘로 나눠 놓은 것 같았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의 어느 대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높은 고층 빌딩 사이에 중세시대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적 건물과 산업, 그리고 전통적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이 독특한 풍경은 마치 서울 같았다. 베를린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베를린 장벽이라는 아픔으로 오랜 세월 동안 나뉘어 있다가 통일을 맞아 새로운 화합의 시대를 향하여 발 빠르게 변모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도시가 되었는데 이 또한 전쟁으로 남북이 갈린 우리나라와 닮지 않았는가.

그래서 더 천천히 걸어보았다. 관광지가 아닌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그들이 가는 식당을 가고, 그들과 함께 조깅하고, 늦은 저녁에도 산책을 했다. 밖으로 향하는 걸음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른 유럽과 달리 깨끗하고 치안이 좋았던 덕이었기도 하고 낯섦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을 즐기기로 작정했기 때문 일터이다. 그렇게 독일의 고요하게 빛나는 두 도시는 나의 마음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꿀 2. 다르지만 조화로운 프랑크푸르트 

서울로 치면 한강인 마인 강변을 거닐 때였다. 도시의 햇살은 어느덧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선사했는데 이 찰나의 선물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빌딩 숲 속 사이의 마인강을 따라 걷다 보니 중세 문화를 오롯이 간직한 뢰머광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사뭇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이 도시의 매력에 나도 여느 관광객처럼 여기저기 기웃기웃했다.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주변의 큰 쇼핑몰들이 즐비한 가운데 웅장한 대성당의 종소리에 들어간 대성당은 너무나 고요해서 어느덧 내가 중세로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지나가다 발견한 괴테의 생가. 생각보다 꽤 큰 집이었는데 특히 3층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집필하다 자주 3층 복도의 창 밖 풍경을 봤다고 한다. 지금의 창 밖은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이 곳은 매우 조용했는데 도슨트 대신 사람들이 헤드폰으로 설명을 들었다. 물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외국 핸드폰은 소리가 잘 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창 밖을 보다 뒤돌았 때 마룻바닥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괴테의 이야기 덕분일까 삐걱되는 소리에도 사연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바쁘고 복잡한 밖과 대비되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하이라이트는 해 질 녘이 아닐까 싶다. 작은 부띠끄 호텔의 옥탑방 발코니에서 하루를 마감하기 전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신다. 여기는 편의점 맥주마저도 맛있다. 저녁 10시가 되어야 노을빛이 프랑크푸르트의 하늘을 물들이고 나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프랑크푸르트의 노을빛은 어느덧 서울의 노을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익숙하다. 그렇게 난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꿀 3. 마치 살았었던 것 같은 베를린

베를린으로 향하던 날 유난히 하늘은 청명했다. 덕분에 프랑크푸르크에서 ICE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여행은 창 밖 풍경에 심취될 수밖에 없었다. 연한 연두색에서부터 진한 초록색의 옷을 입은 나무들은 각자의 빛을 냈고,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잠시 내려놓는 수밖에. 흘러가는 풍경으로도 느낄 수 있는 풍성하고 여유로운 농촌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일의 기차여행은 음악을 들으며 창밖 풍경을 눈으로 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차여행이 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하냐고 물으면 사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관광지처럼 ‘우와’하는 장관은 아니지만 그저 우리 집 마당에 옮겨와 매일 보고 싶은 그런 ‘아빠미소’가 그려진 달까.

베를린 역에서 택시를 타고 Kaiserdamm라는 한적한 곳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숙소로 정한 게스트하우스는 전형적인 독일식 보눙*이었는데 내부는 아늑하게 유럽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베를린이 좋았던 것은 대도시지만 관광도시가 아니라 좀 더 편안하게 그저 살던 동네에서 머무는 것처럼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같다. 베를린에 와서도 하는 일이 별게 없다. 저녁 시간에 비어 가든에서 시간 보내기, 동네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슈바인학센과 슈니첼을 먹기, 공원 벤치에서 하늘을 올려 보기, 게스트하우스에서 창 밖 풍경 보기 등등. 그냥 평소에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한 시시한 일들을 한다. 그러나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상상했다. 어쩌면 서울에서도 할 수 있었던 것들인데 그냥 그걸 조금 더 소중하게 느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행인지라 낮에는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벽화를 보면서 의미를 찾기 위해 한없이 상상을 펼치고 브란덴부르크 문, 국회의사당, 유대인 추모공원을 지날 때면 잠시 길을 멈추고 이 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끝없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에 몰입되어 더 감성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낯섦, 익숙함으로 다가오다

어떤 사람을 새롭게 만나서 나의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과정일까? 새로운 사람이라 좋아진 건지 아니면 그 새로움이 익숙해져서 좋은 걸까? 여행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낯선 장소라서 좋은 걸까 아니면 편안해져서 좋은 것일까? 정답은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나에게 지금 두 도시가 충분히 좋다는 사실과 소중한 도시가 생겨 행복해졌다는 점이다.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베를린. 세상에 여기보다 더 낯설고 익숙한 곳이 있을까? 물론 이 느낌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그 도시가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나의 다음 여행의 목적지는 다시 내 추억의 꿀단지가 있는 독일이다.

*보눙(Wohnung): 독일에서 집을 얘기할 때 하우스와 보눙으로 나누어 얘기한다. 하우스는 마당이나 정원이 딸린 단독 주택 형태를 말하고 보눙은 우리나라식으로 아파트 또는 주상복합 주택을 말한다. 독일의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의미와 달리 일반적으로 방 하나만 있는 원룸 스튜디오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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