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바비의 에센스
지난 토요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진행한 콘서트 오페라 '돈 조반니'를 감상했습니다.
콘서트 오페라여서 갈라 형식으로 진행할 주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상황에서 무대 없이 오페라를 하는 형태였습니다.
저는 모든 종류의 공연 예술을 사랑하고 오페라 디비디도 꽤 많이 구비해놓고 있으며 종종 감상하기에 이렇게 디비디 감상 시에도 브런치에 기록할 예정입니다.
르네 야곱스(Rene Jacobs)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Freiburger Barockorchester)와 임선혜 씨의 조화는 약 7-8년 전 프라이부르크에서 공연을 본 이후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조합이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만으로도 공연을 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높았지만 오래 함께 호흡을 맞춰온 르네 야곱스와 임선혜 씨가 함께 한다는 것을 보고 곧바로 예매하였습니다.
르네 야곱스는 바로크 및 고전 그리고 고음악이라고 불리는 그 이전의 음악을 지휘하는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이고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시대에 사용하던 형태의 악기를 활용하여 연주를 합니다. 특히 호른이나 플루트같은 관악기는 재질과 생김새가 다르고 현악기의 경우 지금의 활과 다른 활을 활용하며 때에 따라 류트, 쳄발로, 포르테피아노 등을 활용하여 연주를 완성합니다.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처럼 풍자극이며 카사노바 스토리입니다. 연출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오페라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가 있는 무대를 잘 활용하여 표현하여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스포일러가 되니 전체 내용은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돈 조반니는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풀어내는 성인을 위한 극이며 현대에 적합하지 않은 남성 중심 사상도 들어있고 성인 유머와 폭력적, 선정적 내용들이 들어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유머감각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작품이지만 주로 다루는 내용은 여성을 쾌락의 도구로 생각하는 돈 조반니, 돈 조반니가 살인을 하는 장면, 여자를 유혹하는 내용, 돈 조반니가 자신의 하인 레포렐로를 무시하고 돈으로 꼬시는 모습, 돈 조반니와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버림받은 돈나 엘비라가 복수를 위해 돈 조반니를 폭로하는 모습, 버림받은 돈나 엘비라가 그래도 돈 조반니가 좋다고 다시 고백하고 돈 조반니에게 이용당하는 장면, 돈나 안나를 겁탈했다는 내용, 체를리나가 돈 조반니의 유혹에 흔들려 결혼을 약속한 마제토에게 자기를 때려달라고 하는 가사로 노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생 정도 되는 어린아이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초등학생이 볼만한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그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푸치니의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오페라는 성인을 위해 만든 극이기에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내용이 많으며 예술작품이기에 귀족, 왕족, 종교계에 대한 풍자도 많아 폐륜적이며 음모와 암살 등이 난무하고 오늘날 막장드라마 이상의 막장극도 있습니다.
돈 조반니 중 '그대의 손을 나에게'(La ci darem la mano) : https://youtu.be/SJRZxSclj70
다른 부분보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역시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추다 보니 현장에서 조율하는 르네 야곱스의 지휘능력과 그것을 따라오는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피트에 안 들어가 있고 밖으로 나와있다 보니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축소하고 음량이 낮은 고악기로 연주한다고 해도 가수들의 음량을 압도하는 모습이 초장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음량을 조절하고 가수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야곱스와 오케스트라의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호흡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완벽했고요.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호흡은 앙상블이나 콰르테 같은 실내악을 하는 팀만큼 뛰어납니다.
4-5명 이상의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니 그 이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지휘자 없이 또는 피아노 지휘만 가지고도 이 모든 것들을 해내니 호흡의 괴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수들도 훌륭했습니다.
레포렐로를 연기한 로버트 글리도우(Rovert Gleadow)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모두의 찬사를 받았고 저는 개인적으로 돈나 안나 역을 맡은 폴리나 퍼스티르차크(Polina Pastirchak)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폴리나는 연기도 훌륭하면서 음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어 노래로도 연기를 매우 훌륭하게 해내는 가수였습니다. 이런 가수는 많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더욱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가수를 발견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당연히 임선혜 님은 인기가 많았습니다. 연기력과 노래는 여전하시더라고요. ^^
미안하지만 국내 오페라는 국립오페라단을 포함해도 극을 연기하고 만들어 내는 수준이 매우 높지 않습니다. 당연히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메트 오페라과 같은 곳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제 기준에 매우 흡족한 공연을 펼친 가수들과 스태프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훌륭한 오페라 공연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분 좋은 저녁이었습니다.
오페라 가수 중에는 정말 노래가 뛰어나지만 연기는 좀 떨어지는 가수가 있으면 노래는 좀 떨어지지만 연기가 매우 훌륭한 가수가 있습니다. 둘 다 뛰어난 가수중 운이 좋은 가수들이 세계 최정상 자리에 올라가게 됩니다. 노래가 매우 훌륭하지만 연기가 안돼서 오페라를 못하는 가수도 있습니다.
이날의 가장 큰 안타까움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실망스러워서가 절대 아니고 오페라의 성격상 가수가 주인공이어야 하니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조연이 되어야 됐어서 그 부분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 오페라의 성격상 음악이 선두에 나오기보다 배경음악처럼 활용되는 경향이 큽니다. 그래서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탁월한 실력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무결점이며 여유가 넘치는 연주와 공연에 함께 녹아들어 가수들과 연기하고 어울리는 모습들은 훌륭했죠. 제가 실황으로 봤던 7-8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훌륭한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는 너무 좋은 오케스트라입니다.
이날의 가장 큰 수확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파블로 헤라스 카사도(Pablo Heras-Casado)가 지휘한 멘델스존 교향곡 3,4번 연주 앨범을 발견하여 구매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조합의 4번을 실황으로 프라이부르크에서 감상했거든요. 그때의 감상평은 '이거 꼭 앨범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였어요. 제가 클래식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가끔 온몸이 떨리고 전율이 오르는 연주를 경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연주가 그중 하나였어요. 저는 3번을 더 좋아하지만 이런 불같은 4번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 공연 이후 4번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4번 4악장을 엄청난 속도로 연주하는데 그걸 모두 쫒아오는 단원들도 신기하고 파블로의 젊은 혈기여서 이런 해석이 나오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 시기에 몇 차례 파블로의 공연을 감상하면서 더 성장할 지휘자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많은 성장을 이뤘더라고요. 인지도도 당연히 높아졌고요.
돈 조반니 중 '샴페인의 노래'(Fin ch'han dal vino ) : https://youtu.be/WTT2RkrBsAs
훌륭한 공연과 함께한 기분 좋은 저녁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