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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버바비 Nov 15. 2019

다시 한번 도깨비의섬으로-세토우치국제예술제(1.5/2)

비버바비의 에센스

어제의 사고는 오늘의 과로로


오전 6시.

이틀을 하루로 줄인 여정을 시작한다.

그만큼 기상시간도 빨라졌다.

육아로 새벽기상이 단련되어 있지만 아이가 없으니 능력이 발현되지 않는다.

아빠의 초인적인 힘 같은 게 있나 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일단 점찍어놓은 또 다른 우동을 먹기 위해...


역시 먹는 생각...

먹는 생각이 기생수같이 몸을 지배한다.

진짜 장내 미생물이 뇌를 통제하나 보다.


이빨을 닦다가 우동을 먹겠다는 집념으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실소가 나온다.


6시인데 움직이는 일본인이 4-5명은 있다.

이들은 무슨 사연이길래 새벽 6시에 부스럭부스럭하며 나갈 채비를 하는 건가.


나는 항상 게스트하우스의 다인실로만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어느 나라를 가도 이런 풍경은 처음이다.

술 먹고 클럽 갔다 6시에 들어와서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경우는 정말 많았다.


여기는 20명이 숙박하고 있는 캡슐호텔이다.

만약 어젯밤 객실이 만실이라면, 4-5명이 깨어있다는 것은 20-25%의 사람이 새벽 6시에 깨어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놀라운 가마버터우동

오전 6시 반.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手打十段 うどん バカ一代(수타 10단 우동바카이치다이)로 향한다.

직역하면 '수타 10단 우동바보1대'라고 할 수 있는 강렬한 상호명이다.

일단 의미도 억양도 소리도 우동과 어울려 마음에 든다.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리고

내 바지는 다 젖어가고

나는 무대 커튼 같이 무거운 비를 열어젖히고 무대로 한발 한발 내딛는 각오로 이동한다.

새로운 음식점에 간다는 것은 나에게 이런 의미다.


아직까지는 개인사업이지만 나는 휴머네이션이라는 사업자명으로 컨설팅, 넛지 설계, 사운드 브랜딩 사업을 하고 있으며 엄밀히 따지면 휴머네이션의 대표이기에 성심성의껏 살아간다.

2년간 충분히 고민하고 쌓아온 비전, 미션에 대한 철학도 브랜드에 녹여놓았으니 그만큼 애착도 크다.

콘텐츠 시리즈로 인스타그램에 '휴머네이션기습점검'을 하고 있고 기습 점검을 할 때마다 매장의 주력 음식을 시켜먹는다.

사실 식음료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 업과 판매업을 기습 점검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업종은 요식업이라 어쩔 수 없다.

6시 반치고는 고객이 많이 있지만 매장의 좌석이 많기에 아직까지는 빈 좌석이 많다.

나는 카운터로 이동해 메뉴를 찬찬히 살피기는 하지만 주저 없이 이 가게의 주력 메뉴인 가마버터우동을 시킨다.

자리를 잡고 앉아 우동을 기다리며 기습 점검에 올릴 내용을 적는다.

그에 적합한 사진을 찍는다.


"18번 손님!"


한국처럼 띵동 하는 전광판의 숫자가 아닌 아주머니의 정겨운 목소리가 내 번호를 부른다.

(시간이 지나고 작성하게 되어 번호를 불렀는지 음식으로 불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곧바로 음식을 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음식 준비가 되고 나를 불렀다.)


별생각 없이 계란을 까서 넣고 사진을 찍고

별생각 없이 쯔유를 적당히 붓고

별생각 없이 버터가 녹을 수 있게 우동면발 사이로 밀어 넣고

별생각 없이 버터가 녹을 때까지 면을 돌리고

별생각 없이 면을 들어 올린다.


내 입 근처로 면이 다가왔을 때, 강렬한 버터향이 별생각 없던 내 두뇌를 각성시킨다!

면이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대박사건.


사실 일본에 올 때마다 향기마케팅을 잘하는 가게나 향을 제품의 주력으로 쓰는 가게를 많이 만났다.

일본이 유행하면 우리나라도 몇 년 뒤 유행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나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보편적인 성향 차이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향이 일본처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보편적인 한국인은 여러 감각기관의 정보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보다 둔감한 편이다.

나는 사회학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으나 한국인의 '빨리빨리'와 빠른 변화가 하나를 오래 관찰하고 향유하는 습관과 멀어지게 했고 이 결과 감각기관을 깊게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추측한다.


우동에서 향의 강렬함을 경험하리라 상상도 못 했다.


이 버터는 무슨 수를 쓴 것이다.

향이 독보적으로 더 강하게 나도록 버터나 면에 장치를 걸어놓은 것이다.

나도 요리를 하고 버터도 즐겨 쓰지만 일반 버터만으로 이렇게 강하게 향이 올라올 수 없다.


카가와 현의 우동을 사누끼 우동이라 하는데 이 지역의 면은 대체적으로 수준이 높다.

찰지고 단단하고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을 가지고 있는 면을 사용한다.

그래서 카케는 국물, 붓카케는 쯔유와 같은 소스와 부산물, 가마우동은 쯔유로 승부를 보는 경향이 크다.

아마 다카마쓰 일대인 카가와현은 전 세계적으로 우동의 최고 격전지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격전지에서 이 집은 버터로 정체성을 만들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것뿐만이 아니라 우동바보2대로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다카마쓰에 오면 매일 우동과 행복한 데이트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면이 아닌데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면이 우동이 아닌데도

여기서는 삼시세끼 우동만 먹어도 행복하다.

이탈리아에 가면 파스타와 연애하는 그런 비슷한 기분이다.


귀신을 만나러 비바람을 헤치고

오전 7시.

이놈의 비는 우동을 먹고 나와도 여전하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다.

그래서 일기예보를 보니 10시부터는 비가 안 온다고 하고 위성사진을 보니 비구름도 물러날 것 같다..


제발 11시 전에 청아한 하늘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메기지마에서 자전거를 빌려 해안가를 달리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시 하고 싶은 것이다.


청아한 하늘과 깨끗한 바람과 멀리 보이는 섬들.

반짝이는 물빛.

그 속을 가로지르는 나.

소리를 질러도 노래를 해도 아무도 없으니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

대자연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있어준다.


난 그 경험이 너무 좋았다.

3년 동안 이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기를 꿈꿔왔다.


10분 동안 빗속을 첨벙첨벙 걸어 숙소로 돌아와 서둘러 다카마쓰항으로 향한다.

뱃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붐비는 전차다.

다들 어디론가 향한다.

아마 학교나 직장이겠지.

이들은 이렇게 어디로 가는지가 분명하지만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고 가고 있을까?


이번 여행은 워낙 짧아서 세토우치국제예술제 시즌 패스와 3일 페리 탑승권을 사지 않았다.

사실 어제부터 여행이 가능했다면, 4000엔과 2500엔 보다 약간 더 쓸 예정이 나왔기 때문에 패스를 샀을 것이다.

일정의 문제로 그만큼 볼 수 있는 작품과 갈 수 있는 섬이 적어졌다.

하.......


정말 작은 두 섬, 메기지마와 오기지마를 가는 페리 표를 사고 8시에 출발하는 페리에 오르니 사람들이 꽉 차있다.

복잡한 게 싫은지라 선상으로 나가니 비와 구름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잿빛 바다가 펼쳐진다.

'이 날씨를 뚫고 오니가시마로 가는 건가?'

오니가시마.

일명 도깨비의 섬.

메기지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니가시마로 간다면 필히 이런 날씨를 뚫고 가야 도깨비를 만나는 맛이 있으리라.


한자로 풀어보면 메기지마는 여자나무섬이고 오기지마는 남자나무섬이다.

하지만 메기지마는 일본 사람들에게 도깨비의 섬으로 유명하고 오기지마는 돌등대가 유명하다.

메기지마가 모모타로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도깨비 동굴이 메기지마에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 오니가시마, 즉 도깨비의 섬이 되었다.


남프랑스 카시스에서 정말 바이킹 같이 흔들리는 배를 탄 이후, 나는 배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생겼다.


공포감이 내 몸을 휘감는다.

하지만 거대한 페리는 거센 비바람과 파도를 거침없이 물리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 정도의 기백은 있어야 도깨비를 물리치지!


그렇게 20분,

메기지마에 도착한다.


섬 중앙 산 정상의 도깨비동굴은 관광명소이다.

실제로 방문하면 도깨비와 모모타로 이야기를 조각상으로 만들어놓았다.

미안하지만 조각상의 수준은 한국 시골의 관광지 놀이시설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곳에도 예술작품이 있는데 다카마쓰를 포함한 지역주민들과 아이들이 기왓장에 도깨비 가면을 만들어 전시해 놓은 것이다.

동굴은 지난번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니 동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귀신의 섬에서 피로를 쓸어내리며

배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무언가를 사서 어디론가 향한다.


나도

눈치껏 급하게 어디론가 따라가고

눈치껏 무언가를 사려고 두리번하다

사지 않는다.


이들이 산 것은 도깨비 동굴로 가는 버스 티켓이다.

하마터면 강물에 휩쓸려 동굴까지 갈 뻔했다.


'이왕 왔으니 동굴에 갈까?'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아니다.

9시면 전시가 시작하나 버스는 9시 20분쯤 돌아온다.

전시를 20분 늦게 보기 시작하는 것도 시간이 부족한 나에게는 사치다.


이래저래 일도 하고 글도 쓰며 전시가 오픈하기를 기다리기 위해 벤치에 앉지만

내 눈은 옆자리에 빈 벤치로...

눕고 싶다.....

6시부터 바빴던 신체를 쉬게 하며 잠시 이번 여행을 돌아보자.


이번 여행은 아내와 어머니의 작당에서 시작되었다.

당연히 아내가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임신부터 육아까지 수고한 나를 세토우치국제예술제에 보내려고 둘이 쿵작을 맞췄다.

참고로 최근에 개인적으로 작당하여 아내가 원하는 최고의 휴식을 아내에게 선사하였다.


이렇게 신생아와 아내를 놓고 해외로 떠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나와 내 일과 멀리 봐서는 가정을 위해 다녀오는 게 좋다고 판단하였다.

새롭게 우리 가족으로 합류한 아이의 뇌 발달을 위한 놀이는 나 아니면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일정은 최대한 줄여 2박 2일로 잡았다.

당연히 출발 당일 새벽 5시 반 공항버스를 타기 전에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출발했고 도착하는 날도 오후부터는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계획했다.


그 이틀 중 하루가 비행기 사건으로 날아갔다.

같이 오사카에서 버스를 타고 다카마쓰까지 온 아주머니 그룹의 한 아주머니가 그러더라.

"우리처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렇게 하루 없어져도 그나마 괜찮은데 정말 시간 빼기 어려운 사람 같은 경우는 너무 짜증 나겠다."

네, 그런 사람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 재밌고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짜증만 내고 있으면 뭐합니까.

나한테만 손해지.


이번 예술제에는 내 인사이트를 쌓기 위해 경험해보고 싶은 전시가 메기지마와 쇼도시마 쿠사카베항 근처에 있다.

오기지마와 데시마의 전시들은 다시 가고 싶었지만 어제 비행기 사건으로 인해 기존에 경험한 전시들은 모두 패스하고 경험해 보고 싶은 메기지마 전시 하나를 일정에서 제외하면서 최종 스케줄을 확정했다.


이 곳 여행의 특징이자 최대 난관은 배 타는 시간이다.

배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일 편하게 여행 계획을 짜는 방법은 쇼도시마를 제외한 큰 섬은 하루에 한섬만 가고 작은 섬들은 메기지마, 오기지마처럼 잘 패어를 맞추어 하루에 두 섬 정도를 방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닥칠 일을 여러분도 겪게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더 읽어보면 알 것이다.


나의 철학적인 사고 회로를 건드는 모든 예술작품들을 사모한다.

오전 9시 15분.

몸이 다시 움직인다.

동굴에 다녀왔어도 비슷한 시간이네...

도깨비 동굴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지 않기로 결정한 나의 결의는 피로 앞에서 박살이 났다.


아직도 비가 온다.

예보보다 일찍 비가 그치길 기원하며 나갈 채비를 한다.


거의 한 시간 실내에 앉아 있으니 바지가 말랐다.

너무 좋지만 나가면 다시 젖을 바지...

너는 이번 여행에서 여기 까진가 보다.


비가 오는 길을 뚫고 자전거로 다니던 익숙한 골목길들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메기하우스에 도착한다.


메기하우스는 영상으로만 남기겠다.

메기하우스 영상 : https://youtu.be/izqRDW9UppI 

3년 전과 전시 내용물은 다르다고 하여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지만 실망할 정도로 300엔이 아쉬웠다.

천천히 감상했으면 작품들의 특별한 점을 찾아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메기지마에서 3시간밖에 허락되지 않았고 1시간을 날린 나에게 '천천히'는 사치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음 전시를 가기 위해서는 바닷가로 나가는 것이 좋다.

바닷가로 가기 위해 계속 동쪽으로 가는 골목길들을 골라 이동한다.

동으로, 동으로, 동으로,

드디어 다시 바다.

그렇게 나타난 바다에서 나를 반겨주는 것은 3년 전 청아한 하늘 아래서 보고 들었던 20th century recall.

짙은 회색 하늘과 빗소리 속에서 3년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찬란히 빛나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비가 작품 감상을 방해하고 과거에 천천히 본 경험이 있기에 영상만 촬영하고 이동한다.


20th century recall과 wind watcher 영상 : https://youtu.be/lf02PZUWjm0

빨리. 빨리.

복잡. 복잡.

불편. 불편.

작품 감상할 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들이다.

이럴 때면 종종 어제의 비행기 사건이 문득문득 싫어진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 여행 처음으로 새롭게 보게 되는 작품 wind watcher가 있다.

꼭 보려고 한 작품은 아니나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작품은 단순하다.

풍향계를 크게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한쪽은 풍향계의 역할을

다른 한쪽은 앉아 있는 모습의 인간형 조각을 만들어 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가 와서 바람 파수꾼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파수꾼처럼 이렇게 가만히 자연을 관찰한 것이 언제 였을까?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드넓은 바다와 파도를 보고


초등학교 때에는 한 번에 1시간 넘게 바라보기도 하던 자연현상들인데

성인이 되어 이 자연현상들을 바라본 시간이 1년 동안 0에 가까워졌다.

너무 바빠서인가?

이제는 이들을 잊은 건가?


나는 그래도 자주 하늘을 보는 편이지만 길어봐야 10분을 넘기 어렵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고

머릿속은 복잡하여

나의 두뇌는 하늘을 향하고 있는 나의 시선을 멀어지게 하여 결국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가끔 현실과 이성적 사고는 사랑하는 사이여도 떨어지게 만드는 몬테규 가문과 캐플릿 가문 같다.

좀 더 자연을 지켜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련다.


메기지마에는 그 외에도 흥미로운 전시들이 여럿 있지만 전에 방문하였고 시간이 부족하기에 이번 여행에서 보고 오려고 한 4가지 전시 중 하나인 little shops on the island를 보러 간다.


이 전시는 2층 건물에 공간을 나누어 전시해놓았다.

1층에는 중국의 결혼식 대기공간, 탁구장, 뽑기방, 세탁실, 안마방을 만들어놓았다.

2층에는 중국의 결혼식 연회장, 그리고 다다미 방에는 메기지마 섬에 살고 있는 부부들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영상을 참조하면 더 확실하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Little shops on the island 영상 : https://youtu.be/jhGvpKABCc8


이번 세토우치국제예술제에서 보고 싶던 전시는 모두 공간과 정체성의 결합을 보고 싶었다.

앞으로 적게 될 보고 싶던 전시들은 모두 훌륭하였고 기대 이상이었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공간과 정체성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괜찮았던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이 공간이어야만 더 빛나는 작품이 없었다는 의미다. (기존의 전시에는 여럿 있다.)

이런 측면에서 메기지마의 이발소 전시를 가장 기대했는데 이발소는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으로 못 가게 됐다.


중국의 결혼식 대기공간 같은 경우, 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중세 건물이나 고대 건물 또는 그 밖의 풍경이 그러한 곳에서 전시되었다면 흥미로웠을 것이다.

이 전시에서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번체로 쓰인 간판과 영어 간판과 정갈하지 않은 거리,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라 중국, 대만, 또는 홍콩의 한 골목 같은 느낌을 준다.

타문화권의 공간을 만들어 생긴 정체성이 전혀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즉, 차별은 없지만 조화로웠다고 설명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과 높은 수준은 다른 이야기다.

이 작품의 수준은 매우 높다.


만약 안대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비행기를 태워

차를 태워

배를 태워

여기에 앉혀놓고 안대를 풀어주고 귀마개를 뺀다면

여기가 중국이나 홍콩이나 대만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일본인데도 말이다.

이 결과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요소가 외부환경이다.


거리극을 하는 공연팀은

사전에 도시를 답사하고 자신들의 공연을 극대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물색하고

시와 협의 후, 원하는 공간에서 공연을 한다.

이 작품은 거리극을 하는 팀이

공연에 적합한 훌륭한 공간을 찾아 공연을 한 것과 같이

작품을 위해 훌륭한 공간을 찾아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공간과 정체성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괜찮았던 작품은 없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공간과 정체성의 결합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정체성의 결합이 뛰어난 작품이다.

두 개의 간판이 원래 있었다면, 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한 훌륭한 공간을 찾은 것이고

두 개의 간판이 원래 없었다면, 간판 두 개로 주변 환경을 완성시켜버렸다.

예상도 못한 성과를 얻었다.


1층에 가장 큰 전시는 탁구장이다.

이 탁구장은 중국의 결혼식 대기공간과 달리 흥미롭다.

일반 탁구 테이블이 있지만

테이블 위를 채색해 놓은 테이블이 있고

움직이는 울퉁불퉁한 테이블이 있고

7명이서 칠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여럿이서 온 사람들은 누구나 탁구를 치고 가는 분위기다.

나는 혼자 왔으니....

그냥 넘어가자.

외로워하지 말자.


일단 2층으로 올라가자.

다다미방들이 보인다.

그 안에는 사진들이 있다.

메기지마에 사는 부부들을 찍은 사진이고 사진 속 부부는 자신의 결혼식 사진을 들고 있다.


마음이 찡하다.

개인적으로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작품이다.


나는 곧 결혼 1주년을 앞두고 있고 사진 속 부부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오래된 다다미방과 오랜 인생을 살아온 노부부의 모습이 일치하여 더욱 마음이 뭉클하다.


우리의 40-50년 뒤 모습은 어떨까?

나이는 들어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몸도 불편하겠지만 이들처럼 해맑게 웃고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어떤 가정을 꾸리고 어떤 결혼생활을 하고 살아갈까?

우리의 결혼은 어디로 갈까....

이들의 과거가 담긴 흑백사진 속에 내가 살고 있고

이들의 현재가 담긴 컬러사진이 나의 미래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책임감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점점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무게는 익숙해져 잊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우리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어 내 어깨에 있는 녀석을 다시 상기시키게 만든다.

아빠, 파이팅!


다다미 방을 지나 중국의 결혼식 연회장이 나온다.

1층만큼은 아니지만 다다미방과의 조화가 훌륭하게 어울린다.

오랜만에 즐기는 예술작품이어서 그런가?

발걸음이 매우 가볍다.

나는 분명 신났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와 밑으로 내려간다.

내려가자마자 세탁실이 나를 반긴다.


모형과 진짜 드럼세탁기로 가득 찬 방에 세탁물이 돌아가고 있다.

모형 드럼세탁기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탁물은 영상이다.

데카르트가 생각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세탁기 안의 세탁물을 방금 집어넣었기에 세탁기의 유리를 통해 보이는 세탁물은 방금 집어넣은 세탁물이다.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철학적으로는 여러 논쟁거리를 만들어낸다.

하물며 세탁기나 세탁물 자체가 실제 하는지에 대해서도 문제 삼을 수 있다.

이 전시도 그런 생각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가짜가 진짜이고 진짜가 가짜인 것은 아닌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가? 허구가 진실이고 진실이 허구인 것은 아닌가?


뇌와 감각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나 충고를 하자면

'보고 있는 것을 쉽게 믿지 말아라.'

우리가 보는 것은 뇌에서 많은 휴리스틱(편견)을 발생시키며 착시도 생각보다 쉽게 나타나고 보이는 것이 다른 감각정보와 합쳐져야 제대로 판단되는 경우 역시 생각보다 많다.


다음에 도착한 전시실에는 스크린 앞에 바퀴가 빛나는 자전거가 놓여있고 자전거 타는 모습을 상영하고 있다.

자전거 바퀴가 회전하면서 世界はどうしてこんなに美しいんだ라는 글자가 보이고 뒤에는 노을이 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영상의 반대편에는 중고서적이 전시되어 있다.

'세상은 어째서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인가.'

위에 적은 일본어의 의미다.

마음이 따뜻해져서 한참 동안 영상을 바라본다.


노을 하나만으로도

자전거를 타고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우리가 편하게 숨 쉬고 불편하지 않은 환경만으로도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 가정에 새롭게 온 아이는 아직 세상살이 100일을 채우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며 살인미소를 연속으로 날린다.

우리 아이는 자고 일어나 매일 아침 세상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가 보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렇게 쉽게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던 시절을 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지면서 잊었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다음에 접한 방에는 영혼을 마사지해준다고 쓰여있다.

좀 섬뜩하다.


들어가 보니 영혼을 안마해주는 안마 기계와 물그릇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우리가 아는 안마 기계와는 다르게 괴기스럽고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물그릇 위에는 쇠추가 있는데 기계를 작동시키면 내려와서 물의 파장을 만든다.

영혼을 안마하는데 굳이 물리적으로 편안하고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계를 작동하면서 만들어내는 삐걱삐걱 끼익끼익하는 소리와 날카로운 금속의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과 영혼을 동일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쉽게 믿는 간사한 동물이다.

영혼을 안마한다는 사전 정보로 인해 이 안마 기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영혼이 안마되었다고 믿고 만다.

나도 그렇게 영혼이 마사지되었다고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실을 나선다.

좋은 게 좋은 거고 밑져야 본전이니까.


아직 안 간 곳에 가보니 '오늘의 럭키아이템' 이라고 쓰여있는 단상에 버튼이 하나 있다.

'누르지 마세요!'라는 경고가 있지 않는 이상, 호기심 덩어리인 인간은 누구나 눌러본다.


버튼을 누르니 벽에 있는 전구들이 순서대로 켜지다가 속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하나가 당첨된다.

나의 오늘의 럭키아이템은 낚시에 사용하는 루어란다.

오늘은 바다낚시를 해야 하나 보다.

우리는 이렇게 없던 정보가 머릿속에 생기면 그 정보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이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엥커링 효과'라고 부른다.

이렇게 머릿속에 하나의 엥커가 생기게 되면 우리는 일반적인 상황이면 지나칠 것도 그 엥커와 연결 지어 귀결시키기도 한다.

오늘의 띠별 운세나 별자리 운세가 잘 맞았다고 판단하게 하는 원인도 이것 때문 일 가능성이 높다.

운세가 나의 하루 일진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 하루를 운세에 연결시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바빠서 낚시를 할리가 없기에 루어라는 럭키아이템은 나의 새로운 앵커로써 오늘의 나에게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괜히 뇌를 쓰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동전이라던지 티켓이라던지 오늘 자주 접할 아이템이 럭키아이템으로 나왔다면, 내 뇌는 쓸데없이 좀 더 많은 회전을 할 것이다.

루어

참으로 고마운 럭키아이템이다.


에라이 밥이나 먹자

오전 10시 반.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였지만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던 전시를 뒤로하고 건물을 나선다.


비가 그쳤다!

하지만 아직 잿빛 하늘이다.


사실 오늘 3시에 메기지마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예약해 두었지만 오늘 오후까지 메기지마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직접 예약을 취소하러 간다.


비가 오지 않아 들뜬 발걸음을 이끌고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알고 보니 10시 50분에 첫 식사가 있다.

15분 남았다.

식사는 30분간 진행되기에 중간에 나간다면 11시 2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탈 수 있다.

잠시 자전거를 빌리러 갈까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잿빛 하늘이고 자전거를 대여하고 반납하고 배를 타려면 자전거는 10-15분만 탈 수 있다.


종업원에게 3시 식사를 취소하며 10시 50분 식사에 자리가 있냐고 물으니 자리가 있단다

혹시 식사 도중이지만 11시 10분쯤 자리에서 일어나도 괜찮은지 물으니 괜찮단다.


그래. 그냥 밥이나 먹자!


이 식사는 '세토우치 가스트로노미'라고 해서 전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세토나이카이에서 나는 식재료만을 가지고 식사를 제공한다고 하여 이 지역의 음식을 즐기기 위해 예약했다.

사실 3년 전에도 여기서 식사를 하였지만 토마토소스를 버무린 소면 이외의 음식은 기억에 남지 않아 예약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이번 식사의 콘셉트는 메기지마의 역사다.

그래서 식사는 2000년 전 동굴에서 살던 사람들의 유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돌과 나무로 테이블 세팅이 이루어져 있다.

돌로 눌린 종이를 들치면 첫 번째 접시가 등장한다.

특별한 연출이다.

셰프는 동굴의 유물 중, 문어를 잡는 항아리가 유난히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백제와의 교류를 통해 메기지마에 새로운 식재료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헤이즐넛이라고 알려진 개암이라고 한다.

엥?

벡제?

갑자기 백제가 나와 어리둥절하다.

백제가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한 것은 고등학교를 충실히 다녀 알고 있지만 메기지마까지 영향을 끼쳤을 줄이야.


첫 번째 접시는 토마토와 헤이즐넛을 약간 발라놓은 문어숙회와 삶은 무, 연근, 미역이 함께 나오고 호두, 소금, 벌꿀을 섞어 만든 소스를 제공한다.

우리가 맛을 보기 시작하는 동시에 셰프는 정신없이 다음 접시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30분이라는 시간을 지키려면 이렇게 급할 수밖에 없나 보다.


두 번째 접시는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동굴의 근처에 있는 고분에서 시작된다.

고분에서는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고 그중 하트 모양의 귀걸이가 있었다고 한다.

이 귀걸이는 백제에서 생산되었기에 메기지마도 백제와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토우치같이 소금을 사용한 발효음식도 중국에서 건너왔고 이런 음식을 기반으로 간장이 탄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말한다.

참고로 토우치는 중국에서 잘 쓰이는 식재료로 검은콩을 발효시켜 만든다.

일본은 고기 먹는 것을 오랫동안 금지하고 있었지만 1400년 전부터 이 금기가 풀렸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토대로 고기 요리와 토우치를 준비했다고 한다.


셰프는 찜기를 가지고 나와 우리들 앞에서 능숙한 솜씨로 플레이팅을 하고 다른 종업원들이 첫 번째 음식이 올려져 있던 종이를 치우고 두 번째 접시를 가져온다.

두 번째 접시에는 소금에 절이고 삶은 돼지고기와 파, 상추, 우엉이 올려져 있고 토우치가 함께 나온다.

세 번째 접시는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동굴 이야기를 한다.

동굴은 그전까지 특별히 조명받지 못하다가 90년 전 발견되었고 그 당시 모모타로 이야기 책이 출판되어 인기를 끌고 있었어서 메기지마가 모모타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오니가시마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세토나이카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메기지마는 관광지로 부상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세토나이카이에서는 일본 최초로 방어 양식이 성공하여 양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 접시는 그릴로 굽고 데리야키 소스를 바른 양식 방어와 재철 야채인 잎새버섯으로 만든 다키코미 밥이 영귤과 함께 나오고 쇼도시마에서 만든 간장과 카가와현에서 나온 소금으로 멸치를 우려낸 국물이 제공된다.

마지막 접시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년 전부터 세토우치국제예술제라는 큰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메기지마에도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지금 식사를 하는 곳 역시 예술작품이자 레스토랑으로 된 것이 9년 전 일이다.

레스토랑의 중정은 모래로 되어있고 발바닥 자국이 있다.


마지막 접시는 그 발자국을 표현한 디저트로 수제 발 모양 쿠키가 나온다.

식사의 전체 콘셉트는

2000년 전부터 존재하던 외국과의 문물교류,

현재 국제예술제를 하면서 일어나는 해외와의 교류.

서로 다른 시대이지만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콘셉트를 정했다고 한다.


20분 정도 쉴 새 없는 식사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훌륭한 설명이었다.

많은 공부가 되었다.


확실히 교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세상을 변화시켰고

현재도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교류가 일어나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간다.

'음식의 언어'라는 책은 음식의 어원을 찾아 어떤 음식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전파되며 변해왔는지 잘 다루고 있다.

음식은 역사이고 문화이며 인류는 접근성과 교통이 불편할 때도 서로서로 식문화를 공유하고 살아왔다.

역시 식문화는 너무 재밌다.


오늘의 식사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판매, 장사, 사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다.

바로 자기중심적 자랑이다.


내가 잘난 점

내 제품이 뛰어난 점

내 음식이 훌륭한 점


자랑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래야 팔린다.


하지만 내 입장이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자랑해야 한다.

소비자가 소유하고 싶게, 어서 빨리 먹어보고 싶게. 그 효과를 얻고 싶게, 안달 나게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로 소비자가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도록 또는 사용해보면서 실제로 자기가 가져가서 쓰고 싶게 유도해야 한다.

이런 기대가 없다면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기준점은 낮아지고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구매는 일어나지 않고 음식도 맛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오늘의 점심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각적 이미지로 음식 맛을 기대하기 어려운 비주얼이고 언어적 정보로도 음식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의 기대 이상의 결과를 제공해야 소비자는 만족한다.

기대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낮은 기준점을 제시하면 소비자를 기대 이상 평가하게 만들기 쉽다.

하지만 기대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좋게 보면 '보통' 안 좋게 보면 '나쁨'이나 '매우 나쁨'으로 기준점을 설정시킨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만족' 또는 '대만족'까지 올리기 어렵다.

기껏해야 '보통'으로 올라간다.

기준이 '매우 나쁨'인데도 불구하고 '대만족'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만족'에서 '대만족'으로 올리기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은 기대하게 만들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 기대 이상으로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위의 경우와 반대로 너무 기대하게 만들면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진다.

요즘의 마케팅 전략은 고객을 너무 기대하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신규 고객은 유치하게 되지만 그렇게 해서 오게 된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고객의 재방문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맛있었는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적은 음식점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페어링이 어떻고 어떤 재료에 어떤 조리과정을 거친 것이 earty 한 쓴맛을 줄이고 감칠맛을 높인다라던지 식재료 조리나 재료의 신선도 등을 평가할 뿐 '맛있다', '맛없다'라는 평가를 하지 않는다.

'맛있다', '맛없다'는 사실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맛있다'는 당신의 기호에 식음료가 맞았다는 것이고

'맛없다'는 당신의 기호에 식음료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기호는 문화권에 따라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가지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호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세토우치 가스트로노미'를 평가하면

접시에 대한 설명은 매우 훌륭하였고 스토리텔링도 훌륭하였으며 역사적으로 배운 것도 많고 개인적으로 인사이트도 얻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대되는 식사가 아니었고 놀라움도 없었고 내 요리에 적용하고 싶은 부분도 없었다.

나의 뇌의 지적인 부분은 만족시켜 주었지만 감각적인 부분은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역사수업을 음식과 엮어서 했는데 메인이 수업이고 음식이 서포트였다.


3년 뒤, 다시 메기지마에 오게 되면 매기지마의 역사는 머리에 남아 있을 것 같지만

오늘의 점심에 나온 음식은 기억에서 지워져 있을 것 같다


꼭 타고 싶습니다!

오늘의 식사에서 느낀 점을 급하게 메모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와서 묻는다.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시각은 계속 체크하고 있었고 11시를 넘긴 것은 알았는데 다시 보니 11시 11분이다.

"네, 지금 나가야 돼요."

하지만 기록이 더 중요하여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속기처럼 메모하고 급하게 마무리한다.


사누끼 맥주가 반 정도 남았다.

아깝다... 원샷으로 들이키자!

캬!

서둘러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해변가에 도착하니 11시 16분이다.

나는 페리가 작게 보이는 거리에 있다.

'안 뛰면 놓친다. 뛰면 탈 수 있다!'

오래간만에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뛰기 시작한다.

안 뛰다 뛰니 너무 힘들다.

하지만 이번 배를 놓치면 2시간 뒤에 배가 있고 그렇게 되면 쇼도시마에 못 간다.

죽어라 뛴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집에 돌아가면 운동 좀 해야겠다.


다행히 11시 19분에 티켓을 보여주는 곳에 도착했고 나의 승선을 끝으로 배가 출발 준비를 한다.

멀리서부터 죽어라 뛰어오는 나를 보는 게 미안해서라도 출발 준비를 조금 늦쳐주었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도깨비 두목을 때려잡고 다른 도깨비들의 추격을 피해 죽어라 뛰어 배에 승선한 용사같이 지쳐서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도깨비를 일망타진하고 마을 사람들을 구해낸 해피엔딩 같이 저 멀리 맑아진 하늘이 몰려오고 있다.


배는 다카마쓰항으로 향한다.

배는 저 멀리 맑아지는 하늘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이어지는 내용은 기억이 날아가기전에 최대한 빨리 작성하려했는데 이번 포스트가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 본업을 손도 못대고 글에 메달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음 내용을 잊지 않도록 메모만 해놓고 일단은 본업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내용은 2주뒤에 공개하도록 일정을 맞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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