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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뜻한 Apr 24. 2020

코로나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민낯

코로나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요즘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말이다. 정말 세상의 지평이 달라진 걸까? 코로나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말이다. 어쩌면 정말 우리는 다시 코로나 이전의 삶을 떠올리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늘 마스크와 함께하는 삶. 나와 타인을 위한 방어막. 하지만 동시에 나를 옭아매는 갑갑한 족쇄(특히 통근 시간에 빽빽한 사람들 속에서 마스크를 몇 시간 동안 쓰고 있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닐 것이다.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의료진은 의료진대로 고난이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특히 코로나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 느낀 절실한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잊혀질 것을 알기에, 기억해 두기 위해 기록해 두고자 함이다.


 1. 마스크와 사재기

 "아니, 이렇게 다 매진이라고?"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특정 제품이 '품절'이라고 뜨는 것은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야말로 물건이 없어서 살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후회가 들었다. 설 명절 즈음부터 마스크가 초록창 실시간 검색어에 뜰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이것도 생존 경쟁의 일부인가 싶었다. 발 빠른 친구들은 이미 대량으로 사놓았던데. 한 개도 구하지 못하니 정말이지 조바심이 났다.

 마스크 사재기, 마스크 품절... 언론에서 보도되는 기사들도 조바심에 불을 지폈다. 지금 당장 구하지 못하면 지하철에서는 어떻게 하나? 내 옆에 누가 탈지도 모르는데, 마스크 없이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단 말인가. 아찔했다.

 인터넷에서 블로그에 '마스크 구매 후기' 등을 적극적으로 검색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스크를 몇 개라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었다. 내 수중에 마스크를 얻게 되자, 그제야 타인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세대인 내가 이 정도로 구하기 어려운데, 기계에 친숙하지 못한 노인층, 접근이 어려운 시각장애인, 한국인이 서툰 외국인들은?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고 나서 비교적 마스크 수급도 점점 안정세를 찾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공적마스크 외의 마스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바이러스를 차단해주는 마스크가 아니라, 전시 상황에 필요한 생존 물품이었다면? 구하기 '힘든' 게 아니라,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2. 외국인과 혐오

 지하철 내 옆 자리에 앉은 사람. 가만 보니 한국인은 아니다. 그럼 외국인? 스멀스멀 불안함이 밀려온다. '이러다 나, 저 외국인한테 코로나 옮는 거 아니야?'

 혹자는 다 이유가 있는 불안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사실에 기반한 불안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다.

 단지 상대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함.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두려움이 감지되는 건 아니었다. 근거 없는 두려움은 때로는 폭력과 차별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는 '혐오'라고 부른다. 일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곳들)에서는 코로나 발생과 맞물려 아시아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행, 근거없는 차별이 난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상대가 외국인이라서 느끼는 두려움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때때로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나?' 하는 의문도 '그래, 지금은 내 가족과 내 자신의 건강이 우선이니까' 생각하며 정당화된다.

 근거없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혐오는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올 수 있다. (*단, 여기서 외국인 입국금지 등의 정책의 정당성 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3. 가난과 바이러스

 "마스크가 한 장에 사천원 오천원이라고?" 비싸도 너무 비싸다. 폭리를 취하려는 상술인지, 수요가 너무 집중되어서인지 간에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단 몇 백원의 물가 상승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타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닐지 모른다.

 경제적 불평등은 바이러스 상황에 따른 변화를 느끼는 각자의 체감도를 다르게 만든다. 물론 비단 바이러스 상황뿐만은 아닐 것이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상황이 아니라, 설사 전쟁 상황이더라도 경제적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이 더 취약한 것은 동일할 것이다. 문제는 그럴 때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 생존 물품을 구하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 일은 없게끔 만들어 주는 것 아닐까?




 이 글은 코로나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이나 기조를 비판하거나 찬성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 전혀 아니다. 다만, 보수나 진영 논리 어느 쪽이든 국민을 대표하여 선출된 '대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부라면, 최소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자들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은 응당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책무가 아닐까 싶다.

 꼭 정부만이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도, 일반 시민도 내 주변에 소외된 이웃이 있다면 이들을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코로나 사태만 예를 들자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하는데 앞서 소외될 수 있는 계층이 없을지를 꼼꼼히 고민해 보는 것. 그 후에 그들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만드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예를 들면 휠체어로 쉽게 접근 가능한 약국을 지자체 차원에서 안내하는 것 등). 그리고 앱을 통해 마스크를 파는 약국을 알려줄 때 시각장애인이나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 등을 위한 음성 안내 기능을 추가하는 것. 국내 체류 외국인도 마스크 5부제에 소외되지 않도록 안내문 등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문자나 온라인 상으로 배포하는 것. (이 중에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회공동체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모이고 모인다면, 세상은 한 뼘 더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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