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박 16일의 중국 여행 후의 뒤늦은 단상
총 15박 16일의 중국 여행을 하게 되면서 느낀 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편견은, 때때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걸어서 부딪쳐서 직접 무언가를 마주하기 전까지 갖고 있던 생각들. 그것들은 편견 혹은 선입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고정관념은 종종 우리가 진실을 마주하는 것을 두렵게 만들고, 정작 우리가 진실을 마주했을 때에는 진실이 아닐 거라고 의구심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무언가를 정확히 알기도 전에 자기가 가진 잣대로 재단해 버리려고 하는걸까? 어쩌면 그 옹졸한 편견으로 세상을 비좁게 바라보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편견 없이 진실을 마주하기에는 우리 삶에 너무나 여유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느낀 15박 16일 간의 중국'과 '내가 갖고 있던 중국에 대한 편견 혹은 선입견'. 두 개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불일치하는 점들이 훨씬 더 많았다.
중국이 '짝퉁'의 나라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New Bailun', 'New Bunren'이 적힌 간판이 적힌 신발가게가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되면 더더욱 놀랄 것이다. 짝퉁 신발이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파는 것을 보면 '혹시 짝퉁인가?'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 되지만, New Balance와 동일한 무늬의 로고가 박힌 신발을 보게 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같이 여행하던 친구는 나에게 'New Balance는 중국에 공식적으로 진출한 적이 없다'는 글을 보여주었다(하지만 백화점에서 New Balance 매장을 본 적은 있다...과연 진짜일까?). 하지만 길거리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변형되는 New Balance의 짝퉁 가게들이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게 짝퉁인가 아니면 New Balance의 중국 버전인데 이름이 다른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 지경에 이른다.
또 다른 짝퉁의 예로는 Seven Eleven과 Sevenway가 있을 수 있겠다. 중국 청두를 여행할 때 Sevenway라는 이름의 편의점을 정말 많이 봤는데, 그것 나름대로 정식 상표일수도 있겠지만 처음에 봤을 때 Seven Eleven과 구분이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서 시안의 한 거리를 가고 나서야 중국의 짝퉁 시장에 대한 의문이 다소 풀리게 되었는데, 그 거리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처럼 형성된 시장 거리에 '짝퉁'만을 당당하게 팔고 있었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그냥 일반 시장 거리와 흡사하다.
Calvin Klein, Armani라는 로고가 그대로 박혀 있는 시계, Chanel이 지나치게 옷에 크게 박혀 있는 티셔츠…. 마치 하나의 브랜드인양 너무도 자연스럽게 짝퉁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나면, 짝퉁은 중국에서 하나의 소비 문화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 아닌 이해를 하게 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중국인들이 입는 옷이 과연 명품인지 짝퉁인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얘기는 어떻게 보면 눈물 없이 할 수 없는 얘기다. 중국 여행 중에서 가장 맞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손꼽으라면 단연컨대 ‘음식’이 아닐까 싶다. 관광지 후기나 쇼핑리스트를 참고하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해 봐도, 의외로 한국인이 중국 여행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충이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우리나라 음식은 간장이나 사골 혹은 멸치육수 베이스의 음식이 많고, 양념을 쓴다 해도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마늘 정도의 깔끔한 맛을 내는 재료들이 많이 쓰인다. 그래서인지 음식들이 대개 담백한 편이고, 국물 같은 데 위에 둥둥 뜨는 기름은 느끼할까봐 덜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국 음식, 특히 사천(Sichuan) 지방 음식의 경우, 음식에 화자오나 마라와 같은 중국 특유의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더 세게 말하면 범벅된) 음식들이 대다수다. 그래서인지 특유의 고추기름 혹은 마라의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나는 여행 초기에는 생존을 위해 맛있다고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특유의 향이 거슬리게 되었고 100% 음식 탓만은 아니겠지만 중국 여행 중에 피부 트러블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여행을 갔던 친구들도 중국 여행을 많이 갔던 친구 1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음식이 맞지 않아 고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중국 음식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중국 음식’을 통해서였다. 중국은 다양한 민족이 사는 드넓은 나라기 때문에 각 지방마다 요리법이나 대표 요리가 확연히 다르다. 사천 지방을 여행한 후에 우리는 운남성(Yunnan) 지방의 도시인 쿤밍(Kunming), 다리(Dali), 리장(Lijiang)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은 내게 커다란 황홀감을 주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요리를 꼽자면 다리에서 먹었던 해물누룽지탕, 리장에서 먹었던 갈비훠궈를 들 수 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그 정도의 황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여행했던 사천 요리에 비해 고추기름이나 마라를 쓰는 비중이 매우 낮았고, 우리나라 음식처럼 간장 베이스인 듯한 음식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중국에서 유명한 음식의 훠궈도 지방마다, 또 가게마다 먹는 방식이 다르다. 전술한 것처럼 사천 지방에서 먹는 훠궈와 운남성 지방에서 먹는 훠궈는 다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 훠궈가 맛있고 싸다 해서 막 덤벼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훠궈의 '홍탕'을 우리나라 '김치찌개'정도로 생각하면 당신의 혀는 마비되고 말 것이다. 중국 훠궈에서 말하는 '홍'은 'Super Duper' 홍이다. 훠궈에서 홍탕을 시키면 나오는 수많은(국자로 건져낸다 해도 다 건져내면 국물이 많이 사라질 정도로 많다) 고추들 중에 하나만 입에 넣어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너무 느무 나무 냉무 총각무 알타리무 맵다. 같이 훠궈를 먹었던 친구들 중에 모르고 고추를 입에 하나 넣었다가 다 먹고 날 때까지 혀의 마비가 해결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중국 음식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차' 때문이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중국에는 '차(Tea)' 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일반 음식점 같은 데를 가면 우리나라 음식점처럼 물이 기본으로 세팅되는 것이 아니라, ‘차’가 세팅된다. 그리고 무슨 차가 나오는지도 지방마다, 가게마다 각기 다른 것도 매력이다. 주로 사천 지방에서는 구기자차처럼 청차 위주로 주었고, 운남성 지방에서는 꽃차와 단맛이 나는 작은 과일들을 섞어서 만든 차를 주었다. 아무래도 그 지방에서 주로 나는 재료로 차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가도 기본으로 차를 파는 곳이 많다. 또 차를 마실 수 있는 기계도 많이 발달되어 있다. 다행인지 이 문화는 나를 포함한 여행을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잘 맞았다. 느끼한 중국 음식을 먹고 나면 한 모금 차를 마시면 느끼함의 20% 정도는 사라지곤 했다.
중국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지갑이 웃게 된다. 외식비 같은 생활물가가 우리나라 물가의 1/3~1/4배에 불과하다. 교통비는 더더욱 싸다. 택시는 거리별로 측정되는데 싼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버스'비가 싸다. 지하철 같은 경우에는 2-3위안(우리나라 환율로 약 5-600원 정도), 버스비는 1-2위안(약 2-400원 정도)이다. 그래서 따져보면 버스비는 우리나라의 한 1/3~1/4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교통에 관해서 얘기를 하자면, 사실 처음에 편견이 많았던 부분이 바로 중국의 교통 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터무니없지만, 중국 버스나 지하철은 냄새나고 더러울 것이라는 근거 없는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에 중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런 편견들에 사로잡혀 웬만해서 짧은 거리는 걸어다니려고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는 이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대륙의 스케일답게 지도상으로는 한 블록, 두 블록 되는 거리가 실제로는 20-30분 정도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이상 무릎이 이겨내질 못하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그런 편견들은 접어두고, 처음 버스를 타보니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괜찮은데?'였다. 사실 야간기차나 고속철도의 경우는 논외로 하고, 일반 시내버스나 지하철의 경우에는 '우리나라보다 깨끗하고 쾌적한데?'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중국에는 낮은 인건비 때문인지 지하철의 경우 청소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계속해서 청소가 되는 것이 청결함을 유지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국의 지하철에는 환승이 될까? 정답부터 말하면 Yes이다. 우리나라처럼 역을 이동할 때마다 교통카드를 찍으면 삑-환승되는 개념은 아닌 것 같고(내가 이용한 구간은), 어떤 특정 역까지 갈 때 새로 표를 사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다. 듣기로는 우리나라의 지하철 시스템을 참고(?)했다고 들었는데, 확실한 정보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지하철에는 요즘에 구간을 지날 때 벽에 빠르게 바뀌는 화면 시스템으로 광고를 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은 거의 모든 역을 지날 때 이런 광고방식이 활성화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지하철 시스템을 응용을 했건 어쨌건 간에 중국의 지하철 시스템은 발전하고 있고, 더더욱 발전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이 든다. 실제로도 내가 갔을 때 새로운 역 구간 신설 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지하철 탈 때에도 공항에서 볼 것 같은 보안검색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러 갈 때에만 보안검색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기도 오산이다. 비행기, 철도뿐 아니라 일반 지하철을 타러 갈 때에도 무조건! 보안검색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이 점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하면 신선하고, 이상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다가왔다. 물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테러 사건의 끔찍한 결과를 보면 지하철에서의 안전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비행기의 그 보안검색과 같은 기계를 모든 지하철역에 구비해서 검사를 하는 장면을 목도할 때 충격은 꽤나 컸다. 그렇다고 지하철의 보안검사가 비행기에서의 보안검사와 동일한 강도로 진행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총기류만을 검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철에서의 보안검사는 공항에서의 보안검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시간 안에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특정 지하철역 구간에서는 보안검사가 꽤나 빡세게 이뤄졌고, 소지품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중국의 면면은 통제사회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국민들이 마음 놓고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안전한 사회의 한 단면일까?
잠시 더 중국의 교통수단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의 교통수단, 이를테면 지하철, 기차 같은 것들은 나에게 있어 커다란 충격이었다. 전술한 것처럼 실제로 가장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 고정관념이 사실과 가장 달랐던 부분이기도 했다.
중국의 기차역은 규모나 시스템 면에서 '공항'과 흡사하다. 크기가 웬만한 지방 공항급정도 될 정도로 수많은 플랫폼과, 서울역 인파를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수많은 인파와, 역시나 보안검색을 통과해야 한다. 친구말로는 2016-2017년 부근으로 해서 기차, 많은 철도역들이 신축되거나 개축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중국의 기차, 철도역들을 보면 새로 지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고 빤짝빤짝했다.
이번에는 대망의 야간기차 얘기를 꺼내보려 한다. 나는 한중-청두, 충칭-쿤밍 구간을 갈 때 야간기차를 이용했는데, 각각 약 9시간, 14시간이 걸렸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 중국의 '야간 기차'를 이용할 계획이 있으면 이 부분을 잘 읽기를 바란다. 혹시나 당신이 중국의 야간기차를, 유럽의 야간기차와 비슷한 낭만적인 그 무언가로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시 오산리 오산면...일 것이다. 비록 나는 유럽의 야간기차를 타보지는 않았지만, 그곳도 절도범이 판치는 곳이라고 듣긴 했다. 하지만 중국의 야간 기차는… 내가 겪어본 바에 따르면 정말 힘들었다. 시트가 비위생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구간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도 한중-청두 구간은 운이 좋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승객들도 별로 많지 않았고 쾌적한 편이어서 잠이 솔솔 왔다. 중국의 야간기차는 보통 좌우 각각 3개씩(3층), 총 6개의 침대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중-청두 야간기차의 경우 6개 칸 중에 탄 승객이 나와 친구 2명뿐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자 한줄을 띄었다.) 그런데 공포의 충칭-쿤밍 야간기차 구간은… 정말 시쳇말로 '말잇못'이었다. 비극은 처음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갔을 때부터 발생했다. 중국 여행은 전술했다시피 배낭여행이었기 때문에 친구와 나는 캐리어와 가방에 짐을 꽉꽉 채워서 이동했다. 커다란 가방에 옷가지와 각종 짐들을 챙겨서 낑낑대며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갔는데,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앉아 있었다. 중국의 아저씨들이 이미 침대보며 이불같은 것들을 다 들춰내고 디립다 누워 있었던 것이다. 내가 티켓에 쓰인 번호를 확인하고 계속 그들을 쳐다보니, 그들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우리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 물론 중국말을 못하는 나와 내 친구는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갖고 있는 기차표만 보여줄 뿐이었다.
눈짓과 손짓으로 내가 이 밑에 칸 승객이니 좀 비켜달라는 뉘앙스로 전달하니, 내 친구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우리가 말해봤자 모를 것을 알았는지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자리의 아저씨였다. 계속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도통 몰랐지만)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네가 위로 올라가라', '이미 내가 이 자리를 쓰고 있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비키지 않는다고 표정으로 말하자, 그제서야 본인이 내 침대쪽 입구에 앉아야 하니 이불을 치우라고 말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잠시 화장실을 간 틈을 타, 내 짐을 구겨놓고 그 아저씨의 옷가지를 위로 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거의 오줌을 지릴 뻔했다. 그 아저씨가 좀 무섭게 생긴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러다가 정말 그 아저씨가 위험한 생각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나 혼자 여행을 갔으면 바로 비켜줬을 텐데, 친구가 바로 내 옆칸 아랫자리에 앉아 있었고, 같이 여행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무조건 그냥 '드러누워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용감하게도(아니면 무식한 건지) 그것대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못 비킨다는 아저씨쪽을 곁눈질로 흘낏 보니 이미 2층에는 그 아저씨가 바퀴달린 자신의 짐가방을 올려두어서 이부자리에 검댕이가 쌓여 있었다. 정말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 숨막히는 대치는 거의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아저씨는 내가 조금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내 자리'를 꿰차고 들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에 정말이지 침대에서 한발자국도 일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 아저씨를 몰아내기(?) 위해 자는 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본대로 나는 계속 자는 척을 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실로 어리석었던 것도 같고 무모했던 것도 같다. 중국 여행을 많이 해보았다는 친구 말을 보니, 아직 중국에서는 '소유권'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아서인지 야간 기차같은 것도 자기가 먼저 그 자리에 누워 있고 쓰고 있었으면 자기 거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아저씨는 어쩌면 자신이 먼저 와서 누워 있던 그 자리가 정말 자기 거라고 생각해서 나를 그렇게 몰아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 날에 친구들에게 들었던 얘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내가 잠들고 나서 그 아저씨는 계속 내 짐과 나를 번갈아 두리번거리며 내 주변을 서성였다고 한다. 친구들은 자려다가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지금 안 잔다는 티를 내기 위해 그 아저씨를 지켜보며 나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정말이지 무시무시했다. 그냥 비켜주고 말 걸. 나야말로 무슨 객기를 부려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는지. 정말 만에 하나 그 아저씨가 자신이 무시받았다고 생각해서 앙심을 품고 어떤 짓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불보에 좀 검댕이 묻어있기로서니, 그냥 그 검댕을 뒤집어쓰더라도 비켜주는 게 훨씬 속편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다시금 느낀 것은, 전세계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만큼 각박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각박하다는 것은 사람들의 인심이 각박하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너무 스스로를 재촉하고 타인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다. 일본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국가들이라면 여유가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행한 중국 도시들에서는 그렇게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물론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대도시가 아니서라도 그럴 수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지는 편이었다.
경제 수준을 떠나서 '빨리 빨리' 서두르는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것보다 건물이나 도로가 더 커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만, 가장 그렇다고 느낀 부분은 도로에서였다. 우리나라는 조금만 양보하면 될 것을 조금만 자기 기준에서 느리다고 생각하면 클랙슨을 빵빵 울려대는 것이 보통인 운전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운전을 할 때 서두르거나 그럼으로써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 습관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선진국들처럼 보행자 우선인 운전 문화인 것 같았다. 그게 친구 말처럼 중국에서는 교통 범죄에 대해서 강력한 엄벌을 취하는 주의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비단 도로 위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가 마주친 식당의 종업원, 편의점 직원, 택시 운전기사, 길거리의 사람들 모두 그렇게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중국의 교통사고 건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 이 점은 내가 야간기차 다음으로 중국에 대해서 식겁을 했던 부분이다. 물론 문화차이겠지만, 중국의 화장실 문화는 정말 충격인 부분이 없지 않다. 중국에는 아직도 양변기가 별로 없다…. 그럼 어떻게 일을 보느냐? 거의 다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게 되어 있다. 양변기뿐만 아니라, 일반 공중 화장실에 가면 아직도 예전에 시골에서 보았던 것처럼 (남자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에 칸막이가 되어 있지 않고 바닥만 보인다. 양변기가 없는 것은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여행 막바지로 가서는 화장실이 급하면 그냥 가서 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더 잘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도 같다(???). 적응을 해서일까? 하하...
맛집의 기본 조건은 메뉴의 '단순함'에서 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명제가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중국의 맛집이다. 중국 맛집의 메뉴판 메뉴는 50개, 어떤 곳은 거의 100개가 넘어간다. 메뉴판만 거의 소책자 같아서 그림과 함께 있는 메뉴판의 경우 끊임없이 뒷장을 넘겨야 한다. 그래서 메뉴판을 한 번 쭉 훑어 보는데 시간이 꽤나 많이 걸린다. 그만큼 요리 가짓수가 많다는 것이다. 중국의 요리에 대해 설명할 때 주로 많이 드는 말이 중국에서는 네 개 다리 있는 것은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여행을 해 보니 중국 사람들은 온갖 세상의 재료들을 이용해서 요리를 해 먹는 것 같다. 육해공을 불문한다. 그리고 온갖 재료들을 이용해 제법 맛있는 요리를 선보인다. 그래서 요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중국의 다양한 지방에서 다양한 요리를 먹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비록 아까 말한 것처럼 중국의 향신료에 이골이 나기 전까지 말이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을 꼽으라면 '공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온갖 브랜드를 베끼며 짝퉁을 만드는 중국이지만, 중국인들도 차마 베끼지 못하는 것이 정부 혹은 공안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만큼 공안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무서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공안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 쉽게 바꿔 말하자면, 우리나라 명동이나 광화문, 선릉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공안'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차 있다. 정말 어디에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공안이 없는 곳에는 수십대의 CCTV가 있다. 감시사회, 통제사회의 단면이다. 어떻게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중국에서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편으로는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 감시사회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느끼는 것은 공사 중인 곳이 참 많다는 사실이었다. 기차를 타도, 시안 성벽에서 자전거를 탈 때에도 온 사방팔방에 새롭게 무언가 지어지는 공사현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중국 인구 규모를 고려해 보았을 때 1사람에게만 1개의 물건을 팔아도, 그것은 대박 사업 아이템일 것이다. 물론 다양한 특성을 지닌 중국 인구를 만족시킬 그 1개의 상품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중국은 아직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수도 없이 '앞으로 중국을 모르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냥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목격하니, 그 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모든 것은 편견에 다름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직접 그를 마주하기 전에는 우리는 무지하다. 중국을 마주하기 전까지도 나는 중국에 대한 수많은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편견들은 '진실'을 왜곡시키는 색안경이 된다. 그 색안경들은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다. 무엇이 진실인지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직접 발품을 팔아 현실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이 과연 '진실'인지, 아니면 '색안경'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