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챙겨주지 못 한 나의 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
외국 나와서 집 하나를 통째로 내 것으로 쓰기 시작하니 적어도 격일에 한 번 정도는 제대로 운동할 짬이 난다.
팔굽혀펴기, 레그레이즈, 플랭크 모두 군대 있을 때 잠깐 발만 담갔다가 전역하고 나서는 공부가 바쁘니 생활이 바쁘니 핑계만 이것저것 대면서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내 몸이 이 개수를 실제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맨날 우습게 봤던 운동인데 실제로 이런 동작들만으로 근육 각이 잡힌단 말인가?
운동 끝내고 내 집에 있는 유일한 전신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 비친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많았던 20대의 날들
그 길었던 기간
동안 왜 진작 운동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지 너무나 깊은 후회가 든다.
몸매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르나 - 아마도 나의 태도, 성격, 남을 대하는 태도가 끼친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항상 생각했었지만 - 진작에 몸을 좀 더 가꿨더라면, 별 좋은 근거도 없이 ‘원초적이기 짝이 없는 육체 단련’ 이라 특정 활동들을 경시하면서 샌님처럼 공부만 팠던 그 시절 나의 인생과 선택에 합리적인 밸런스 패치를 조금이라도 가했더라면,
내가 거절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상황, 어쩌면 좀 더 안정적이고 길게 가져갔을 수 있었을 연애의 끝들, 이 모든 것들의 결과가 더욱 긍정적으로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육체적 전성기라는 건 이미 다 지나간 것 같고
머지않아 끔찍한 하락세의 기간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란 생각이 드는 나이, 30
살면서 단 한순간도 ‘내 몸이 좋은 편이야’ 라는 말을 솔직하게 못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대로 죽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20대 초반, 중반 중 어느 한 시점의 내 모습을 생각해봐도 지금 이 모습보다 못났을까 (적어도, 확실히 근육량과 체형의 관점에서만 한정하여 바라보았을 때)?
이제부터라도 잘 가꾸어봐야지.
초중고 서울대를 다 거치면서 나는 지나치게 안일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냥 공부만 잘하면 된다, 뇌 속에 든 것이 많다면 뭔 짓을 해도 다 알아줄 것이다 - 경험상 이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균형 잡힌 성장과는 동떨어진 모습 그대로 나 자신을 방치한 기간이 너무 길었다.
올지력 찍은 마법캐, 육체단련 하나 없는 하이템플러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남는 이미지라면 대머리 아니면 동정 아니겠는가?
평타 하나 제대로 때리지 못하는 유리대포, 약체 - 따라서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어렵고, 효율적인 팀원으로서 기능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존재. 주위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상황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필요로 하는 존재. 나는 더 이상 그런 놈으로 남아있고 싶지 않아. 어떤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과도한 배려 같은 거 절대 받고 싶지 않아.
늦었다 생각이 드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그나마 가장 빠른 날이니, 이제라도 지금까지 해오던 뻘짓 대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보도록 애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