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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of Spades Mar 22. 2019

‘눈이 부시게’ 리뷰: 2019년 최고의 드라마 후보

기억의 가소성,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따뜻한 눈부심

본 리뷰는 핵심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기 전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 주의)




떨어지는 붉은색 꽃잎 한 장.


혜자는 노을 지는 풍경 너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준하를 바라본다.


스물다섯 살의 때로 돌아간 혜자의 모습과 그녀를 끌어안는 준하


현실의 기억과 삶에서 서서히 벗어나, 아마도 죽음을 맞이하는 혜자가 마지막으로 본 행복하고 따뜻한 삶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것으로 느껴졌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피해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내용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정말로 싫다.


한없는 무력감과 '이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나를 정말 심하게 괴롭히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게 (2019)'에서


준하의 시계를 뺏어 차고 있던 경찰은

젊은 시절의 혜자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을 잔인하고 철저하게 파괴했다.


혜자의 가족은 이러한 피해에 상응하는 어떤 것도 갖지 못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자는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현실 속에서 혜자는 응당 누려야 했었을 행복을 빼앗기고 독하게 살아야만 했었다.


따스함

이것은, 스물다섯의 나이였을 시절에서부터 정말로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죽어가는 의식 가운데 나타난 환상 속에서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일 터였다.


그러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혜자,

그녀의 목소리로 이러한 내레이션이 전달되어오는 것이다.

나는 진실로 마음 아프게 이를 들었다.




그럼에도,

알츠하이머 앞에서 뒤섞이고 재구성된 혜자의 기억과 세상의 모습이 찬란했다는 것을 나는 주목한다.


혜자의 삶의 대부분이 가혹했고 불행했다 할지언정,

그녀가 삶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볼 수 있었던 세상이 눈이 부시게 찬란했으며 따뜻할 수 있었던 까닭

혜자 본인이 살아왔던 삶의 모습이 선함과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눈이 올 때마다 아들이 넘어지지 말라고 눈길을 쓸던 모습처럼,

쉽게 그치지 않고 꾸준히 쌓여가기만 했을 눈. 그것을 끝끝내 계단 어느 한 칸에서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처럼,

혜자를 끊임없이 짓누르고 괴롭히는 차가운 세상을 그녀는 어떻게든 쓸어 없애며

자신만의 인간다움을 결코 잃지 않았던 것이다.




현실의 대부분이 얼마나 불행했었던,

제대로 된 복수나 재판이 전혀 없던 상황이었던,

혜자가 기억하는 삶의 따뜻한 모습들은 - 하나같이 전부 그녀의 삶 주위에서 실존했었던 것들이다.




따뜻한 사람의 삶을 가지 않은 자에게는 삶의 멋진 모습들을 재구성하여 볼 수 있는 기회가 결코 오지 못하리라.


같은 병, 같은 알츠하이머를 겪게 된다고 할지언정...

준하를 고문하고 죽인 경찰의 입장에서 감히,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내레이션을 할 수 있겠는가?


경찰의 기억이 병 앞에서 하나하나 무너져내리는 지점에서,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할지언정

경찰 역시, 혜자의 경우와 같이 따뜻하게 눈부신 기억들을 바라보면서 삶의 마지막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죄책감을 아는 자라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의 모습에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할 것이며,


죄책감을 모르는 자라 해도 그가 보고 있는 '찬란한' 모습은 그가 만들었던 사실과 다른 것들이다.

아무리 당당한 척 기세 등등하다 할지언정, 이러한 삶을 산 이들의 기억은 거짓되고 뒤틀린 것들 투성이다.

자신이 ‘마치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속이려고 애나 써볼 수 있을 뿐이다.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옳은 방향으로  살고자 마음을 굳게 먹고,

친절하고 선한 사람의 길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드라마였다.


그런 길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만이

거짓 없이, 자신의 삶 자체만으로도 따뜻한 노을을 맞이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없었던 일을 마치 자신의 것이었던 양, 억지로 믿어보려 애써야만 하는 가증스러운 노력 없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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