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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of Spades Feb 27. 2019

"FAQ"를 소개합니다.

젊은 날의 고민들을 '병'이라는 쉬운 카테고리에 던져놓고 무시하지 말자

대학 입학 후 처음 맞은 4월,

내가 가장 먼저 찾았던 일은 봉사활동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집짓기, 농사 일손 돕기 같이 긴 역사와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쟁쟁한 동아리들이 동소제(동아리소개제) 천막촌에 많이 모여있었지만, 내가 택했던 것은 교육봉사동아리였다. 중고등학교 6년을 내리 공부에만 전념하다시피 살았고, 내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잘하는 게 배우는 거랑 배운 걸 설명해서 나눠주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OT 때 대선배 한 분이 나의 과외 경력을 물어봤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았지만, 자신감을 많이 느낀다는 걸 이야기했었다.


“우리가 원하는 너의 모습은 단순한 과외선생님이 아니야. ‘멘토’ 야.”


술도 들어가지 않은 얼굴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형님의 모습에 부담감을 느꼈지만, 이내 나는 그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했었다.




멘토 -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 지식만 주는 것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내면적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OT 자리에서는 이미 활동을 진행하고 있던 선배들이 자신과 멘티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공유한다. 물론 내담자의 프라이버시를 잘 지켜주면서.


학습봉사를 위해 찾아가는 학생들은 단순히 공부만 배우러 오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에 이야기하고 풀 곳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심오한 질문이건 갑자기 퍼뜩 떠오른 질문이건 생각나는 대로 멘토에게 물어보고 답변을 바란다는 것이다.


“너무 곤란한 질문을 해 올 때도 있어. 나는 아예 생각해본 적도 없는 주제가 나오기도 하고.”


쓴웃음을 짓던 그 누나는 자신이 충분히 대답해주지 못했다고 느낄 때 미안함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어떤 걸 물어봤길래요?’라고 묻자, 그녀가 대답하기로


“어두운 이야기가 많아. 차라리 과학 문제나 연애 상황 같이 사생활 묻는 거면 대답해주기가 편한데.”


그녀는 사범대에서 교생실습을 이미 마친 재원이었다. 그런 사람까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울한 이야기라고 해서 피해 가지 않기로 했다. 사실 활동하는 동안 질문받은 대부분의 것들이 우울감과 관련 있는 것들이었다. 




중1부터 고2까지의 청소년들이 주 봉사활동 대상이었다. 자신과 자신 주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감수성도 예민해질 법한 시기이다.


중2병, 사춘기, 급식 등등, 이 시기의 학생들을 놀려주는 말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쁜 취급으로 이 사람들의 생각을 몰아붙이는 것은 대부분 '조금이라도 일상에서 동떨어진 고민을 하는 것은 낭비야. 웃음거리만 된다.'라고 생각하고, 좌절하게 만들어서, 어쩌면 몇 단계 더 높은 논리와 고찰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학생들의 도전 의욕을 뿌리 부분에서 잘라버리는 행위가 아닐까?


그들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다. 법정 성년연령이 만 20세 – 19세에서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고대 국가들에서 만 13세만 넘으면 어엿한 새로운 가장으로 취급해줬던 사실은 별로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그때의 인류와 현생 인류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비록 변성기가 아직 다 안 지나고 더 클 키가 남아있다고는 해도 청소년 시기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의미 없는 질문이다’, ‘공부에 도움되지 않는다’, ‘마음만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다’라고 퉁치면서 억누르는 것은 그들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는 일이 아닌가.


때문에 나는 현장에서 무슨 질문이 나오더라도 책임감 있고 성실한 자세로 답을 해줘야겠다 다짐했다. 




아빠였다면, 형이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해 주었을까?




OT 때 말했던 누나의 말처럼. 질문의 토픽은 까다로운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활동 초기, 내가 고민했었거나 겪어보았던 심리적 문제들에 어두운 유리를 몇 겹 더 얹은 수준의 내용을 토로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최대한 나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돌이키고, 공유하며, 편협하거나 틀에 박힌 답으로 회피하는 대신 함께 고민해주려고 노력했었다. 이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었던 ‘가족과 소통하는 시간의 결핍’을 해결해주는 지름길이었다.


마음의 장벽이 낮아진 학생들은 지식의 폭을 넓히기에 좋은 문제들을 술술 물어봐온다. 사회과학보다는 자연과학을 주로 가르쳤던 내 전공 특성상, 받았을 때 ‘이건 대학생 수준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느끼게 만드는 질문들도 여럿 있었다. 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들 중에 하나가 애매하게 아는 채로 잘못된 답을 사실인 양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혹 그들에게 내준 숙제만큼 많은 양을 도서관과 타 전공 관련 문헌들에서 찾아오기까지 해야 했었다.


이런 식으로 살아오다 보니, 동아리로 시작한 멘토링은 사실상 대학 입학하자마자 시작해서 군 복무가 끝날 때까지 진행되었다. 나는 그동안 호기심과 생각이 많은 중고등학생들을 여럿 상대하였으며, 몇몇 친구들이 원하던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시에까지 성공하는 것을 도와주고, 지켜보고, 축하해주었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가지는 고민과 질문들을 피하지 않고 대답하는 것이 굉장히 풍부한 동기부여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수백 권의 참고서들보다도 잘 물어보고 잘 대답한 FAQ들이 청소년의 삶에 있어 – 나아가 성인의 삶에 있어서도 – 굉장히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심오하거나 감상적인 질문은 병이 아니다. 무시하고 억누를 수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잘 대답해주는 것만큼 좋은 대응이 없다.




‘최선’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가 없기 때문에, 열심히 대답했다고는 하나 엉터리 같은 대답이 섞여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도태되거나 지나치게 오래된 지식, 잘못된 지식으로 쓴 내용이 있다면 지적해주면 좋겠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우울해지기 쉬웠던 사람들이 나눈 질문에서, 당신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있는 글을 내가 썼다면 좋겠다.


당신이 글을 읽으면서 동감했거나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 있다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거나, 비슷한 활동을 진행하던 중 유사한 FAQ를 만난다면 내가 대답했던 방향과 당신의 논리를 더하여 대응해주는 일에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




어떤 질문들은 당연히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으나, 나는 대답에서 최대한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했다. 추상적인 개념의 신이나 이와 비슷한 존재들은 너무나 강한 힘을 가졌다고 가정되기 때문에, ‘이들을 믿으면서 안심해라’처럼 쉬운 해결책에 기대는 것은 사실 질문을 애매하게 억누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담자들의 개인정보와 사적인 정보를 빼고, 많은 이들에게 대답했던 내용과 방식들을 나누고 싶다. FAQ라는 말이 쓰여있듯, 내가 풀어낼 이야기들은 최소한 2명 이상의 다른 멘토링 대상들이 나에게 물어봤던 질문들이다.



FAQ에서 다룰 첫 주제는

‘삶은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의 가치를 함수로 생각한다면, 0보다 항상 크게 할 수 있는 어떤 양의 상수값이 있다는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내가 답했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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