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뭔가 이야기하려고만 하면 ‘오컴의 면도날’ 하면서 잘라먹어요.
의외로 이 키워드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에 답변을 정리했던 것을 밝힌다.
추측컨대 멘티들 다수가 토론부, 독서토론부 이런 활동을 방과 후 활동으로 택한 경우가 많아서, 날 선 태도의 부원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심신 이원론은 자아와 정신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들 중 역사가 매우 긴 것들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으나, 존재의 증명 (즉, 과학적인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개념인 영혼 등에 의존해서 정신작용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생각한다면 심신 이원론 쪽으로 우리의 자아와 자유의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래서 오컴의 면도날로 잘라낼 수 있는 요소들을 유지하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논리적이지 않고 '믿느냐 안 믿느냐' 영역의 문제가 되는데, 그것이 좌지우지하는 가치가 개개인에게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전 글에서 썼던 ‘오컴의 면도날’ 이 두 차례나 있는데, 면도날은 딱 이 정도로 쓰여야 적절한 도구라고 생각된다. 어떤 문장을 주장할 때 전제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 그 문장의 힘과 신뢰성이 약해진다. 내가 전제하면서 제시한 내용들에 대한 설명이나 입증을 추가적으로 해야, 그 문장이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흔히 잘못 사용되는 용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생각한다면 그 설명방식은 ‘틀렸다.'”
“오컴의 면도날로 잘라낼 수 있는 요소들을 유지하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잘 쓴 논설문, ‘설득력 강한 논설문’에 관한 수업에서 으레 강조하는 것들 중 하나가 ‘단호한 표현을 써서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피력하라'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 ‘위험하다’처럼 미지근한 표현보다는 양보의 여지가 전혀 없는 표현들에 구미가 당긴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기서 '오컴의 면도날' 은 자신이 주장하는 문장이 옳다는 것을 담보해주는 도구가 될 수 없다. 간단한 예를 통해서 생각해보자.
게으른 태도 때문에 질책을 많이 받는 대리와 성실하고 깐깐한 과장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2019년 3월 5일 화요일, 8시 4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 대리가 9시 10분을 조금 넘어 사무실에 나타나자 과장이
"너 인마 게으름 좀 그만 피우라고 말했지!"
라고 화내자, 대리는
"2호선 지하철이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지연운행을 해서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억울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과장은 ‘저놈 또 변명하네...’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과장은 ‘대리가 늦게 온 상황’, ‘그동안 자주 늦었던 대리의 태도’를 통해서 생각해볼 때
라는 문장만큼 깔끔하고 짧은 논리 외에 와 닿는 설명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로 자를 수 있는 부분이 두 개 들어간 문장을 만들어보면:
이렇게 잘려나가지 못한 수염 털이 두 가닥 보이는데, 이것이 반드시 틀린 설명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과장은 대리의 지각 이유를 어떤 방식으로 판단했는가?
그는 지금 직관에 의존하고 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르면 대리는 ‘항상 게을렀던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의 상황에서 과장은 대리가 당일 집에서 언제 일어났는지, 언제 현관문을 나섰고 대리가 탔던 당시 지하철 상황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다. 게다가 탈선 사고 같은 큰일이 아닌, 2호선 지연 같은 경우는 상당히 흔한 일이기 때문에 당시 몇 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방법이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네이버 뉴스에 뜰 만한 일도 아니고.
분명히 과장의 논리는 직관적으로 결론에 닿는 설명이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대리가 늦은 이유’를 판단하는 주체인 ‘과장’의 정보획득 수준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분명히 오컴의 면도날로 자를 만한 부분을 다 자르긴 했지만, ‘대리 너의 주장이 틀렸다’ ‘너의 주장이 거짓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자주 쓰이는 용어이고, 단어 자체가 시각적으로 뭔가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오컴의 면도날’ 은 마치 '간단한 답이 정답이다'라는 뜻의 격언처럼 핀트가 살짝 어긋난 채 쓰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라내는 게 좋은 경우'는 어디까지나 지금 설명하고 있는 문장이 확실히 참일 때이고, 그런 상황에서만이 문장을 될 수 있는 한 간결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짧은 설명이라고 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매우 억울했던 대리가 실제로 지하철 상황실에 굳이 연락해서 지연 시각과 당시 열차번호, 자신이 찍힌 승-하차 cctv 화면을 확보해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가져온다면 과장의 설명보다 복잡한 구조인 대리의 설명이 압도적으로 높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즉, 절대로 '간단하니까 답이에요' 이렇게 담보해주는 도구인 양 오컴의 면도날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토론장이란 공간은 알다시피 표현만 가능한 한 곱게 쓸 뿐 모두들 약이 바짝 오른 채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겪었던 중, 고등학교 시절의 토론들에서 대부분 토론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의 논거를 완전히 밀어버리고 청중을 포함한 모두가 우리 팀의 논리에 굴복하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컴의 면도날' 같이 뭔가 있어 보이는 개념을 어디선가 듣고 나면 자주 쓰고 싶어 지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일단 생각만 나면, 상대방이 뭔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으면 내가 먼저 던지고 보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잘 먹힐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겠지만 - 상대방이 ‘오컴의 면도날’에 대해서 잘 몰라서 얼어붙거나, 이것(의 잘못된 버전의 해석)을 말 그대로 무슨 절대적인 법칙이나 공리처럼 따라가야 하는 것인 줄로 착각하게 하는 심리적인 압박을 그 현장에서 줄 수 있다면 - 자신의 간결한 설명이 확실히 옳다는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오컴의 면도날을 근거 대신 들이밀었다간 역공당하기 쉽다.
'오컴의 면도날'로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은 근거나 주장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 설명의 '길이' 하나뿐이다. '내 논리가 당신의 논리보다 설명과정은 길지만 내가 들 수 있는 근거의 질이 다음과 같이 뛰어나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더욱 위험한 상황은 이것이다: (토픽을 완전히 전환시켜서) 당신이 말한 ‘오컴의 면도날’의 원 뜻이 그게 아님을 지적하면서, 당신의 무지함을 지적하는 식으로 대응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괜히 어설프게 말 꺼낸 것 하나 때문에, 이후 말하는 모든 말의 신뢰성이 낮게 전달될 수 있다. 잘못된 태클 하나가 상대방의 대응 흐름에 윤활유를 부어버리는 결과가 오게 된 것이다.
청중들, 사회자, 토론 당사자와 상대방 모두 이성에 100% 기반해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남이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실수를 내버리는 것은 감정적인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좋지 못한 일이라고 믿는다. 특히 토론 상황에서 양측의 힘이 비등비등한 상황이라면 더욱 안타깝고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내 주장이 더욱 옳은 것이 확실한데도, 분위기 때문에 밀려버린 채로 끝나는)
정리해보면:
* 간결한 문장, 간결한 설명이 답이라는 걸 절대로 담보하는 건 아니다.
* 다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문장의 설득력은 긴 것보다 간결한 방식 쪽이 보다 강한 것 같긴 하다 (내 기준으로는). 내 경우에는, 주변인 입장에서 들을 때 문장에만 주목하지 거기에 딸려오는 양측의 근거까지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근거가 있는 내용이라고 간주하고) 듣기 때문인 것 같다.
* 그렇다면 긴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 '오컴의 면도날'의 뜻을 일부러 오용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피력하는 방식이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