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무예 '호패술'
유럽 각국을 돌며 '호패술'이라는 한국 무예를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 도기현 결력택견협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프랑스와 독일, 체코 등지를 돌며 호패술과 택견을 지도하고 왔다.
호패술은 손바닥보다 조금 크고 약간 길쭉한 나무판에 줄이 달린 '호패'를 빙빙 돌리며 상대를 가격하는 무술이다. 생전 처음 보는 무기와 무술에 유럽인들이 신기한 시선을 보낸다.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 하며 배우고 수련한다.
국내에는 거의 보급되지 않은 이 호패술이 유럽에서 퍼져나가며 조금 과장을 보태면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호패술이 도대체 무엇이고 왜 이처럼 인기가 있는 걸까. 도기현 회장을 서울 대학로에 있는 그의 수련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호패술의 호패는 조선시대 16세 이상 남자가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신분증입니다. 이름과 주소 직업 등이 적힌 신분증이지만 비상시에는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로 변신이 가능하지요"
호패는 한 뼘 좀 넘는 크기의 딱딱한 나무인데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특히 한쪽에 뚫린 구멍에 줄이 달려 있어 줄을 잡고 돌리고 있으면 상대가 쉽사리 공격해오지 못한다. 회전력에 의해 타격력은 더욱 커진다. 나무의 각진 부분이 회전력과 결합돼 사용하기에 따라 사람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매우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가 된다.
호패술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단태봉' 또는 '반태봉'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이를 가지고 무예를 수련하던 몇 명으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 오던 것인데, 도기현 회장이 무술연구가인 '한병철'박사로부터 일부를 배웠다고 한다. 한병철 박사는 조계종 비구 승려인 월우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한다.
한 박사로부터 일부 전수받은 도기현 회장은 단태봉과 유사한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연구를 거듭하다 한국 전통무예의 기본 원리를 가미하고 현대에 맞게 개량해 '호패술'로 명명했다. 그는 자신이 개량 발전시키고 있는 한국 무예 호패술의 전 세계 보급을 추진하면서 올림픽 종목 채택이라는 위대한 꿈도 꾸고 있다.
"줄이 달린 무기를 이용한 무예 경기는 아직 올림픽에 없어요. 50개국 이상에서 경기를 하면 올림픽 종목에 채택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해외 다니면서 알리고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현재 한국과 홍콩, 호주, 미국, 프랑스,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네덜란드, 파라과이, 스위스 등 12개국에 보급되어 있으니까 앞으로 더 뛰어다니면서 알려야죠"
호패술로 경기를 하기 위해 검도의 투구와 비슷한 헬멧도 만들었다. 부상을 막기 위해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장비는 필수다. 이걸 펜싱처럼 전자화해서 상대의 호패가 닿으면 불이 들어와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공정한 경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아직 전자 보호장구는 개발하지 않았지만 심판이 육안으로 판정하는 경기가 체코에서는 이뤄지고 있다.
해외 반응은 뜨겁다. 작년 말 프랑스 몽펠리에 이어 올해 초에는 체코 프라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다니며 세미나를 열고 택견과 더불어 호패술 교육을 했는데, 많은 현지인들이 신기해하며 열정적으로 배웠다고 도 회장은 말했다. 그는 또 호패술이 운동효과도 좋을 뿐 아니라 호신술로도 최적화된 무기술이라고 강조한다.
"호패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괴한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는 호패를 꺼내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죠. 요즘 성폭행 사건도 많이 나니까 특히 여성들의 호신술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검도는 아무리 잘해도 평소 검을 갖고 다닐 수 없으니 예기치 않은 위험한 순간에 활용할 수 없지만 호패술은 호패를 지니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무장 강도나 폭력배를 잡는 경찰에게도 매우 적합한 제압 수단이 될 수 있다.
"호패술이 삼단봉보다 훨씬 더 위력적입니다. 휘두르는 칼을 떨어트릴 수 있고 상대의 머리를 가격해 쓰러트릴 수 있어요. 경찰관들에게 호패를 보급하고 호패술을 가르치면 우리 사회 치안 효과가 더 커질 겁니다"
호패술의 부수 효과로는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신분증 호패라는 전통문화용품을 현대화해 외국인들을 위한 선물로 상품화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점, 특히 호패에 선물 받을 사람의 이름을 써넣어 줄 수 있다는 점이 관광상품 측면에서 외국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도 회장의 흥분된 목소리에 공감이 간다.
"예전에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프랑스 재벌 사업가에게 호패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요, 그녀의 이름을 한글로 '안사빈'이라고 호패에 써줬더니 항상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자랑한다고 하더군요"
호패는 전통부채인 합죽선을 접었을 때와 비슷한 모양이다. 크기도 비슷하다. 길이 20~30cm, 넓은 부분 폭 5~6cm 손잡이 부분 폭 3cm, 두께 1.5~2cm 정도다. 술매듭은 30cm 안팎인데, 줄였다 늘였다 가능해서 공격의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호패의 재질은 박달나무나 참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든다. 하지만 자칫 큰 부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연습용은 맞아도 충격이 거의 없는 고무 재질로 만든 것을 사용한다.
원래 택견꾼인 도 회장은 택견과 호패술은 별개의 무술임을 강조한다. 택견은 맨손으로 하는 무예이고 호패술은 무기를 사용하는 무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욕심이 많다. 택견은 택견대로 인간문화재 송덕기 옹으로부터 전수받은 전통 무예인 만큼 계승 보존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동시에 호패술은 기존의 무예를 자신이 개량해 발전시킨 것인 만큼 이 역시 널리 보급하고자 하는 욕구가 넘친다. 두 가지 다른 무예에 대한 애정이 복잡하게 얽힌 듯 보인다.
호패술의 보급 방법과 관련해서는 이런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전국에 만 개가 넘는 태권도 도장에 보급하는 방안이다. 저출산 현상으로 수련생이 줄고 있는 태권도장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태권도 사범들에게 호패술을 가르쳐 전파하고 태권도를 배우는 수련생들이 호패술도 함께 배우면 수련생 급감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태권도장들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호패술이 태권도와 결합해 최고의 호신술이 될 수 있으니 호패술의 대중화는 시간문제가 아니겠느냐고 그는 주장한다.
"재미있고, 건강에 좋고, 호신술로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될 수 도 있고요. 그러니까 경기로 개발해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글로벌 스포츠가 되는 것이죠.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인이 즐기게 되는 것이죠"
마치 다음 올림픽에 시범 종목으로 채택이라도 된 것처럼 흥분된 표정으로 그는 열변을 토한다. 그러면서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과 특히 기업의 후원이 절실하다고 그는 호소한다.
"호패술을 글로벌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스포츠산업으로 육성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국의 전통 무예와 문화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호패, 보호장구처럼 호패술 관련한 문화관광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면 경제효과도 클 겁니다. 뜻있는 기업이 나서서 마케팅과 상품 개발에 나서주면 좋겠습니다"
하마터면 끊어질 뻔했던 우리 무예, 유래도 불분명한 고유의 전통 무예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특히 해외에까지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도기현 회장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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