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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민 Jan 30. 2024

침체된 전통 무예 '택견'의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마치 덩실덩실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다가 돌연 날쌘 발차기로 상대의 얼굴을 후려친다. 때로는 다리를 걸어 상대의 균형을 빼앗으며 넘어트린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는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가 아니다. 가마니 두 장 정도의 좁은 장소에서 두 사람이 펼치는 택견 견주기다.

'잌크'라는 독특한 기합 소리와 '삼각형 쓰리 스텝 댄스(three step dance)'같은 '품(品) 밟기'가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그 경쾌한 몸짓에서 별안간 쏜살같은 발차기가 솟구쳐 오르는 걸 보면 신기하고 놀랍다. 

경기에는 금지되어 있지만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필살기도 존재한다. 고수들에게나 비법으로 전해지는 '옛법택견'이 그것이다. 턱관절을 빼버리는 '낙함', 멱을 따는 '줄띠잽이', 눈을 멀게 하는 '안경씌우기'. 이런 기술은 워낙 위험하고 살상용 기술이어서 인품 있는 택견꾼에게만 전수된다. 

택견은 무술로는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1983년)되어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다.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고 2022년에는 결련택견이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한때 대학마다 택견 동아리가 성행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사라져 가고 있다. 융성하는가 싶더니 택견 인구는 급격하게 줄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매주말 하던 '택견배틀'도 코로나 이후 중단됐다. 재개하려 해도 택견 시범단조차 키우기 어려워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택견이 위기에 봉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제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에 따라 이 땅에서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송덕기 옹(1893~1987)에 의해 소수의 제자들에게 전수되었고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인간문화재 고 송덕기옹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무예 택견이 코로나 이후 침체기에 빠져 다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택견의 보존 계승뿐 아니라 해외 보급에도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이가 있다. 결련택견협회 도기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를 만나 택견과 관련한 비사를 들었다.

Q. 택견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택견이 언제부터 전해 내려 온 건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우리 문헌에 기록된 것이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선말기 풍속화인 대쾌도(大快圖)에 소년 두 명이 마주 보고 택견 동작을 하는 모습으로 볼 때 조선시대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진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조선 말기의 화가 유숙(劉淑)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풍속화 대쾌도(大快圖)

이 밖에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사진에도 남자아이들이 양팔을 늘어뜨리고 활갯짓 하는 모습이 택견동작과 일치해 흥미를 이끈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사진

다른 지방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 지역에서 도성 안에서 '웃대'와 '아랫대'로 나누어 마을 간 택견 경기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질뿐이다.

Q. 택견이 다른 무술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중국 무술은 화려하고 곡예 같죠. 일본무도는 조직적이고 직선적입니다. 반면 우리 전통무예인 택견은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게 특징입니다. 또 민중무예로써 실용적입니다"

Q. 결련택견이란 용어도 생소합니다.

"결련(結連)은 연결돼 있다는 뜻이에요. 택견의 단체전을 결련택견이라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5명씩 붙으면 이긴 사람은 상대편의 다른 선수와 또 붙는 거예요. 토너먼트식이 아니라 한 선수가 지기 전까지는 상대 선수를 바꿔가며 싸우는 경기죠. 여러 사람이 편을 짜서 자기 마을의 명예를 걸고 하던 단체 경기 같은 겁니다"  

결련택견은 관중과 선수가 함께 어우러져 펼치는 마을 축제와도 같다. 우선 경기가 펼쳐지기 전 두 마을의 마당패가 꽹과리와 북, 장구 등을 치며 신명 나는 음악을 선보인다. 마을 춤꾼들이 나서 덩실덩실 춤도 춘다.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구경꾼들은 선수들을 바짝 에워싸고 왁자지껄 응원도 하고 훈수도 두며 함께 즐긴다. 우리 마을 선수가 이기면 꽹과리를 치며 환호성을 올린다. 이긴 마을에는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진 마을이 이긴 마을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했다고 하더라고요. 조선시대 백성들의 기층문화를 볼 수 있는 거죠. 음악과 춤, 무예가 한데 어우러진 마을 축제니까요. 이걸 현대사회에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킨다면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도 회장은 인사동 한복판에서 매주말 택견배틀을 하던 때를 그리워했다.  

결련택견은 독특한 경기 규칙을 갖고 있다. 상대가 피 터지고 거의 기절할 때까지 싸우는 이종격투기와 달리 승패가 간단하게 정해진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손으로 상대 몸을 붙잡아 넘어트릴 수는 있지만 때릴 수 없고 오로지 발차기 공격만이 허용된다. 그리고 발로 얼굴을 후려치면 그걸로 끝이다. 

얼굴을 맞는다는 건 체면을 구기는 것으로,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 넘어지면 그걸로 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상대의 얼굴을 발로 후려치거나 발차기와 손동작으로 상대를 넘어뜨려야 하고 나는 상대의 그런 움직임을 막아내야 한다. 아주 단순한 규칙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규칙을 만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가 싸움에서 한 번 넘어졌다거나 얼굴을 한 번 맞았다고 해서 지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넘어진 상태에서 싸워서 이길 수도 있고 얼굴 한 번 맞아도 다시 때려서 이길 수도 있지만 더 싸우면 감정이 상하고 다치니까 신사답게 멈추는 거죠. 그러니까 부상도 적습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스포츠인 셈이죠"

가까운 거리에서 좁은 장소에서 겨루는 것도 특징이다. 서로의 무릎이 거의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경기가 펼쳐진다. 가마니 두 장 정도의 좁은 면적이 결투의 장이 된다. 이것도 거의 부상하지 않도록 해주는 요소이다. 

"위력적인 발차기이지만 거리가 좁다 보니 회전력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파괴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다른 격투기 종목과 달리 부상이 거의 없는 거죠"

그렇다고 택견의 위력을 얕잡아봐선 안 된다. 경기에서는 부상을 줄이고 잔치처럼 즐기기 위해 파괴력이 적게 나오도록 경기방식을 정한 것이지만 실제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경기에서는 금지된 필살기는 상대를 절명하게 할 수도 있다. 이른바 '옛법 택견'이다. 이 고도의 살인 기술은 아무에게나 가르치지 않는다. 일단 택견의 고수여야 하고 특히 인성이 갖춰진 이들에게만 비밀리에 전수된다. 

"눈을 찌르거나 멱을 따거나, 줄띠라고 해서 멱따듯이 줄띠를 잡는다든가, 그리고 '낙함'이라고 턱을 빼버리는 기술도 있어요. 그런 살벌한 기술들이 많아요"

옛법 택견 선보이는 고 송덕기옹

이런 위험한 필살기가 극히 일부 인성 갖춘 택견꾼에게만 비밀리에 전수되는 이유는 치명적 살인 기술이 오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리라. 

결련택견의 또 다른 특징은 품새나 급수가 없다는 점이다. 

Q. 태권도처럼 품새나 단이 없는 이유가 있나요?

"조선시대 숭문천무(崇文賤武)를 내세웠던 선비들의 유교적 관념 때문에 택견이 일반 평민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민중무예로써의 특성에 기인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무예는 소수 권력집단에 의한 권위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택견은 빈번히 벌어진 결련택견판에서 택견꾼들이 실전을 통해 경험한 실용적인 기술들이 계승되면서 실전에 부적당한 것들은 자연스레 도태되었던 거죠.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싸워 이길 수 있는 실용적 기예들로 이루어져 있는 겁니다. 일본 사무라이 문화와 달리 그냥 마을과 마을 대항이었고 평민들이 즐겼기 때문에 굳이 1단이니 2단이니 이런 걸 정해두지 않았던 거죠"

그랬던 것을 송덕기 옹의 또 다른 제자 신한승 선생이 문화재관리국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과정에서 일본 가라테 형식을 빌어 품새와 단급을 만들게 된 것이지만 도기현 회장의 결련택견에서는 단급 제도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고 기층문화가 녹아든 '결련택견', 코로나를 겪으며 위기에 빠진 결련택견이 다시 옛날의 영광을 누릴 수는 없을까? 도 회장의 고민이 깊어진다. 

"단옷날 아랫대와 웃대 간의 택견꾼들의 신명 나는 시합이 마을 잔치처럼 벌어졌듯이 서울 종로구와 중구 간 경기대회를 마련하면 좋겠어요. 청계천에서 멋들어지게 시합하는 거죠. 사물놀이도 하고 신명 나게 응원전도 펼치면서 말이죠. 그러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인사동에서 일요일마다 하던 택견시합 공연도 다시 제대로 재개하는 게 희망입니다"

도 회장은 이런 제안을 종로구청에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면서도 예산지원은 소극적이라면서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공연할 수 있는 택견꾼을 육성하고 그들이 직업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하려면 아무래도 뜻있는 지자체나 기업의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고유 전통문화의 계승, 보존이라는 의미와 함께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게 도 회장의 주장이다. 그래서 도 회장은 해외를 돌며 택견 보급에 애쓰고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외려 택견이 주목받고 인기를 끌어 씁쓸하다고 그는 한숨짓는다. 

해외에서 택견을 가르치는 도기현 회장

K팝이 전 세계를 휘젓듯이 우리 전통 무예 택견도 K 마셜아츠(Martial Arts)로 우뚝 솟을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다며 세 가지 포부를 밝혔다. 

첫째, 국내에 3개로 분열되어 있는 택견협회를 하나로 통일하고 둘째, '아랫대 웃대 경기'를 부활시켜 세계적 문화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셋째 택견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충분히 매력적인 무예여서 세계화도 가능합니다. 저는 정말 사명감을 갖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 받고 돌아와 보니 스승님인 송덕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부모님이 다시 미국 가서 박사 공부하라고 큰돈을 주셨지만 그 돈을 택견 보급에 쓰고 유학은 포기했습니다. 독립운동한다는 심정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지금 택견 보급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정부나 국회, 지자체, 그리고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후원이나 지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의 스승 송덕기 옹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홀로 연마하며 지켜왔던 '택견'. 유네스코도 인정한 우리 전통 무예 택견을 지키고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키우려는 그의 노력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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