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 시범 보이는 도기현 (사)결련택견협회장
우리 고유 무예인 '택견'의 마지막 스승이자 인간문화재였던 고 송덕기(1893~1987) 옹은 구한말에 태어났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건국과 6.25 동란을 겪었다. 민주화 시대를 겪으며 1987년 9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두 세기에 걸쳐 역동적 세상의 풍파와 함께 한 그의 장수 비법은 택견?
조선의 마지막 택견꾼 故 송덕기 翁
송덕기 옹의 제자인 도기현 결련택견협회장은 스승과의 만남을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대학 1학년 때 동네 이발소 갔다가 우연히 잡지 기사를 봤어요. 제목이 '내 나이 90에도 젊은 놈 몇 놈은 끄떡없는 택견의 달인 송덕기'라고 쓰여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듬해인 1982년 봄,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밑에 있는 노인정(장수회관)으로 그분을 무작정 찾아갔죠. 택견 가르쳐달라고. 그 때 그분이 여든아홉 살이셨어요"
당시 여든아홉이면 노인 중에서도 나이 든 노인이었지만 송덕기 옹은 무척이나 정정했다. 택견으로 단련된 그는 인왕산을 마치 축지법 쓰듯 젊은이들보다 빠르게 올랐다고 도회장은 기억한다.
그에게서 택견을 배운 도회장은 택견이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운동이자 호신술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연세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주립대학교에서 체육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에서 노인체육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택견이 노인들을 위한 최적화된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우선 품밟기라는 택견 만의 독특한 동작을 든다.
품밟기란 한자 물건 품(品)자처럼 두 다리로 삼각형 모양을 밟는 동작을 가리킨다. 밟으려면 무릎을 굽혔다 펴게 되는데 이를 '오금질'이라고 한다. 오금은 무릎 뒷부분을 일컫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금질은 하체 근력을 강화시켜주는 운동이다.
"송덕기 스승님도 90 먹은 노인이 하체를 가지고 계속 놀고 계신 거예요. 굼실굼실 거리면서 하체를 단련시켰던 거죠. 그래서 그분이 저랑 택견할 때 인왕산에 올라가실 때도 쭉쭉 올라가시더라고요. 축지법을 쓰나 할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택견이 노인들에게는 최적화된 운동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물론 젊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운동이죠."
무릎을 완전히 굽히며 앉았다 일어서는 '스쿼트'운동보다는 하체 근력 운동의 강도가 물론 적다. 대신에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연골이 약해진 노인들이 무리하게 스쿼트를 하면 관절과 허리에 무리가 가게 되고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강도가 약한 오금질이 적합한 운동법이라는 설명이다.
오금질 외에 '올려재기'라는 동작도 고령자들에게 최적화된 운동 동작이다. 올려재기란 '다리를 들어 올려서 힘을 잰다(비축한다)'는 뜻이다. 재기차기하듯 한쪽 다리를 안으로 들어 올려 아랫배에 힘을 모으는 것이다. 이는 단전호흡과도 연결된다.
올려재기
" '이크' 하면서 다리를 들어 올려서 힘을 재는 겁니다. 아랫배에다 힘을 재요. 이게 단전호흡이에요. 중국이나 일본의 단전호흡은 인위적으로 하는 거지만 택견의 올려재기는 편안한 몸짓으로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게 만드는 거죠"
택견의 품밟기 동작과 올려재기는 단전호흡을 하게하고 허벅지와 정강이 등 하체 근력을 강화하게 해주는 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고관절 보호 기능 때문이다.
"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관절이 굳어서 넘어지는 거예요. 노인들의 50% 이상이 낙상으로 인해서 돌아가세요. 낙상 후 합병증이 와서 돌아가시거든요. 그러니까 노인 체육계의 가장 큰 화두는 어르신들을 안 넘어지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안 넘어지게 하려면 고관절을 부드럽고 튼튼하게 해야 돼요. 그런데 택견이 고관절 운동에 아주 좋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볼 때 조선시대의 운동이 진짜 지혜롭다니까요"
택견의 또 다른 특징은 경쾌한 움직임으로 우리 전통 민요 아리랑 리듬에 맞춰 마치 춤추듯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 가보면 공원마다 노인들이 태극권을 수련하듯이 우리도 공원마다 아리랑 틀어놓고 품밟기하면 좋겠습니다. 광화문광장 같은 공간에 아리랑 틀어놓고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노래하면서 품밟기하는 국민운동으로 보급하면 노인건강 증진에도 도움 되고 외국인들에게는 볼거리도 되지 않겠어요?"
도기현 회장은 택견을 동양의학인 양생학과 접목시켜 양생택견을 연구해 보급하기도 했다. 언세대 미래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택견 체조 12개를 창안해 10년 넘게 노인체육지도자과정에서 지도하기도 했다. 양생학에 나오는 6자결호흡법과 기(氣)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경락 자극으로 건강을 증진하는 체조다.
양생택견 특강하는 도기현 회장
도기현 회장은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을 방문해 택견 보급에 힘쓰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 양생택견 세미나)
중국에 태극권 인구가 1억 명이나 될 정도로 태극권이 중국의 대표 건강수련법이라면 택견을 대한민국의 대표 건강수련법으로 활성화하면 어떨까. 노인이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해진다. 노인인구 천만 시대,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노인들의 건강권 확립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