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민 칼럼] 털보 담임의 대걸레자루 '빠따'가 그리워질 줄이야.
담배를 일찍 배웠다. 고1 때였다. 남들보다 한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갔으니 만으로 15살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중독이 되다 보니 학교 화장실에서도 피우게 되었다. 일찍 담배를 배운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일제히 몰려 담배를 피워대니 화장실은 온통 연기로 자욱했다.
고3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털보였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신 멋쟁이 선생님의 별명이었다. 털보 선생님은 학생들 손을 하나하나 코에 갖다 대면서 냄새를 맡았다. 5명이 걸렸다. 나도 걸렸다.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후드러맞았다. 다섯 대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멍이 들었다. 앉아있기도 힘들 만큼 아팠다. 하지만 우리 5명 중 그 누구도 저항하거나 체벌을 거부하지 않았다. 1986년의 일이다.
2025년 6월 경기도 파주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일이다. 2학년 학생이 교무실과 복도에 소화기를 난사했다. 흰 분말이 쏟아지자 놀란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학교는 2학년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정상적 수업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고를 치고 달아난 학생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담배 피우지 말라고 훈계해 화가 나 소화기를 뿌렸다"
경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지난달 수업 도중 한 학생이 써낸 종이쪽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쪽지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적혀 있었다. 수치심까지 느낀 교사는 지역 교육지원청의 교권보호위원회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 교사는 교권보호위원회가 '교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까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부의 '2025 교육활동보호매뉴얼'에는 '경멸적 감정을 다른 사람 앞에서 표현했다면 관련 법상 모욕에 해당한다'라고 돼 있지만, '단순히 분노의 감정이라면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책상에 엎드려 대놓고 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게 교사들 이야기다.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라도 할까 봐 그냥 못 본 척 놔두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교권은 추락했고 공교육은 무너졌다.
그때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후려쳐 주셨던 '털보' 김찬흡 선생님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