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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Sep 17. 2022

신호 (Signal)

서울 성동구 | 서울숲 & 중랑천

 어두운 밤길을 걷는다. 왼편 어깨에는 마음의 무게만큼 무거운 가방이 메져있다. 가방 안에는 립스틱, 이어폰 정도만 들어있었으면 좋으련만 돌덩이 같은 15인치 업무용 노트북이 담겨있다. 사원증을 태그해 사내 출입 게이트를 통과했지만 집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는 완전한 퇴근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숨만 뱉어내며 달리는 버스 창 밖으로 지나가는 길에 마주하는 사람들의 퇴근 후의 일상을 바라본다.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를 찾아냈다. 집으로 올라가는 낮은 언덕길 내내 고개를 꺾어 하늘을 쳐다보다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를 내며 가로등 아래 앉아 있는 동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만나면 챙겨주려고 가방 안에 넣어놓은 고양이용 간식을 뜯어 고양이에게 건넨다. 간식 봉지를 씹어가며 정신없이 먹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고양이에게 던져본다. "오늘은 어디서 놀았니."라며. 


 어두운 방에 불빛이 들어온다. 터벅터벅 신발을 끌며 걸어온 탓인지 발이 아파왔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어내지만 마음에 갇힌 답답함과 몸에 갇힌 피로는 결국 이날도 풀어지지 못했고 이중으로 걸쇠가 걸려버렸다. 

 그렇게 며칠을 같은 일상을 보내고 사흘 간의 연휴 기간이 다가왔다. 그중 이틀은 침대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잠시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잠에 들었고, 다시 잠시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잠들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 머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느낌에 산책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카메라를 들고 익숙하지만 적당히 거리가 있는 공원을 가기로 마음먹고 서울숲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성수동에서 살았던 2년 동안 '성수동에서 살면 유명 식당, 카페가 가까워서 좋을 것 같다.'는 주변의 말에 성수동에서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서울숲'과 '중랑천'이라고 답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답하곤 한다. 한적한 저녁 시간, 서울숲을 산책하고, 중랑천 길을 따라 따릉이를 타고, 한강길을 따라 걷고 뛰다 보면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었다. 

 도착한 서울숲은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로 휴식을 취하고자 나온 인파로 가득했다. 잔디마다 자리를 펴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 비눗방울을 불며 뛰는 아이들, 부모와 같이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반려견들과 산책을 나온 주민들, 다소 소란한 풍경은 다정했고, 평온하지만 생기가 넘쳤다. 


 머리를 짓누르던 부담감과 고민, 스트레스, 통증을 잠시 잊고 싶었다. 벤치에 앉아 낮의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고, 나무 사이를 흐르는 물길의 생동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숨을 쉴 때마다 들어오는 여유로움이 너무도 그리웠다. 목에 걸린 사원증을 벗어던지고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몸과 머리는 내게 쉼이 필요하다며 신호를 보내왔다. 온전하게 휴일을 휴일답게 보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항상 꿈을 꾸는 듯 멍하고 눈이 감겼고, 알 수 없는 어지러움증이 지속되고 있었다. 주말까지만 버티자며 애써 모른 체 했다. 하지만 주말에도 쉴 수 없는 평일의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고 요를 펴고 누워서 잠만 자던 우리네 부모님 세대들이 떠오른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어떻게 이렇게 버티며 지내왔을까.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텼을 것이다. 내 삶 속에 내가 없이 가족 부양이라는 책임감으로 버텼을 것이다.


 요즘 '조용한 사직'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레 유행하고 있다. 심적으로의 잠정적 퇴사 상태. 직장을 다니는 상태이나 주어진 업무 범위, 근무 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근무 형태를 지향하는 것으로 흔히 일컫는 MZ 세대들을 위주로 유행하는 형태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확실히 자리 잡은 것을 보면 '조용한 사직'도 어느 순간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강과 중랑천 길을 따라 걸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시간은 필요하다. 신호에 대한 응답이 너무 늦지 않도록 나를 잘 살펴보는 것. 그것이 당분간 매일 체크 리스트에 1순위로 적어둬야 할 일인 것을 깨닫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보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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