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길의 애정 Oct 18. 2022

참 오랜만이야라는 말로

여행기 발행에 앞서

 '사는 게 무슨 재미일까'라는 말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무의미한 호흡과 생산성 없는 일들로 가득했던 지난날. 브런치는 눈앞에 놓인 그림을 똑같이 그리는 정물화 같던 삶에 다음 장에 연결되는 이야기와 그림을 넣어 흐름을 이어가며 내일이라는 다음 화가 기다려지는 웹툰 같은 삶으로 바꿔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특별해지고 싶은 보통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시와 그림, 컷툰, 여행, 경제, 비즈니스, 역사, 문화, 에세이 등 광활한 범주의 이야깃거리는 새로고침 하는 순간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달라는 은근한 압박을 넣는 개인 콘텐츠에 신물을 느껴 도피하듯 찾게 된 이곳은 그 '은근한 압박'이 섞인 글도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편집장의 검열이 없는 공간이기에 매끈하게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글들은 완벽한 조경을 갖춘 정원보다는 자연스레 피어난 길가의 민들레꽃처럼 편안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소위 '있어 보이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고, 쉽게 읽히지 않을 단어와 외국어를 남발하지 않는 글들이 꽤나 많이 보이는 이곳을 짧은 시간 안에 아끼게 되었다. 


 마침 그때의 나는 이제 막 '생동감 넘치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시선의 변화를 간절히 원했던 때였다. OTT 플랫폼의 콘텐츠 중 바이크를 타고 여행을 하며 공기를 가로지르며 느끼는 희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출연자들을 보며 기차표를 예매했고, 서랍장 속 고이 잠들어있던 오래된 카메라도 꺼내게 되었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때 산책을 하라는 말은 때로는 그 어떠한 처방약보다 강력하게 느껴졌다. 무료하기 그지없던 30대의 '어느 날'은 차츰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때로는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성장하는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때로는 계획과 조금의 다름없이 편안히 흘러간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조금 더 바삐, 보람 있게, 그리고 내 경험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하여, 평소 아끼던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기재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 지원을 했고, 소개서 속의 연재를 할 예정인 소재가 좋았는지, 지원 당시 작성한 글이 좋았는지 선정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낙방 없이 바로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된 후 '초심자의 행운'은 계속되었다. 작가 지원 당시 첨부한 세 편의 글을 그대로 발행했고, 그중 두 편의 글이 포털 사이트와 브런치 메인에 오르는 행운을 얻어 실시간으로 울리는 '조회수가 O명을 돌파했습니다.'라는 푸시 알람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꽤 여러 편의 글과 브런치 북(브런치 북 바로 가기)이 포털 사이트, 브런치의 메인에 오르고, SNS와 포털 사이트의 카페 등에서 내 글과 업로드한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는 영리 목적의 제안이 오기도 했다. 


 금년 5월, 작가 신청 합격 메일을 받은 후부터 군산 여행기(군산 여행기 바로 가기)를 발행하기까지 두 달 남짓한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순간이었고, 더 빛나고 싶었다. 더 적절하고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고 싶어 독서도 하고,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며 낯선 희열을 느끼는 여행을 하며 낯선 시선을 담고 싶었다. '회사'라는 요소에 잠식돼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질 줄 몰랐기에.  

 3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나무 위 봉오리마저 말라버려 미처 피지 못한 꽃처럼 살았다. 넘치는 업무량에 새벽까지 일을 하고, 주말에도 업무용 노트북을 챙겨 와 일을 하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일을 하고, 두 달 전 예매해놓은 공연장 입구에 서서 일을 하고 정작 공연을 보는 도중 힘에 부쳐 잠이 드는 내 모습이 가련했다. 현생은 '혐생'이었다. 설상가상 중인 사이버 대학교의 개강까지 더해지니 꽃을 피우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되레 말라버리게 된 형국이었다. 


 매일 머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두통과 어지러움증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서러웠다.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 동안 가장 '나를 잃은 시간'이었다. 강릉행 기차에서 겪은 짧은 실신(강릉 여행기 바로 가기이후 어지러움증의 빈도는 더욱 잦아졌고,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다음 달 기립경사 검사를 앞두고 있다. 


 얇은 유리판 같은 몸과 마음은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쉬어가야 할 때였다. 결국은 일주일 간의 휴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연휴 3일은 경남 거제와 통영을 가기로 결정했다. 남은 평일은 예매했던 공연을 보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방향으로 휴가 계획을 세웠다. 급하게 결정한 휴가이기에 출발일 전까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10월 첫째 주 연휴와 맞물려 기차 좌석을 예매하기 힘들었다. 겨우 잡은 부산행 왕복 기차의 좌석은 새벽 첫 기차로 출발하고, 늦은 시간 여행지에서 출발하는 고생길 기차 시간이었다. 다행히 숙소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리를 쭉 뻗고 팔을 뻗어도 될 만큼의 넓은 침대가 있는 청결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당일 새벽 2시 반이 되어서야 얼추 일을 끝냈다. 2박 3일 동안 쓸 짐도 당연히 미리 챙겨두지 못했다. 새벽 5시 반 기차를 타려면 3시에는 일어나 준비를 하고, 서울역으로 향해야 했다.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30분 동안 짧게 눈을 붙이고 일어나 몸을 씻고 졸린 눈으로 체크 리스트에 적어둔 물품들을 챙기며 마지막으로 업무용 노트북을 챙기던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웃음이 났다. 내가 누리고 싶은 휴가는 기차에서 개인용 노트북으로 다른 작가들의 브런치 글을 보고 내 글과 사진을 정리하는 휴가였지만, 현실은 회사에서 언제 연락이 올 지 모르는 불안감에 업무용 노트북을 챙겨가는 모양새를 보니 속이 상해 웃음이 났다. 회사는 그 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해 '원래 다 그런 거야.'라며 누구는 해외여행을 간 와중에도 메일을 보냈다며 일화를 늘어놓는다. 안쓰러운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역방향으로 달리는 기차 안.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차창 밖을 보며 한 가지 다짐을 하다 잠이 들었다. 


이번 여행기는 다녀온 뒤 한 달 안에 이곳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겠노라고. 

그렇게 나를 되찾아갈 거라고. 

언제든 나는 피어오르는 봄꽃이 다시 될 수 있다고.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한다. 


촬영했던 사진을 보관한 외장하드에서 발행하는 글에 첨부할 사진을 신중히 고르고, 어떤 내용으로, 어떤 단어로, 어떤 문장으로 글을 쓸지 고민하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도 설레고 행복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신호 (Signa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