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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Oct 15. 2023

로컬 간호사, 박봉이어도 간호사가 좋은 이유

정신승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습니다.


간호사로 일해온 지 8년 차다.

육아휴직을 포함하면 9년 차.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연봉은 알아주겠지만,

로컬병원 간호사의 연봉은 현타가 온다.


어떤 깊은 뜻을 두고 간호사를 한다면

그 가는 길을 막지 않겠지만...


현재 모의고사 1~3등급인데 간호학과를 지원하겠다는

후배들이 있다면..... 부디 전망 좋은 다른 과를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굳이 그 젊은 날 좋은 대학 가서 간호학과를 간다면....

해외로 나갈 꿈이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공대를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2010년 이전에야 간호학과 정원이 적고,

간호학과가 있는 대학이 많지 않아서

그전까지는 간호사가 귀했던 시절이 맞는 것 같다.

(귀하다 = 연봉이 높다, 가치 있는 직업, 대우받는 위치)


그런데 2010년부터 간호학과 정원을 대폭 늘리고,

간호조무사(간무사) 국비지원 100%가 된 이후에는....

인력이 많고, 대체할 사람이 많으니

간호사에 대한 처우도 연봉도 더 열악해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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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보다 로컬이 중증도가 낮고 스트레스를

덜 받아 좋기는 하지만 연봉은 정말....

간호사라는 직업치고 박봉이라고 생각한다.


로컬이라도 연봉이 높은 경우는 3교대 근무자다.

상근직 미드데이(스프린트)는 수도권도 지방도 세전 200만 원 정도가 현재 로컬 간호사의 현실이다.


게다가 내가 면접 봤던 한 병원은

수간호사가 현재 미드데이(스프린트)를 하는 간호조무사도 그 급여를 받고 일하니, 당신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관리자급이 간호사를 그렇게 대한다는 게... 참...


그 얘기를 같이 일했던 한 수간호사샘에게 말했더니 나보고 그 학벌과 경력에 뭐 하러 200만 원 받고 상근직 간호사를 하냐며 다른 알바자리를 찾아보라고도 하셨다.


(그 말에 정신 차리고 시간대비 연봉이 좋고,

경력 쌓기도 좋은  인공신장실에 취업했다.

그나마 원장님이 이전 경력을 인정해 연봉을 쳐주셔서

일단 지난날 현타는 잊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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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을 간호사로 살아왔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직군으로 간다는 게 쉽지 않다.


이 일에 익숙해졌기도 하고,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한편으로 막막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게 간호사춘기가 온 것 같았다.

간호사로서의 정체성도 흔들리고, 자부심은 꺾이고....


몇 날 며칠 널스케입 게시판과 간호사 관련 기사들을 접하면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고, 또 간호법이 통과된 후에는 정말 처우가 개선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을 때 참담했다.


"내가 간호사를 왜 했지? 뭐 하려고 했을까..."


그렇게 간호사로서의 자존감이 뚝뚝 떨어져 갈 때쯤

정신 승리할만한 문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눈 감는 그날에 간호사로 산 걸 후회할까?" 했을 때

그날의 나는 대답했다.


"간호사로 살아서 참 다행이다. 내 인생 참 보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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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도 사람 나름이라 각자 인성이 다르겠지만,

내가 만났고 같이 일했던 간호사들 중에는

정말 나이팅게일처럼 헌신적이고 봉사정신이 많은 사람들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인생 살면서 이렇게 헌신과 봉사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게, 아픈 이들의 위로와 돌봄이 되었다는 게 간호사의 자긍심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간호사로서 자부심은 없다.

다만 간호사로 살아가는 자긍심은 있다.


내가 눈 감는 그날,

간호사를 하기를 잘했다고 보람 있었다고.

이렇게 정신승리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정신승리면 어떠랴.

내게 자긍심을 주는 그 한마디가

환자들에게 따뜻한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돌봄으로 나오는 자양분이 되는 걸.


다른 일을 하기에 내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일단 현재 내 생각은 이렇다는 걸.


먼 훗날에는 그래도 탈임상해서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자긍심 자긍심 자긍심을 외쳐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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