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Jan 31. 2021

거짓 두려움에 의한 사재기가 내일을  보장해 줄까



개별의 인간처럼 혼자 지내던 그가 농막 문을 잠갔다. 서울 집에 가려는 것이다. 한동안 오지 않을 예정이다. 주변을 꼼꼼히 살펴봤다. 얼추 정리됐다고 여겼는지 미소가 번졌다. 기껏 6평 자리 농막을 보고 흐뭇해한다. 꽉 채워서가 아니라 단출해서다.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물질이든, 인맥이든, 배움이든 마찬가지다. 내일이면, 이미 지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모아봐야 무겁고 아련하기만 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필요할지 쓸모없을지 그때 가봐야 안다. 그의 경험상 부질없는 짓이었다. 짐이나 만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는 출발하기 전 운전석 문을 열며 하늘을 향해 삐죽하니 아쉬운 표정 지었다. 얼마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어서다. 인간의 것이 아닌 별은 항상 저 자리에 있다.



젊은 날, 그는 지금처럼 평화롭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마구잡이로 쌓아두고 인맥을 만들고 올라서려 버둥거렸다. 오래전, 단지 행복해지고 싶다는 가난한 꿈을 꾸던 소년을 변하게 할 만큼, 세상은 무차별하게 잔인했다. 겉으론 세련되고 우아한 지적 문명인처럼 행세했으나, 어디 속까지 그럴까. 부끄러움은 알았던지 꽁꽁 감추어둔 내면은 볼 장 다 본 인간이었다. 거대한 사회를 이루 있고는 주변인, 교육, 종교, 메스미디어가 쉼 없이 뿜어낸 욕망에 중독됐다. 욕망의 속삭임은 달콤했고 향기는 강렬했다. 끊어볼까 하는 마음만 살짝 들어도 지독한 금단현상이 바로 찾아왔다. 학습된 거짓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불행하지 않은데 불행이라 여기고 행복할 것 같지 않은데 행복할 거라 착각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간혹 깨어날 때면 지난밤이 부끄러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무심히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위태로운 한 가닥 영혼은 남아있었다. 평소에 조용히 침묵하던 약해빠진 영혼도 위협을 받으면 들어내고 저항한다. 쪼그라들다 못해 결국 한 점이 되어 사멸하지 않으려는 발악이다.

 


소속 없이 태어날 때부터 겪은 따돌림과 멸시였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가지려 했고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럴수록 더 깊은 불행 속으로 빠져들었다. 방법이 틀렸다. 살다 보면, 능력에 따라 절로 따라오는 것을 욕망했다. 예를 들어, 지난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사재기와 같다. 그깟 휴지는 뭐 하려고 살까. 두려워서 그렇다. 공포는 뇌의 전두협을 자극해 불안, 흥분, 충동 장애를 불러온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뭐든 소유하고 채워야 한다. 그러나 위기는 증폭됐고, 이익은 언제나 검은 장막 뒤에 숨어 공포를 과잉 조장한 자들의 몫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 시키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인제 그만, 환각에서 깨어나 자신의 길을 가기로 했다. 외롭다 한들, 설마 유년 시절보다 더 할까 싶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픽'하고 세상에 대한 찡그린 비웃음 한번 터트리는 것으로 끝냈다. 사회란 구성원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개별 인격체의 연대다.



그가 몇 달 만에 서울 집에 올라왔다. 두 남매(25, 23)는 요즘 취업 문제와 기업들 구조조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금융권에서 수천 명 감원하고, 대기업은 사업을 철수하고, 항공사와 여행사는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디 한 군데 편안한 곳이 없다. 그러나 듣고 있는 아빠나 이야기하는 아이들이나 그다지 불안해하지 않는 여유로운 표정과 말투였다. 그가 말했다.


"거봐, 세상 변하잖아... 그러길래 쓸데없이 학원은 왜 다녀... 대학 졸업장이라고 다를까, 이미 기울었어, 조금 있어 봐, 거기서 거기야.... 다 변해, 제 하고 싶은 것하고 살지... 다들 똑같이 돼서 뭐 하려고... 아파트는 왜 사는지... 그 돈과 여유로 가족이 사랑하고 여행하고 맛있는 것이나 사 먹지...  권력 가진 모 부처 공무원인들 언제까지 철밥통일까... 너희는 두렵지 않잖아."


미안스럽게도, 그의 퉁명스러운 설명을 들은 두 아이는 밝게 웃었다. '심각'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아빠였다. 세상 뒤집어져도 그런가 보다 할 사람이다. 둘은 이제야, 아빠가 지켜주려던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학습된 거짓 불안과 두려움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강한 자유의지였다. 그렇다. 그는 공부를 강요하지도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것도 배움에 대한 무분별한 사재기일 뿐이다. 용한 점쟁이도 아니고 수십 년 후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 줄 알고 준비한단 말인가. 남들이 하니까 본인들만 뒤처질까 싶어 허겁지겁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재기를 다른 말로 패닉 바잉(공포에 의한 소비)이라 한다. 그럼 뭐 하겠는가. 지나고 나면 어차피 휴짓조각인 것을.



이 땅의 부모들은 학원을 매우 쉽게 생각한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도 학원 다니는 것 자체가 공부 잘하란 소리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된다. 본인들 뒷바라지하기 위해 부모는 죽기 살기로 일한다. 학원 보낼 형편이 안되면 대역죄를 지은 것 모양 낙담하고 부부간의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 가정이 해체된다. 아이들의 부담감은 엄청나다. 항상 불안하고 두렵다.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명문대를 나오고 안정된 직장을 얻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가 구조 조정이라도 하면 확률은 더 줄어든다. 결국, 성인이 되어 주식, 아파트, 토지 등에 빚이라도 내서 투기하는 영끌이 족이 된다. 오죽할 게 없으면, 그런 것이라도 성공해야 제 대로 사람 구실 한다고 여길까 싶다. 비루했던, 그의 젊은 날을 보는 것 같. 거짓 불안과 두려움에 의한 사재기로는 삶을 즐길 수없다.



그의 두 아이는 스스로 했지만, 그런대로 곧잘 했다. 산골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길다. 심심하면, 아들은 만화 비슷한 낙서를 하고 딸은 이것저것 만든다며 송당거리며 어질러 놓았다. 남들이 학원 갈 시간에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들었다. 그래도 시간은 남았다. 늘어지게 자거나 멍 때리는 것이 일과였다. 아이들은 그 많은 무료한 날들을 무슨 상상을 하고 보냈을까. 훗날 두 아이의 상상력은 꿈과 미래로 표출됐다. 아들의 꿈은 실사 영화나 게임 속 캐릭터를 정밀 묘사하는 웹 크로키 작가고, 원예학과를 다니는 딸은 플로리스트 강사다. 둘 다 아직은 어리지만 스스로 벌어 관련된 학원에 다니며 미리 자격증을 따고 장학금을 받아서 생활한다. 부모의 경제적 도움은 고등학교까지였다. 그는 분명 남는 장사를 했다. 놔두니까 알아서 자랐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기에 남들보다 뒤처져야 하지만 오히려 안정되고 여유롭고 빠르다. 지금은 그때와 또 다르다. 세상이 변해서 영어 잘하는 사람도, 유명 해외대학 출신도 많다. 굳이 자본주의 경쟁 논리로 따진다면, 그런 지극히 평범한 것들로는 비교 우위에 서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갈고닦은 실력이다. 마치, 작가가 글만 잘 쓰면 되지 요란한 스펙이 없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혹여 드러나게 성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들의 아빠는 작은 농막에 지내며 농사짓고 글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삶의 방식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없다. 최초의 주변인인 부모에게 배운다.



다음 날 새벽, 어제와 다른 기사가 보였다. 내일은 또 다른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그는 노트북을 덮으며 "변했군"이라는 단 마디를 뱉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운 듯 검푸른 서쪽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시에선 별이 보이지 않지만 그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렇듯 어제와 다른 새롭고 흥미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어떨지 지나 봐야 안다. 서툴고 어설픈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절대'란 있을 수 있을 수 없다.





타이틀 이미지/ 사진작가 사만다 고스(Samantha Goss)는 악몽에서 깨어있는 꿈에 이르기까지 초현실적인 이미지 영감으로 사용한다. 창조적인 노력은 말이나 이동할 수 없는 특징이며 환각을 자주 동반하는 무서운 에피소드에 대처하는 그녀의 방법이다. 수면 상태에서의 마비는 종종 깨어 꿈 사이의 가슴에 어두운 무게로 설명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