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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Mar 28. 2021

평범하게 불행하고
어리석지 않은 여자의 호기심

  



'불행을 평범함으로 착각할 때 불행은 계속된다.'



그녀(40)는 바리스타고 남편과 아이가 있는 직장맘이다. 줄곧 이생망이라고 푸념하지만, 여태껏 자신의 삶이 평범한 줄로 알았다. 남들도 비슷비슷하게 살아서다. 이것은 또 다른 평범한 사람(58)을 알기 전까지였다. 그녀가 자신은 어떻게 보이냐고 묻자, "뭐, 남들처럼 평범하게 불행하겠지"라고 했다. 무례한 대답을 듣고도 불쾌하지 않았다. 정감 있게 들렸다. 당연한 듯 살아온 사십 대 여자와 당연한 것이 불편한 오십 대 후반의 남자는 어떻게 만났을까. 그가 처음 카페에 나타난 시점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2년 전, 뜨거운 여름이었다. 검정 긴소매 남방에 검정 진 바지를 입은 회색 머리칼의 사람이 카페에 들어왔다. 눈길을 끌었다면,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에 살다 왔는지, 얼굴과 걷어 올린 팔뚝도 새까맣게 그을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데일 것 같았다. 이마의 주름은, 그가 가로질러 메고 있는 낡은 검정 가죽 가방처럼 질기고 단단해 보였다. 키도 크고 몸도 제법 각이 잡힌 험악한 사람이었다. 카운터로 다가설 땐 괜한 긴장감마저 들었다. 그녀가 무엇으로….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무심코 카운터에 올려둔 그녀의 폰이 삑 소리와 함께 진동음이 울렸다. 폭염 발생 경보였다. 폰은 살아있기라도 한 것 모양 미친 듯 떨었다. 속이 빈 카운터는 울림을 요란하게 증폭시켰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당황스럽고 민망했다. 그때였다. 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휴... 내가 지병이 있어서…."



심장이 약하단 소리다. 넘치도록 건강해 보이는 사람의 말치고는 헐렁했다. 게다가 씩 하고 웃었다. 새까만 얼굴 때문에 이빨은 유난히 희게 보였다. 그의 투박한 유머에 민망함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주변 동료들이 큭큭대며 웃음을 참았다. 이것이 그와의 첫 번째 대면이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왔다. 주문하는 것은 언제나 같았다. 첫 주문은 아메리카노, 두 번째는 카모마일이었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뭔가 쓰거나 아니면 책을 봤다. 간혹, 손등으로 턱을 괴고 사람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어떨 땐, 저녁 8시경에 다시 와서 테라스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첫 등장과는 다르게 특별히 주목할 것 없는 평범 중년 남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십 대 후반의 여리고 티 없이 순진해 보이는 여자가 그를 만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마음 떠난 사람 붙잡듯 눈물 콧물은 기본이었다. 모두가 힐끔거렸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선 아침 드라마보다 더 복잡한 삼류 소설이 떠올랐다. 그는 카페의 사각 티슈를 한 움큼 가져다주었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울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시간 후, 둘은 그의 차를 타고 떠났다. 그리고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궁금했으나 곧 잊혔다. 원래 카페란 이런저런 사연이 많은 곳이다. 훗날 알고 보니 둘은 그날이 첫 만남이었다.



몇 달 후, 그가 다시 왔다. 카운터로 다가서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씩 하고 웃으며 살짝 손을 들어 인사했다. 젊은 울보 여자가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궁금증이 다시 차올랐다. 그녀의 본 살펴보기를 원했다. 몇 가지 사소한 점을 발견했다. 인상은 거칠었으나 표정은 남들처럼 무표정하지 않았다. 감정이란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살짝 찡그리고, 즐거우면 연한 미소를 지었고, 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가볍게 발목을 까닥거렸다. 옷은 계절에 상관없이 단색으로 된 긴소매만 입었다. 하늘색, 검정, 회색이었다. 머리는 다소 길었고 아무렇게나 쓸어 넘겼다. 반적으로 반듯한 이미지 보단 흐트러져 보였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방문하는 카페였고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그는 평범하면서도 누구와도 닮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뭐 하는 사람일까. 직장인, 교사, 공무원, 명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을 대입해 보아도 딱히 들어맞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났다. "아저씨!" 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앉은 옆 테이블 단체석을 정리하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30대 초반의 까칠해 보이는 여자가 다가갔다. 우연히 만난 것 같았다.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 보기와 다르게 전혀 까칠하지 않았다. 잉잉거리는 코맹맹이 소리까지 냈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난 지 둘은 조분 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딸이 아빠에게 수다 떠는 느낌이었다. 울보 여자도 부족해 이젠 까칠한 여자까지, 그녀의 상상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러다 카페의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한 쌍의 중년 남녀가 코로나 방문 대장과 QR 코드를 한사코 거부했다. 본인들은 테라스에 나가서 마시니까 괜찮다고 우겼다. 그녀는 그래도 꼭 작성해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사생활 침해라며 소란을 피우며 버텼다. 결국 방문 대장에 휘갈겨 쓰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으나, 그녀의 억한 감정은 최고조에 달했다. 동료 직원이 건네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셔도 풀리지 않았다. 그때 그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지랄도... 원, 사생할 침해인지... 노출이 무서운지 몰라도... 하여간 저 모자란 것들 신경 쓰지 마"


존댓말로 시작해 반말로 끝내는 자유분방한 말투였다. '지랄'이라는 욕도 상스럽지 않았다. 분한 마음이 사라졌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어쩜, 울보 여자와 까칠한 여자도 그의 그런 점을 보지 않았을까 했다. 조건 반사적으로 자신의 남편이 떠올랐다. 답답한지 한숨부터 나왔다. 볼록한 배에 백팩을 메고 출근하는 꼴 보기 싫은 이미지가 그려졌다.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으나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녀보다 3살 많은 남편은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녔다. 그녀는 모르고 있지만 시작부터 잘못됐다. 폭력적이고 자존감 없는 아버지를 보고자란 그녀는 결혼을 탈출구로 여겼다. 그때 나타난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렵고 전문대를 나온 그녀를 좋아했다. 평점으로 등급을 매긴다면 일등 신랑감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단정했고 예의 바르고 논리적이었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집안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다.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말로는 사랑한다고 속삭였으나, 속으론 앞으로 살면서 사랑할 거라 다짐했다. 그녀가 특별난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결정을 했을 뿐이다.



세월이 흘렀다. 남편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그녀의 다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정하다는 것은, 깔끔하고 반듯하다는 뜻이다. 모든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정리·정돈되어 있어야 했다. 조금만 어지럽혀져 있어도 짜증을 냈다. 예의 바르다는 것은, 좋게 보면 틀에 박힌 규칙과 규범에 맞아야 하고 나쁘게 보면 남의 눈치를 과도하게 본다는 것이다. 유별난 시댁과의 갈등을 예의범절 문제로 여겼다. 상급자에게는 공손했고 힘없는 대리점에게는 까칠했다. 그녀와 처갓집도 다르지 않았다. 은근히 무시했다. 공감 능력도 부족해서 여자인 아내의 불만을 감성이 아닌 이성적 논리로 풀려고 했다. 그녀는 지쳐갔다. 무미건조한 부부들의 공통된 특징도 나타났다. 배우자 대신 애정을 쏟고 위로받을 대상을 찾았다. 타인이든, 직장이든, 물질이든 관계없다. 이것저것도 안 되면 드라마에라도 빠져 대리 만족한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타인을 찾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대신 남편의 몫까지 아이들에게 쏟았다. 그날, 그녀의 폰이 험악한 손님 앞에서 소란을 떨 때도 그랬다. 아이에게 전화로 학원 갈 시간 상기시켜주고 난 후 일이다. 엄마가 자녀 교육비 부담감으로 직장을 다니고 학습을 챙겨주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아이에게 적으로 주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도 받고 싶었다.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친구와 전화 통화로 수다를 떨었다. 어려서부터 만난 사이가 아니다. 아이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만난 학부모들이다. 같은 학군, 교, 아파트에 살았다. 나이와 형편도 비슷다. 공통 관심사아서 금방 친해졌다.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 박물관 등을 다녔고 가족들끼리 모임도 수시로 가졌다. 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시댁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마무리 지었다. 주거니 받거니, 로가 자기 일처럼 공감다. 러나 정작 위로가 된 것은 만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는데 있다.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 바꿔 말하면 평범하다는 것이다. 위안이 됐다. 그녀는 평범함 갇혔다.



어찌 보면, 그 낯선 중년 남자에게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그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그녀의 본능은 그렇게 다.  의도치 않게 위험한 남자 돼버렸다. 그러다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날은 그녀의 연차 휴일이었다. L 쇼핑몰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는 서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대뜸 " 밥 먹자"라고 했다. 최면에 걸린 듯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둘은 한식당을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켰다. 마주 보고 식사를 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여길 정도로 편안했다. 그녀가 물었다.


"저.... 실 레지만, 뭐 하시는 분이세요?"

 

", 농부!"


로 튀어나온 대답에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농부라니, 전혀 상상해보지 않은 직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까만 얼굴과 식탁 위에 올려진 거칠고 투박한 손만 놓고 본다면 농부가 맞았다. 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농부, 막노동, 택배 등 가 아닌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군은 평범함이란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밭일하는 사람이 젊고 세련된 울보 여자와 까칠한 여자를 어떻게 만났을까, 그녀는 몹시 궁금했다. 쑥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두 여자에 관해 물었다. 그는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는 취미 삼아 글을 쓴다고 했다. 한 번은 모 인터넷 매체에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에 관한 글을 올렸고, 울보 여자는 누구보다 공감했다. 그 후로 둘은 작가와 열렬한 독자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메일만 주고받다가 그날 처음 만났다고 했다. 보 여자는 끔찍한 과거와 이어진 현재의 트라우마를 말하면서 운 것이다. 그녀는 울보 여자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모에게 받은 상처를 부모와 같은 세대이자 반대 성향을 가진 사이 쓴 글에 끌렸을 것이다그리고 그가 글은 쓴다는 것도 의외였다. 인간은 종종 시각적 이미지로만 타인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까칠한 여자는 방송작가였다. 둘은 동네 편의점에서 처음 만났다. 창가 테이블에서 송대본을 수정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어떤 맞춤법 프로그램을 쓰냐고 물었다고 했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친해졌다. 어떨 땐, 김치국물 묻은 펑퍼짐한 티셔츠에 수면바지 차림으로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나마주쳐 함께 편의점으로 커피 마시러 간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카페도 까칠한 여자가 알려준 것이다. 그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동네 편의점에서 나이 지긋한 험악한 중년 남자와 30대 초반의 까칠한 여자가 만날 확률이 몇 프로나 될까 싶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말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두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이젠 그가 바라보는 자신이 궁금했다. 자신은 어떻게 보이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뭐, 평범하게 불행하겠지..."


불행하다 말하는데도 불쾌하지 않았다. 보통 주부들 대부분은 평범하게 불행해서다. 정감 있게 들렸다. 속마음과 달리 그녀는 삐친 표정을 지으며 따지듯 말했다.


"항상 그렇게 으면서 편안하게 말해요?"


그는 그녀가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 알았다.


"진지한 게 불편해서... 내 나이면, 누군가엔 어른이 되고, 누군가엔 친구가 되고, 누군가엔 연인이 되 나이지... 편안하지 않으면 외롭기만 ."


연인이란 단어에, 그녀는 내색하지 않을 만큼 살짝 긴장감이 돌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낯선 남자 앞에서, 어느새 웃고 떠들고 삐친 표정까지 짓고 있는 가정주부인 자신을 발견하고 경계감이 생겼다. 그를 다시 한번 살펴볼 요량으로 눈을 마주쳤다. 새까만 얼굴에 박혀있는 그의 두 눈동자는 무심하면서도 편안했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는 또 오지 않았다. 산골에 들어가 농사짓고 있지 않을까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묻지 않았다. 아마, 안다고 해도 흔한 카톡조차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가 생각날 때면 카페를 오가는 사람을 살펴봤다. 폰을 들여다보고, 일행과 수다를 떨고, 책을 펴고 공부를 해도 돌아서면 모두가 무표정했다. 외모도 한결같이 비슷했다. 여자는 머리는 길었고 남자는 바싹 짧았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삶도 엇비슷할 것이라 여겼다. 맘속으로 호감을 가졌던 몇몇 길쭉한 얼짱 남자들도 그저 그래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이 있는 화장실로 갔다. 머리를 뒤로 말아 묶었던 핀을 풀었다. 거울 속 긴 머리 여자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각나는 데로, 그 사람처럼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았다. 평소에 쓰지 않는 안면 근육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그는 여유롭게 보일 만큼 자연스러웠다. 순간, 평범하게 불행하겠지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남들처럼 평범하니까 그만하면 됐다'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아니었다. 불행을 평범으로 착각해서 불행하다는 뜻이었다. 자신은 여태껏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며,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다들이 무표정하니까 그것이 비정상적 이란 사실을 몰랐다. 자신의 얼굴 표정조차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상대적 평범에 취해 살아왔다. 반면, 그에게서 풍기는 낯선 분위기의 정체는 남들과 상관없는 본인만의 절대 평범이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지금의 남편과 시댁도 만나지 않았을 텐데 라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옮싹 달싹할 수 없는 애 딸린 40대 여자라는 현실이 서러웠다.



9월의 마지막 날, 늦은 오후였다. 그가 왔다. 멀찍이 떨어서 순서를 기다리며 손을 들어 인사하는데 하얗다. 붕대를 칭칭 감았다. 폰 지갑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카드를 힘겹게 빼내면서 재밌는지 웃는다. 보다 못한 다른 직원이 카드를 빼내 줬다. 얼마나 다쳤냐고 물어봤다. 두 달간 병원에 있었다는 말에 그녀는 괜히 속상했다. 실내엔 단체석 밖에 자리가 남지 않았다. 그는 멀쩡한 왼손으로 커피를 들고 몸으로 문을 밀고 테라스로 나가야 했다. 오후가 되자 밖의 날씨는 제법 쌀쌀해졌다. 주문받은 직원이 갖다 준다고 했다. 그녀는 얼른 창고로 뛰어갔다. 전에 누군가 잃어버리고 찾아가지 않은 무릎담요를 꺼내왔다. 동료 직원에게 자신이 대신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에게 다가간 그녀는 커피를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허리를 감싸 안듯 팔을 둘러 담요를 꼼꼼히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그를 올려다보며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카페 유니폼인 카우보이 모자를 벗었다.


"어때요?"


"짧은 쇼트커트 머리도 예쁘네!"


그녀는 머리 자른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예쁘다고 말해주자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지런한 하얀 이빨을 내보이며 웃었다. 앞으로, 그녀가 무슨 결정을 하던 그것은 전보다 나은 결정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규칙상, 그녀는 손님과 잡담할 수 없기에 빨리 일어나 카운터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위에는 털실로 짠 커다란 회색 카디건을 걸치고 아래는 자신이 덮어준 감청색 담요로 감싸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 생각에 깊이 빠져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을은 그의 회색빛 머리칼에 부딪혀 반짝였다. 그녀는 '어떤 행복하게 어리석은 여자가 저 남자를 사랑할까'라고 생각했다.





타이틀 이미지/ 슬로바키아의 예술가 미로슬라프 즈가바지는 섬세한 수채화 초상화 시리즈에서 인간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탐구한다. 파란색, 회색, 미묘한 피부 톤의 색조로 렌더링 된 초상화는 깊은 생각의 순간에 피사체를 아름답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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