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정당에 가입해 '당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750만 명(2017년 기준). 영화로 보면 [어벤저스 1]이 707만,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725만,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802만인 것을 볼 때, 750만이면 이미 적잖은 사람들이 정치적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2017년 기준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
그런데도 정당에 가입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우, 그건 좀..." 한다. 그건 아직까지 정당이란 게 우리 삶에서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당이 있는 이유
우리는 저마다 원하는 세상이 있다. 하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야 한다. 모여야 그 쪽수가 힘이 되고, 그 힘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합법적'이란 것이다. 단순히 사람을 모아서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군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위해 사람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불법이다. 그래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합법적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든 우리 사회의 장치,' 그게 바로 정당이다.
도대체 누가, 왜 정당에 가입하나?
그래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정당에 가입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가입을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정당에 가입하고 여러 사람들을 본 결과, 크게 네 부류가 있는 것 같다.
1. 미래 정치인
2. 당직자
3. 참여하는 시민
4. 후원인
1번 그룹은 정당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그 정당에서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당 활동에 가장 적극적이며, 당에서는 이 사람들을 위해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이 사람들에게 대변인, 정책연구원 등 당의 공식적인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2번 그룹은 당의 공무원들이다. 정당에도 현직 국회의원 보좌진들에서부터 조직, 홍보, 정책 연구 등 여러 인력이 필요하다. 이런 당직자들의 경우 대부분 채용이 되고 나서 당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몇몇은 당원으로 있다가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
3번 그룹은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지만, 민주 시민으로서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특정 법안의 통과를 위한 캠페인, 서명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선거 시즌이 되면 자원봉사자로도 열심히 뛰는 분들이 바로 이 분들이다.
마지막 4번 그룹은 이 정당을 지지하지만 적극적으로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부담되고, 그냥 매달 당비를 납부하며 지지를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정당 가입하면 뭐하냐고?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하냐고? 음... 하는 일은 정말 많다.
일단선거. 정당 입장에서, 아니 사실 당원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결국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려고 모인 거니까. 나도 2016년 총선 때 노회찬 선거 캠프에서 일하면서 당원 가입을 하게 됐다. 선거가 되면 정책, 공보, 전략 등은 전문적인 보좌진들이 하지만, 평범한 당원들도 여러 형태로 선거를 돕는다. 적극적인 당원들은 선거운동원, 전화자원봉사자, 선거본부 보조 업무 등 많은 일에 참여한다.
잉? 2번? ㅋㅋ 다시 4번으로 바꿔서
가장 흔하게 하는 일은 캠페인이다. 큰 틀에서 그 당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나가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며 지지를 호소하는 일이다. 전국적인 이슈에 대해 하기도 하고,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입장을 알리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캠페인을 하기도 한다. 아래 맨 왼쪽 사진은 내가 직접 참가한 캠페인이다. 가운데서 먼산 보고 있는 사람이 나다. 미국에 있다가 2017년 서울대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어 귀국한 후 처음으로 참가한 정당 행사였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정의당이 지금 국회에 있는 정당 중 당명을 바꾸지 않은 채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는 점을 살려 5주년 행사를 했다. 거기에 17년 대선에서 심상정이 유세를 다닐 때 신촌 유플렉스 사거리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그곳을 다시 찾아 캠페인을 한 걸로 기억한다. 캠페인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서 발언을 듣고 갔다. (난 이 자리에서 귀국하고는 처음으로 노회찬 의원을 다시 만났는데, 왜 귀국했는데 연락을 안했냐고 혼났다...)
어쨌든 캠페인은 거리에 나가 직접 시민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선거가 아닌 시기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에너지 나는 일이기도 하다.
(왼쪽) 신촌에서 열린 입당 캠페인, (가운데) 전국적으로 진행한 선거법 개정 캠페인, (오른쪽) 정의당 관악구 지역위원회에서 진행한 [어린이 안전 조례] 제정 서명 운동
그리고 정당의 기둥이 되는 조직 사업이 있다. 일단 정당도 학교 동아리, 계 모임과 같이 모임이기 때문에 '모임' 그 자체가 핵심이다. 모임이 조직되어서 사람들의 관계가 탄탄해지고, 당원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도 얼떨결에 조직 사업을 하나 한 적이 있다. '정의당 서울대 모임'을 만든 일이다. 사실 난 선거 말고 평상시 하는 기본적인 정당 활동은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에서 먼저 했다. 뉴욕주립대에서 미국 민주당 동아리(College Democrats)에 가입해 활동했고, 케임브릿지대에 교환학생을 가서는 학교에 노동당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래서 난 서울대학교에 왔을 때, 당연히 서울대에도 정당 동아리가 있을 줄 알고 찾았는데, 엥? 이게 뭐람? 그 어떤 정당 모임도 없었다. 그래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서울대 정의당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이 모임을 보고 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2017년 당시 기준) 학생 모임도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의당 동아리를 조직했다(이후 민주당은 실제로 동아리가 만들어졌지만, 다른 당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의당 서울대 모임은 현재 다른 정당의 논평에도 등장할 정도로 성장했다.
정의당 서울대 모임은 조직 시작부터 중앙일보까지 타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ㅎㅎㅎ (열심히 재능기부 해주신 디자이너 분께 죄송할 따름...)
이런 크고 작은 모임들을 조직하는 이유는 정당이 더욱 단단히 자리 잡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이런 걸 풀뿌리에 비유해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평범한 당원들의 삶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고서라도 정당 안에는 영화보기 모임, 합창단 같이 함께 취미생활을 하는 모임도 많다.
그 외에도 행사는 수없이 많다. 청년정치학교, 정치아카데미 등을 열어 강연을 하기도 하고, 엠티도 가고, 별 이유없이 건물 옥상에서 같이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활동이 정치적이라는 것 뿐이지, 다른 모임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민주당에서는 이런 것도 했다. 역시 여느 기업이나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정당도 잘 나가는 곳은 다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안 해도 된다.' 전혀 상관없다. 그 누구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키지는 않는다. 아까 말했다시피 당원 중에도 4번 그룹,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는 꺼리지만 그 정당에 힘을 보태기 위해 당원 가입을 하는 분들도 많다. 정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요런 정도의 활동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당 가입을 하라고 할 때 "야, 난 그런 거 안 해"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뭔지 난 정확하게 안다. '단결,' '투쟁,' 머리에 띠 두르고, 팔뚝질 하며, 민중가요, 노동가요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물론 정당의 이념과 상황에 따라 이런 활동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하는 것이지만, 매일 '투쟁'하는 것이 정당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정당의 본질은 비슷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 '모임'이라는 것에 있다. 진보 쪽 정당의 경우 아직까지 옛날 운동권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 빨리 21세기에 맞는, 세련된 정당 문화 만들어야 한다. 어쨌거나 정당은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정당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 사는 공간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