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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Sep 14. 2019

바다는 강물을 물리치지 않는다

'국민경선제' vs. '진성당원제'


이대를 나오지 않으면 민주당에서 여성으로 정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설이다. 그 정점에 한명숙이 있었고, 현직 정치인 중 그 라인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유은혜(현 교육부 장관, 재선 국회의원)다. 이건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할 뿐, 수많은 '라인'들이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정치가 한 사람이라도 더 배제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건 비단 정치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반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완전국민경선제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선 그 당의 후보를 정하는 방식이 꾸준히 발전해왔다. 처음엔 김영삼, 김대중 등 그 당의 '총재(당대표)'가 '야, 넌 여기 나가,' '쟨 저기 내보네' 하며 당의 권력을 쥔 사람이 자기 입맛대로 결정했다. 그래서 옛날엔 '저 여기서 출마하고 싶습니다'하며 당의 권력자에게 뒷돈을 주는 비리도 많았고, 당의 총재가 직접 후보를 영입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YS맨(노무현, 이명박, 손학규, 이회창 등)이니, DJ맨(이해찬, 정세균, 박지원, 정동영, 추미애 등)이니 등의 말이 있었다. 이런 영입은 아직까지도 좋은 말로 '전략 공천'이라 부르며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좀 더 민주적으로 바뀐 것이 '당원경선제'다. 당의 일반 회원인 당원들이 투표해서 그 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다. 당권을 잡은 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후보를 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민주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당원으로 가입한 사람의 수가 얼마 안 되다 보니, 당원들의 투표는 쉽게 조작의 대상이 되었다. 가령, 후보가 돈이 있으면 몇 백 명 정도 모집을 해서 당비를 대신 내주고, 경선에서 자신을 뽑아달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본인도 가입한 줄 모르게 유령 당원으로 가입시켜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가입한 지 몇 개월 이상된 당원들에게만 경선 투표권을 주는 등 나름의 대책을 적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한계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완전국민경선제'다. 후보를 정할 때 당원, 비당원 따지지 않고, 투표하고 싶은 대한민국 국민(물론 만 19세 이상만)이라면 누구든지 와서 경선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완전국민경선제는 2017년 대선 때 민주당 경선에서 처음 도입되었는데, 심지어 정의당 당원인 나도 선거인단 신청을 해서 투표를 했다.


완전국민경선제를 하는 데엔 여러 목적이 있다. 일단 이렇게 하면 계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몰려와서 투표를 하기 때문에 특정 계파에서 표심을 조작하고, 왜곡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그냥 여론따라 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도 당시 김무성 대표가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자고 하였으나, '친박'들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또다른 반대 이유로 '반대 진영 지지자들이 일부로 약한 후보에 투표(역선택)하고 가면 어떡하냐'는 말도 있다. 실제로 2017년 대선 민주당 경선 때, "박사모가 와서 투표하면 어쩔 거냐"하며 완전국민경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일반 국민들이 몰려와서 표본 수가 커지면 내부 계파든, 다른 정당 지지자든 왜곡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리고 2017년 민주당 경선은 그걸 증명해냈다.



완전국민경선제의 반대 이유, 일명 진성당원제


그런데 완전국민경선제에 반대하는 또 다른 논리가 있다. 바로 진성당원제다. "아니, 일반 국민들 아무나 와서 투표할 수 있게 해 줄 거면 매달 3천 원, 5천 원, 만원씩 당비 납부한 나는 뭐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흔히 민주당 지지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로 알려진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글


최근에는 심상정 대표가 경선을 당원이 아닌 일반 지지자들에게도 개방하겠다고 하여 현재 정의당 내에서도 똑같은 논란이 불붙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당원이 아닌 지지자들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길이다. 왜냐고?


내가 뉴욕주립대에서 정치전략 수업을 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Hardball(크리스 매튜스 저, 아쉽게도 한글 번역본이 없다)'이란 책이다. 굉장히 얇은 책인데, 4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의 보좌관, 카터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팁 오닐 미국 하원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저자가 정치 전략과 심리학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매튜스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주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이 당신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지지자를 얻기 위해선 그 사람들이 당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쉽고 간단한 것이 '내 손으로 뽑은 후보를 선거에 내보내 당선시키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탄생하였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45%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38%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리얼미터 기준). 얼마 전, 조국을 둘러싸고 반대 진영에서 총공세를 펼쳤는데도 불구하고, 문재인 국정수행 지지율은 47.2%,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39.5%다(2019년 9월 12일 리얼미터 기준). 이전 대통령들이 20%는 물론 10% 지지율까지 예사로 보여줬던 것과는 극명한 차이가 난다. 나는 이 지지층의 중심에 지난 2017년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214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국민경선제는 기존 당원들을 바보로 만드는 제도가 아니라, 더 많은 당원을 만드는 제도로 봐야한다.




확신컨데 '일반 국민 참여 vs. 당원만 참여'의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양측 다 일리가 있으니까. 그게 90년대부터 나온 논쟁이 아직도 (민주당을 제외하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다. 심지어 내가 정의당 서울대 동아리를 만들 때도 똑같은 논쟁이 있었다. 정의당 서울대 동아리에 당원 가입을 하지 않은 지지자를 받을 것이냐는 문제였다. 다행히 창립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일반 지지자들도 놀러 올 수 있어야 궁극적으로 그 사람들이 당원이 되는 것이다. 굳이 참여의 벽을 높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정의당을 포함한 여러 정당에서 이 논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분명한 건 정치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 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얻을 수 있다.

지지자들에게 참여의 벽을 높여서는 안 된다.

바다는 강을 가리지 않는다.



#2장함께하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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