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려면, 때로는 프로그래밍된 자신을 뛰어넘어야 해. To survive, we must become something more than we were programmed to be.
- 영화 <와일드 로봇>중에서
영화 <와일드 로봇>을 보다가 나는 '프로그래밍된 자신을 뛰어넘은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도 있었다!
십여 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협력 업체 미팅이 있던 오전이었다. 회의는 시작되었고 내 통역 스위치도 자동 ON 모드였다. 그런데 한참 통역을 하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벽 쪽에 앉아있던 나에게는 눈앞이 창이었는데 갑자기 눈이 내렸다. 첫눈이었다. 귀로 들으면서 입으로 동시통역하고 있었지만 창밖의 눈을 보며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그 순간에 나는 내가 두 사람으로 분리된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통역대학원을 나오지 않았다. 통역이라고는 학부 4학년 때 순차통역 맛보기 수업을 들은 게 전부였다. 어학연수도 1년 아니 정확하게는 11개월 다녀왔다. 학부도 러시아어과였지 이과 전공도 아니다. 그런 내가 매일 어려운 기술 통역을 해내야 하는 것은 영화 <와일드 로봇>에서 날개가 작고 연약하게 태어난 기러기 브라이트 빌이 하늘을 날아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조건과 비슷한 거였다.
출처: 영화 <와일드 로봇>
영화 속 브라이트 빌의 고된 훈련과 연습 과정이 나에게도 있었고 난 그걸 버텨냈다.6년 가까이 매일 적게는 2~3시간에서 많게는 5~6시간씩통역했던 시간은 나에게 '초능력'을 주었다. 내가 누르면 나오는 통역 기계냐고 푸념했었는데 울며 겨자 먹기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난 후의 나는 정말로 누르면 나오는 통역 기계가 되어있었다. 꾸준한 반복연습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자신의 한계를 한 번 뛰어넘었던 경험은 삶의 자세를 바꿔놓았다. 무조건 못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먼저 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무언가를 잘할 수 없다면 아직 그걸 해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아직 그걸 할 실력이 안 되는 것이다. 그걸 알고 나면 실력과 내공과 깊이를 위한 하루를 살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은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알기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차곡차곡중이다. 묵묵히 이 시간을 보내면 또 하나의 허들을 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