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수, 나이수, 나이수 샷”
서른 개가 넘는 손을 하나로 모으고 서로를 바라본다. 다치지 말고, 져도 즐겁게 하자는 말을 끝으로 주장 언니가 나이수를 두 번 선창하면, 나머지는 일제히 포갰던 손을 올리며 나이수 샷을 외친다. 운동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우리의 목소리. 그때부터 심장 소리는 가슴을 넘어 귓가에까지 울리기 시작한다.
나이수는 내가 속한 여성 풋살팀 이름이다. 재작년 말에 들어왔으니 이제 입단한 지 일 년 반 정도 되었다. 처음 이 팀을 알게 된 건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서였다. 스토리를 넘기다 보면 도중에 종종 나오는 광고 중 하나.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여성 풋살팀을 모집한다는 그 단순한 문구를 보는 순간 홀린 듯이 신청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풋살은 내겐 마음속 짐처럼 남아 있는 존재였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놀이를 좋아했다. 심심할 때마다 아빠와 공을 차며 놀았고, 자연스레 공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게 됐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 여자 축구부가 처음으로 생겨서 창단 멤버로 뛰기도 했었다. 늦잠이 많은 내가 매일 아침 6시에 스스로 일어나 훈련하러 갔다. 비가 펑펑 쏟아져서 앞이 잘 안 보이고, 운동장 바닥이 온통 진흙탕이 되어 자꾸 미끄러져도 뛰었다. 경기 후에 발이 퉁퉁 불어 축구화를 벗을 수가 없어서, 집까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공을 차던 그 순간순간들이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축구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학교에 가서도 꾸준히 공을 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언제나 그리웠던 축구. 그런데, 그걸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당연히 신청할 수밖에. 축구와 풋살은 다른 점이 많지만, 공을 다시 찰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나이수에 입단하기로 한 이 결정은, 근 몇 년간 한 결정 중 가장 잘한 것이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풋살을 한다. 부지런히 퇴근해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종아리를 다 감싸는 스포츠 양말을 신고, 풋살화와 정강이 보호대가 든 가방을 들고 차에 탄다. 30분 정도 운전을 하면 한 주차타워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 옥상에 바로 우리의 풋살장이 있다. 옥상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미리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는 우리 멤버들이 웃는 얼굴로 날 반겨준다.
준비 운동을 시작으로 스텝 훈련, 패스 훈련, 슛 훈련이 이어지고 짧은 휴식 시간을 갖는다. 남은 시간은 게임. 5:5 혹은 6:6으로 나누어 약 50분 정도 게임을 한다. 골키퍼는 돌아가면서 맡는데, 그 시간에만 유일하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서로를 향해 공을 패스하고, 슛을 때리고, 수비수를 제치거나 아니면 공격수의 공을 뺏는 그 모든 과정이 50분 동안 치열하게 벌어진다.
누군가 내게 풋살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멤버들 사이의 합이라고 대답하겠다. 서로 이름을 부르거나, 심지어 눈빛을 읽고 패스를 줄 때. 서로의 움직임을 읽고 약속된 플레이를 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짜릿함을 느끼며 풋살에 조금씩 중독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건 바로 우리 멤버들이다.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풋살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인 우리들. 이 든든한 언니들과 귀여운 동생들을 만나게 되어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나는 허벅지 근육 파열로 반깁스를 하고 있다. 풋살을 하다 무리해서 다쳤고, 이제 깁스를 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제일 먼저 여쭤봤던 건 언제 풋살을 다시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 질문에 석 달 후라고 대답하셔서 나를 절망시키셨지만. 좋아하는 걸 오래 하려면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요새 너무 신나서 무리했더니 금방 다치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풋살을, 내가 좋아하는 나이수 멤버들과, 오래오래 하고 싶다. 빨리 나아서 얼른 공 차러 가야겠다. 다들 행풋한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