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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삭 Dec 26. 2022

첫 창작 수업 수강기

글로 먹고 살기

* 글 업데이트가 너무 늦었네요. 근래에 여러 일이 생기기도 했고, SF 단편집 번역 마감이 있어서 조금 정신이 없었습니다... 장편 마감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ㅠ 오늘은 글이 조금 짧아요!    


 

예전에 대학원을 다닐 때 옆 학과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방과 수업으로 수업 이름이 “드라마 콘텐츠 개발”이었는데요. 전공 수업에 지쳐(?) 재미를 찾아보려고 들었던 수업이었지요. 해당 수업을 강의했던 선생님은 필드(뮤지컬)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였답니다.

      

확실히 제 전공 수업과는 커리큘럼부터 다르더라고요. 일단 교재부터 작법서가 주를 이뤘거든요. 


TMI지만 제 전공은 중국 희곡이랍니다. 그래서 매번 오해를 사곤 하지요. 중국 희곡하면, 한국인은 연극 대본을 떠올리고, 중국인은 전통극 상연자를 떠올리곤 하거든요.. 제 전공과 유관한 건 맞는데 제가 공부하는 분야와는 조금 다르답니다. 그럼 뭘 공부했냐고요? 경극 같은 지방희, 민간 제의극, 피영희의 역사나 주요 작품, 혹은 희곡과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고전 시(詩)나 사(辭), 고전 소설을 배웠답니다. 

(근데 사실 저는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덕질만 했지요...)     


그런데 주변 (대학원) 사람들이 제게 다 그러더라고요. 많이 보고, 많이 읽으면 되는 것을 수업까지 들으면서 “배울” 필요가 있냐고요. ‘창작’의 핵심이 감각에 있다고 여겼기에 했던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론으로 배운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창작이냐,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요.. 


어쨌든 당시의 저는 ‘창작은 배울 수 있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창작자를 꿈꾸지 않았으니까요.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들으러 간 거였고, 기대에 부합하는 수업이라 매우 만족스러웠달까요. 커리큘럼의 한 축이 작법서였다면, 또 다른 한 축은 고전 콘텐츠였거든요. 역사나 고전 콘텐츠를 재해석해 스토리를 개발하는 게 커리큘럼의 핵심이었지요. 제 취향에 딱 맞는 수업이었습니다. 

(작가가 된 지금도 주로 이런 소설을 쓰고 있지요...)     


하지만 이 수업을 수강하면서 배웠던 것 중에는, 어쩌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독자/시청자’를 생각하는 법이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아침 드라마의 대사 특징이 뭔 줄 아냐고. 그건 영상으로 이미 보여준 정보를 대사로 다시 전해준다는 거였습니다. (ex: 김태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혜수가 “태리 너,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쩌니!”라고 말하는 것) 


수강생들에게 그 이유도 물어보셨는데 다들 답을 못했지요. 창작자가 아니었던 저는 아예 가늠도 하지 못했답니다. (참, 저를 제외한 다른 수강생들은 모두 창작자였습니다. 드라마와 웹툰 등 상업작을 발표한 기성 작가도 있었고, 데뷔를 위해 공모전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아침 드라마의 주된 시청자가 가사 노동을 하는 기혼 여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티비 앞에 앉아서 드라마를 ‘보는’ 이도 있겠지만, 설거지나 빨래를 하면서 드라마를 ‘듣는’ 이도 있으니까요.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고, 가끔은 바빠서 몇몇 회차를 챙겨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때 선생님은 상업작을 노린다면, 타겟층에 맞춰서 창작해야 한다고, 어떤 이가 어떤 상황에서 자기 작품을 어떻게 보는가, 를 항상 염두에 두라고 신신당부하셨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학우가 사우나를 배경으로 아줌마들의 일상을 그린 뮤지컬 시놉시스를 가져왔는데요. 선생님이 이건 공모전에 당선될 수 없다고 다시 쓰라며 격렬히 반대하시더라고요. 뮤지컬 주 소비층인 젊은 여성이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이야기이고, 일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면 모를까 이런 현실 반영적인 이야기는 당사자인 아줌마들도 몇만 원을 주고 극장까지 와서 보지는 않는다고요. (참고로 이 수업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이었습니다)      


차라리 배경을 조선으로 바꿔서 사극으로 만들라고, 사우나복 대신 살이 언뜻 비치는 얇은 소복을 입혀서 에로틱한 분위기를 내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될 거라고도 하셨답니다.      


저도 뮤지컬/연극 덕질을 좀 오래 했거든요. 스탭으로도 몇 년 일했고요. 처음 버전(?)은 사실 저도 심드렁했는데 조선시대 욕탕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여성 서사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회전문 관람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와! 신선해! 재미있어! 역시 우리랑 달라(?)’라고 생각하면서 웃고 넘겼거든요.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으로만 여겼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아까운지요. 어떤 타겟에 어떻게 맞출지를 함께 고민하고, 제 차기작 씨앗들에 관한 코멘트를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 그때 교재였던 작법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알라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 (aladin.co.kr)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스토리 개발 부서의 메모』


(당시에는 번역본이 출간되지 않아서 원서로 매주 2-3 챕터씩 읽었는데요. 2017년에 번역 출간이 되었더라고요. 다만 지금은 절판이 되었......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봅시다.)    


알라딘: 스토리 개발 부서의 메모 (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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