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삭 Oct 22. 2022

소설가도 이럴 때는 타협이 필요해요

글로 먹고살기

요즘에는 IP 개발 프로덕션을 표방하는 출판사도 많답니다. 쉽게 말해 ‘영상화’에 적합한 ‘소설’만 출간하는 출판사지요. ('영상화'에 적합한 '장르 소설'이 더 정확한 표현일듯요) 소설의 웹툰화, 영화화, 드라마화 등 OSMU에 초점을 맞춰 수입 구조의 다각화를 꿈꾸는 출판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즈넉이엔티, 안전가옥, 교보문고 스토리 등이 대표적인 IP 개발 프로덕션이지요.               


저는 이 중 두 곳과 협업하고 있는데요. 담당 편집자님이 없답니다. 대신 담당 PD님이 있지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상화를 염두에 둔다는 점과 창작 단계에서부터 작가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일반 출판사와는 다른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상화’에 적합한 ‘소설’은 대체 뭘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른답니다. 제가 그걸 명확히 알고 있었다면 아직도 전전긍긍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판권을 열 작품 정도 팔았다면, 저도 나름의 노하우를 갖췄을 터인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다만 이제껏 고민해왔던 지점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앞서 먼저 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원래 소설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야기하려는 욕망이 강한 이들입니다. 그러니 수 만자, 수십 만자의 활자로 이루어진 서사를 독특한 결을 지닌 문체로 조직하는 거겠지요. 그 욕망이 강한 만큼 자기 작품에 관한 두드러진 애착을 지니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고집스럽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이런 소설가의 특징(?) ‘영상화 적합한 ‘소설 쓰는 데에 단점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단순화해서 따져볼까요. 소설 한 권이 만들어지고 출간되기까지 자신의 노동을 보태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많아 봐야 수십 명이겠지요? 하지만 영상 제작은 다릅니다. 수백, 수천 명이 되지요.                


그렇게 애써 만들어 세상에 내보인 작품이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을 때, 소설은 작가와 출판사의 손해(?)로만 끝납니다. (물론 손익분기점이라는 개념으로 그 작품의 가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출판계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출간한 소설 하나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작가나 출판사가 도산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영상 쪽은 다릅니다. 제작비가 최소 수억에서 최대 수백억까지 가니까요. 투자사와 제작사를 비롯해 더 많은 사람의 밥그릇이 달린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에 ‘영상화’에 적합한 ‘소설’을 쓰는 작가도 여러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걸 시청자가 좋아할까? 라는 상업적인 고민은 제일 중요하면서도 당연하겠지요. 제작사와 투자사의 마음을 사로잡을 매력 포인트도 고심해야 하고, 이미 방영/상영된 영상물과 차별성이 존재하는지, 영상 문법에 어긋나는 작품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소설’이기에 소설적 재미와 다른 소설과의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해서 굳이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모 IP 개발 프로덕션과 협업했던 작가님이 그곳과 협업하는 작가는 정말 독한 작가(?!)라고 평을 하셨답니다. 그분은 소설만 쓰는 분이셨어요. 그때는 왜 그렇게 이야기하셨는지 이해를 못 했거든요. 저도 협업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일단은 수정 요구가 어마어마합니다. 기획 단계에서는 물론이요, 본문을 쓸 때도 주기적으로 수정을 요구받습니다. 그 말인즉슨, 완고로 원고를 보내주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송고한다는 뜻이지요. (저처럼 사극을 쓰는 작가라면 가독성 문제로 문체 수정도 요구받을 수 있어요) 이 험난한 단계를 마친 뒤 완고를 보내더라도 내가 보낸 완고대로 출간되지는 않더라고요. (눈물)      


소설로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랍니다. ‘영상화’에 적합해야 해서 그래요.     


저랑 같은 시기에 작업했던 다른 작가님은 쓰던 작품이 반복적으로 백지화(?)되는 경험을 몇 달이나 하셨거든요. 저였다면 선인세를 토해내고 계약 해지를 했을 것 같은데…. 원래 시나리오를 쓰던 분이라 그런지 멀쩡(?)하시더라고요.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시던 분들은 이렇게 자유로운 협업은 처음이라며 IP 개발 프로덕션과의 협업을 즐기신다고 합니다)     


소설가는 소설을 혼자 쓰기에 사실 창작 협업에 능숙하지 않거든요. 어떤 분들은 에이전시나 출판사의 피드백마저 원치 않기도 합니다. (수정을 요구받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항의할 가능성이…)           


저는 어땠냐고요? 저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시나리오 작가님들처럼 열린 마음을 가지는 않았답니다. 대신 저는 제 주제(?)를 잘 안답니다. 평생을 마이너 덕후로 살아왔기에 제 감각이 마이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제 취향대로만 썼다가는 영상화는커녕 소설 출간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요. (갑자기 또 눈물이 나네요)     


그래서 저는 제가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몇 개만 고집할 뿐 편집자/PD의 코멘트를 적극적으로 반영합니다. (혹시라도 코멘트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싫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근거를 가지고 담당 PD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럼 뭘 포기하지 못하냐고요? 여성 서사 X 사극 X 장르물이요. (여기서 ‘장르물’은 추리·미스터리·스릴러·호러·판타지 등을 말합니다) 주제 의식과 소재 및 배경 그리고 전달법에 관한 부분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최대한의 타협을 한 것이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건 제가 시나리오를 배우러 다니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상화 계약을 하면 해외 출간이 덤으로 온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