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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삭 Apr 15. 2023

출간 연재-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 4

#30 배우자의 담당형사

Black Lives Matter’ 운동 때 한국 인터넷에서 한 영상이  유행했다. 흑인 남성이 스타벅스 라떼 컵을 자신의 흑인 친구들에게 넘겨주면서 이걸 들고 있으면 무해해 보일 수 있다고, 그럼 경찰도 흑인을 내버려둘 거라고 말하는 영상이었다. 남에게 자신의 무해함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웃기면서도 전혀 웃기지 않았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북한 이주민을 떠올렸다.  

한국에 사는 북한 이주민은 자신의 담당형사(신변보호관)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현황을 알려야 한다. 담당형사는 북한 이주민을 살피는 감시자이자 정착을 돕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가령 이들은 북한 이주민에게 여러 사항을 교육하곤 했다. 한국의 법, 제도, 관습뿐 아니라 북한 이주민에게만 적용되는 규율까지. 특히 규율은 명문화된 것도 있고, 암묵적인 것도 있다. 항공업계에는 취업이 불가하다든지, 중국 여행을 가지 말라든지, 경찰이 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틀림없이 면접에서 떨어질 거라든지…. (요즘 북한 이주민 취업 설명회가 경찰서에서 열리는데, 북한 이주민은 경찰이 될 수 없다니, 블랙코미디인가?) 


예전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담당형사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들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자기를 감시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담당형사라면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민에게도 담당형사가 있다. 민이 육아를 전담하던 시절,  일이 있다면서 혼자 외출하면 다섯 번 중 세 번은 담당형사를 만나고 오는 거였다. 그런데 지방에서 일을 시작한  뒤로 민은 2년 정도 담당형사를 만나지 못했다. 민이 충청도 거주지로 전입신고를 했다면 해당 지역 형사가 새로 배정되었겠지만, 주말 부부였기에 민은 따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담당형사가 민을 만나기 위해 충청도까지 내려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다행히 요주의 인물이 아니었는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 다. 가족과 다 함께 한국에 왔다는 점, 괜찮은 대학을 졸업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남한 여성과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점 등등, 이런게 영향을 미쳤던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민이 전화했다. 담당형사가 배우자인 나를 만나러 집으로 찾아올 거라고 말이다. 


“아니, 나를 왜 만나러 와?” 

나한테 뭘 전해주러 온다나. 나는 그 말에 질색했지만, 나나 민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민을 만날 수 없으니 나라도 만나러 오는 거겠지. 몇 시간 뒤 민의 담당 형사가 정말로 나를 찾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나는 (전혀 초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에서 차라도 드시겠냐고 물었다. 담당 형사는 손사래를 치더니 수박 한 덩이를 건네주었다. 짧은 감사 인사가 끝나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솔직히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민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 같습니까? 무슨 문제 가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민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던가요? 간첩으로 의심되지는 않습니까?”  


내게 이런 질문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나만큼 어색해하는 형사를 보면서 직장인의 고단함을 느꼈다. 상부에 문서 보고를 해야 하니 나라도 만나러 오셨구나.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수박까지 받았는데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집에 있는 건 책뿐이라, 그래서 내가 쓴 소설을 드렸다. (마침 첫 장편이 출간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였다.) 담당형사는 내가 쓴 책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더니 서명해 달라고 했다. 


“작가님이셨구나. 사인한 책이 나중에 비싸게 팔리고 그런다면서요. 사람들한테 자랑해야겠어요.” 

“그 정도로 유명해지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담당형사를 다시 만났다. 그날은 나와 민이 충청도로 이사하는 날이었다. 새로 사는 집에서 도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면서 한국의 집들이용 대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장지를 주었다. 그러고는 내가  쓴 소설을 읽어봤다고, 주인공 직업이 조선시대 다모 같은 거냐고 물어봤다.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물이라서 그랬을까? 직업적 동질감(?)을 느낀 것 같았다.


나와 딸아이까지 충청도로 이사 오면서 가족의 주소지가 바뀌었다. 관할 경찰서가 바뀌었기에 민의 담당형사도 바뀌었다. 그때 드렸던 책은 몇 달 뒤 공중파 방송국과 드라마 계약을 맺었다. 나중에 드라마가 방영되면, 드라마를 본 형사가 나와 민을 떠올려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해 주면 더더욱 좋고. 저 작품의 원작자를 안다고, 내가 담당하던 북한 이주민의 가족이었다고 말이다. 


누구의 가족으로 기억되는 걸 싫어하는 나지만, 이것(?)만큼은 괜찮을 것 같다. 아예 북한 이주민으로 기억되어도 상관없다. 어쨌든 나 또한 북한 이주민과 잇닿은 경계인 아닌가.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 좋겠다. 그럼 더 많은 이들이 북한 이주민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도 그래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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