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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삭 Nov 10. 2023

사천위시_<대단한 공유>

중국 SF 여성 작가 청징보편

* 이 글은 중국 SF 여성 작가 중 최초로 성운상과 은하상을 동시에 수상한 청징보 작가가 제공한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청징보 작가가 2023년 10월에 출연한 사천위시 프로그램 <대단한 공유>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청징보 작가님의 각종 수상 메달과 수상패 그리고 수상 통지서...!



여성은 SF를 모른다고 누가 그랬죠?     


대단한 시대, 대단한 공유.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SF를 쓰는 청징보입니다. 공유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네 개의 숫자를 기억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1818, 1917, 1969 그리고 2022입니다.          


1818     


첫 번째 생각. 세계 첫 SF 소설인 《프랑켄슈타인》과 저자인 여성 작가 메리 셸리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첫 번째 이야기는 1818과 관련이 있습니다.

1818년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지요. 이 책은 세계 첫 SF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메리 셸리이고요. 메리 셸리는 SF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고, 《프랑켄슈타인》의 내용도 모두가 알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할 때마다 종종 “괴물”을 떠올리곤 하는데요. 사실 메리 셸 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은 정도를 벗어난 과학자의 이름입니다. 그는 수시로 시체안치소에 출몰했고, 각기 다른 시신의 부위를 하나로 엮어내 거대한 유인원 괴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전기의 힘에 사로잡힌 나머지 조립한 시신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외양을 지닌 괴물이 마침내 생명을 얻어 눈을 떴을 때,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괴물을 내버려 두고는 도망을 갔습니다.


메리 셸리는 이 이야기를 열아홉 살에 썼습니다.

열아홉 살의 소녀가 어떻게 세계 첫 SF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1815년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화산 폭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다음 해인 1816년 북반구의 여름에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저온 현상이 있었습니다. 어떤 연인이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을 만나려고 그가 지내던 스위스 별장으로 찾아갔다가 사백 년에 한 번 일어날 법한 이상 기후를 맞이하게 되었지요. 이 연인은 바이런만큼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인 퍼시 셸리와 그의 약혼녀인 메리였습니다. 비가 많이 내렸기에 이들은 별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이런은 시간도 때울 겸 대회를 하나 열자고 했습니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써낸 사람이 이기는 대회였지요.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바이런과 퍼시 셸리는 중도에 포기했고, 메리는 《프랑켄슈타인》을 구상해 냈지요. 그리고 1817년 여름에 원고를 끝냈으며 그다음 해에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세계 첫 SF 소설로 알려져 있고 오늘날까지 백여 종의 문자로 번역되었으며 위풍당당한 SF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서정 시인 두 명도 이루어 내지 못한 성과를 열아홉 살의 소녀가 어떻게 이루어 냈냐고요.


화산이 폭발했던 해에 메리는 처음으로 생육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첫딸이 요절을 하였거든요. 그 뒤로 그녀는 몇 번이나 임신하였고, 아기를 낳았으며, 낳은 아이를 잃었습니다. 메리 셸리는 평생 다섯 번 임신하였고, 한 번 유산하였으며, 네 번 출산했고, 아기 셋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건 아들 한 명뿐이지요. “생육”에 대한 마리의 두려움은 “사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메리는 요절한 딸을 꿈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꿈속에서 메리는 자기 딸이 되살아나기를 바랐었죠.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해 여름, 그녀는 이 악몽을 말로 들려줬습니다. 스위스에 있는 커다란 저택에서 말이지요.


얼굴이 창백한 학자는 자기가 만들어 낸 괴물 옆에 꿇어앉아 있었다. 확실히 그가 해온 일은 신성모독이었다. 나는 무서운 유령이 그곳에 누워있는 걸 보았다. 성능이 뛰어난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그 유령은 몸을 떨며 생명의 흔적을 드러냈다.


사망의 기운이 가득한 두 장면은, 아기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던 메리 셸리와 신성을 모독하며 생명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이 하나로 포개집니다. 사망에서 생명을 창조해 내고자 했던 이야기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딸이 요절한 뒤에 알프스 산 자락에서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1815년 인도네시아 섬바와섬의 담보라 화산이 폭발하지 않았더라면, 《데카메론》과 같은 일은, 문학사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 대회는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아주 작은 변화로 SF의 역사가 다시 쓰여졌을 지도요.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첫 SF 소설도 전혀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요.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있습니다.          



1917     


두 번째 생각. 중국 여성 작가가 쓴 첫 번째 SF 소설.     


1818의 이야기에서 백 년 정도 시간을 뒤로 가볼까요. 지금 저는 여러분과 1917년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중국 SF 분야에 산펑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산펑은 AI와 같은 존재랍니다. AI처럼 모르는 게 없거든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중국의 첫 번째 SF 여성 작가는 누구인가요? 아니면 여성 작가에 의해서 쓰인 첫 SF 소설로는 뭐가 있죠?”


이 문제의 답을 놀랍게도 삼펑이 정말로 찾아냈습니다.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인 첫 번째 중국 SF 소설은 《여성 박사》입니다. 1917년 《부녀 잡지》에 게재되었으며 저자 이름은 “주민시엔 여사”입니다.


《여성 박사》는 무엇을 이야기한 작품일까요?


절강성 가흥 남쪽 호수에는 어촌 마을이 있었고, 그곳에는 왕 씨 성을 가진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집 딸 이름은 주바오였지요. 주바오에게는 가비(家婢)가 있었는데, 견문이 좁은 데다가 “얼굴이 검고 뚱뚱”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친년”이라고 불리곤 하였지요. 주바오 아가씨는 열여섯 살에 부친에 의해 상해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과학 수업을 들었지요. 여름 방학이 되면서 집으로 돌아온 아가씨는 가족들에게 “화학”을 소개했고, 그 일로 “미친년”은 두 개의 흥미로운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나는 주바오 아가씨가 물을 “연수와 경수”로 나누면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강물은 경수입니다. 그 결과 “미친년”은 강가에서 물을 빨 때 주바오 아가씨가 강물이 경수라고 했던 걸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경수를 밟아 연꽃을 따려고 했다가 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지요.


두 번째는 주바오 아가씨가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할 수 있다고, 수소로 풍선을 만들어 하늘에 날려 보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미친년”이 구멍을 낸 솥뚜껑 위에 천 포대를 덮어 수소를 모으고 있었던 거죠.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자 왕씨 가문의 안주인은 더는 그녀의 기이한 행동을 참아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죠.


이야기를 여기까지만 한다면, 과학에 무지한 사람의 우스운 행동을 웃음거리로 삼은, 화학적 지식을 소개하는 이야기로만 볼 수 있겠지요. 심지어 SF적인 요소가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마지막 문장에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미친년”이 집으로 돌아간 뒤 어떻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거든요. 게다가 “여성 박사”라는 표제도 달고서요.


주민시엔 여사는 결말을 어떻게 썼을까요?


그녀는 이 미친 여성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 여전히 그런 미친 짓에 빠져 있었다고, 그러다가 새로운 원소인 “루테늄”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새로운 원소은 “라듐과 비슷하지만, 그 빛이 열 배는 더 강하죠.”


그러면 이 새로운 원소를 가지고 무엇을 했을까요?


그녀는 그걸 가지고 아름다움을 치료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소설에서는 정말로 이렇게 썼어요. 이 원소를 몸에 쬐면, 순식간에 피부가 고와지고 체형이 균형을 이뤘으며 색이 하얗게 되고, 혈기가 되살아났거든요. 그래서 이 미친 여성은 “세계적 화학 대가들”의 인정을 받으며 여성 박사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비웃던 이상한 행동이 과학적인 발견을 이끌었고, 중국 화학자이자 여성 박사를 만들어 낸 겁니다.


마지막 문단은 《여성 박사》를 SF의 자리에 확실히 앉혔고, 소설의 수준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여성 박사》를 중국 최초의 페미니즘 SF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1969     


세 번째 생각. 세계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SF 작품.     


1917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1969를 보도록 합시다.


이때 미국의 우주비행사 두 명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로 갔습니다. 그 해에 중국은 수소 폭탄 실험에 다시금 성공했고, 베이징에서는 중국의 첫 지하철이 개통되었지요.


이 해에는 아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인류는 과학 기술을 손에 움켜쥔 채 세계를 탐색하느라 바빴지요. 이때 어슐러 르 귄은 《어둠의 왼손》을 출간하였습니다.


어슐러 르 귄이라는 이름이 많은 이들에게 낯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SF와 판타지를 읽는 독자에게 있어서 그녀는 전설적인 인물이랍니다.


《어둠의 왼손》은 어슐러 르 귄에게 가장 중요한 SF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세기에 획을 긋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작품이지요. 그와 동시에 그 작품으로 세계 양대 SF어워드인 휴고상과 성운상을 수상했습니다.


“성별이 유동하는” 사회는 어떠할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그곳에서 모든 이들은 “그”라고 불립니다. 남성일 수도 있고 여성일 수도 있지요. “남성”과 “여성”은 더는 고정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렇기에 이런 사회에서는 더는 사람들이 약자와 강자, 보호자와 피보호자, 지배자와 순종자로 나뉘지 않게 됩니다.


《어둠의 왼손》은 바로 이런 세상으로 설정된 소설입니다. 이곳의 이름은 ‘게센’입니다. 아주 추운 별이지요. 게센에 사는 사람들중 상당수는 성별이 없습니다. 자기 성별을 아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요. 한 달에 며칠 동안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케머기’에 이들은 자유롭게 성별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어둠의 왼손》은 출간 직후 엄청난 파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평론계는 ‘게센’의 원주민이 성별을 정할 수 있는 설정이 어슐러 르 귄의 “성별 사고 실험”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실험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에 익숙했기에 성별이 이렇게 고정되지 않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어슐러 르 귄은 사십 년 동안 노자의 《도덕경》을 번역했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어쩌면 도덕경에서 많은 지혜를 얻었던 걸 지도요. 그리고 그중에는 “음양전화(陰陽轉化)”라는 사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2022     


네 번째 생각. 중국 여성 SF 작가들.     


1969에서 2022로. 이제 시선을 《도덕경》이 탄생한 지역으로 옮겨 봅시다.


노자가 《도덕경》을 쓴 지 이천 오백 년이 흐른 뒤, 중화 지역의 여성 SF 작가들이 대거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녀: 중국 여성 SF 작가의 대표 작품집》이 출간되었거든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경제는 30년 동안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과학 기술도 30년 동안 빠르게 발달하였지요. 과학 기술과 사회 생활은 점점 더 밀접하게 관련되었고, 과학 기술 자체가 생활 방식을 결정짓기도 하였습니다. 과학 기술과 생활의 상호 영향을 반영하는 SF 문학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요. 30년 동안, 중국에는 무수히 많은 여성 SF 작가가 탄생하였습니다.


중국 SF의 30년 발전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33명의 여성 SF 작가들은 SF로 인해 삶의 궤적이 바뀌었고, SF를 이끌어갔으며 SF를 번영시켰습니다. 《그녀: 중국 여성 SF 작가의 대표 작품집》에는 33명의 여성 SF 작가들의 대표작이 실려 있습니다. 작가들의 삶과 창작 이력을 소개했고, 그녀들의 풍부한 생각과 독특한 개성 그리고 SF를 향한 깊은 이해와 인식을 보여주었지요.                    


《그녀: 중국 여성 SF 작가의 대표 작품집》



결론     


여성은 SF를 모른다고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1818과 1917, 1969 그리고 2022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네요.

그러면 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세계를 향한 여성의 관찰과 느낌, 인식 그리고 구성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필요한 것처럼 꼭 필요합니다. 세상이 SF를 아는 여성을 만들어 내었듯 세상은 여성을 이해하는 SF를 만들어 낼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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