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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삭 Oct 20. 202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도 배를 곯는 걸 걱정한답니다

글로 먹고살기

중국 당대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모옌이 십몇 년 전쯤 제 모교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학과장 교수님의 강요(?)로 특강을 들으러 갔었지요. 특강이 끝나면 작품에 관해 중국어로 질문하라는 특무까지 받고서요. 꼬꼬마 학부생이었던 저는 마지못해 모옌의 작품과 그의 작품을 분석한 논문을 읽으면서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애써 준비했던 질문은 “별생각 없이 그냥 그렇게 썼다.”라는 모옌의 답변 덕분에 빠르게 끝이 났답니다. 김이 확 빠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도 저는 그날의 특강을 십몇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가끔은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모옌이 해줬던 다른 이야기 때문이지요.      


발치사로 일하던 모옌은 자신의 일터 바로 옆에 있는 문화국을 보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곳 사람들이 걸핏하면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수다를 떨었다네요. 모옌은 그 모습을 보고 ‘문화국에서 일하면 놀고먹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대요. 


뭘 해야 문화국에 갈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모옌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소설이 가장 만만해 보였다니.     


모옌은 글이 막힐 때마다 소설을 택했던 자신의 업보를 탓했겠지요?     


그래도 모옌은 끝까지 글을 썼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실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기대했던 바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놀고먹지는 못했으니까요.     

대신 모옌은 '글먹'에 성공했지요.


글을 써서 먹고살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작가가 되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답니다. 


그날 모옌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이번 특강을 위해 한국 방문 비자를 신청했지만, 비자 발급이 거부되었다고요. 왜냐고요? 모옌이 작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작가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니까요. 한국에 남아 불법 체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졌던 게지요.      


모옌은 자신의 능력과 명성을 증명하기 위해(?) 신문 기사까지 스크랩해 가져 갔고, 자신이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유명한 작가임을 어필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전이었습니다)    


결국 모옌은 제 모교에 도움을 부탁했고, 대학교 총장의 직인이 찍힌 초청서를 받고 나서야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소설가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과거의 저는 모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깔깔 웃었답니다. 아, 이때 저는 얼마나 무지했던가요. 지금은 웃음이 아닌 눈물만 나오네요.     


중국은 출판시장이 세계 2위입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지요. 한국에서 백만 부 이상 팔린 소설이 초대형 베스트셀러라고 불린다면, 중국에서는 천만 부 넘게 팔린 소설이 장르별로 있답니다.     


그런 중국에서도(?) 최근에는 인세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오더라고요. 2019년 베이징 도서전에 갔다가 청년 작가 대담을 들었거든요. 두 작가가 입을 모아 말하더라고요. 책이 너무 안 팔린다고. 도서전에서 작가 대담을 열 정도라면, 사실 두 작가는 성공한 편에 속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생계 걱정을 면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씁쓸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막 창작을 시작한 꼬꼬마 작가였거든요. 중국 출판시장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 한국 출판시장에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저절로 생기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날 두 작가의 대화에서 용기도 얻었답니다. 두 작가가 그랬거든요. 아무래도 이야기 본연의 ‘재미’에 중점을 둬야 할 것 같다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설의 본질은 재미일 것 같다고요. 특히 고전소설이 그렇지 않냐면서 차기작을 지괴소설(중국 육조 시대에 유행한 소설로 기이하고 기괴한 이야기가 많다)의 계보를 이은 중국식 호러 소설로 써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두 작가는 굳이 따지자면 장르 작가보다 문단 작가에 더 가까웠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작가로서의 자신을 바꾸는 것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대중성(이라고 쓰고 저는 상업성이라고 읽습니다)을 좇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지요. 사람들은, 심지어는 작가 자신조차 문학과 생계를 분리해서 보곤 하잖아요. 땅을 파먹으며 글을 쓸 수는 없는 법인데 말이지요.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라(?) 공무원 작가도 있고(국가급 작가라고 해서 진짜로 월급을 줍니다), 중국작가협회가 소속 작가에게 체계적인 케어도 해주거든요. 그런 중국에 사는 작가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변화를 도모하는데 각자도생이 기본값인(?)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제가 생계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전까지는 ‘글먹’을 속으로만 생각했지, 다른 작가나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두 작가의 공개적 발언을 들으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글먹’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른 작가들과 소리 내서 논의해볼 용기가요.



* 특강 때 모옌 작가가 이런 이야기도 해줬습니다. 자신이 절대 거절하지 않는 선물이 하나 있다고요. 바로 먹을 거였습니다. 어렸을 때 굶었던 기억이 있어서 배고픔을 두려워한다고 하더군요. 그는 특강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앞으로 자신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다면 꼭 쌀로 보내달라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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