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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삭 Oct 19. 2022

'글먹'의 어려움

글로 먹고살기

작가들의 가슴속에는 자신의 롤모델로 삼는 작가가 한 명쯤 있을 겁니다. 제게도 그런 작가가 있습니다. 명말 청초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어(李漁)이지요.


당시 희곡은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변려문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어는 평이하고도 직관적인 곡사(曲詞, 가사)와 빈백(賓白, 대사)을 선호했습니다. 서사 또한 파격적이었지요.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두 여성이 평생 헤어지지 않기 위해 한 남성의 처첩이 되는 퀴어 서사를 쓰기도 했으니까요.


그건 이어가 대중성과 통속성을, 즉 상업성을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기에 한족인 이어는 관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팔기군 소속이 아니니 아무리 노력해도 입신양명을 이룰 수 없었지요.


대신 그는 창작으로 생계를 잇기로 결심했고, 희곡을 쓰고 연출하면서 자신의 극단을 이끌었습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까지 먹여 살려야 했으니 이어는 상업성을 좇을 수밖에 없었지요.     


이어가 창작한 문학 작품 중에는 한국에 번역 출간된  없지만, 이어의 창작 이론서라고   있는 『한정우기』는 『리위의 희곡 이론』과 『쾌락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이 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희곡 이론 파트와   파트로 분할 출간되었더군요. 사극을 쓰신다면 생활백과사전이라고   있는 『쾌락의 정원』을 참고해 보셔도 좋을 겁니다)


비록 번역 출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인 중 상당수는 사실 그의 작품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황색 소설인 『육포단』입니다. 영화 《옥보단》의 원작이지요.     


제가 왜 이어를 롤모델로 삼았는지 아시겠지요? (웃음)      


오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다시 영화화되는 작품을 쓴 작가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더 재미있는 건 이어가 상업성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자신만의 색채를 지닌 예술가이기도 하거든요. 가장 보수적인(?) 학계에서도 인정할 정도로요.     


그래서 저는 장르문학 전문 플랫폼인 ‘브릿G’에 가입할 때 필명으로 ‘한정우기’를 택했습니다. 이어처럼 평이하면서도 재미있는 글을 써가기를, 언젠가는 창작으로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랐거든요.


성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습니다. 첫 단편은 ‘편집장의 시선’이라는 코너에 뽑혔고, 네 번째 단편은 공모전 수상작이 되었지요. 여섯 번째 단편과 일곱 번째 단편은 계약 제안을 받았고요. 창작을 시작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작가에서 작품을 계약한 작가가 되어보니 글로 생계를 꾸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더군요. (저처럼 평범한 장르 소설 작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단편 선인세가 30~50만 정도, 장편 선인세는 100~300만 정도인데, 선인세가 인세의 전부일 때가 많았습니다. 선인세라도 받으면 다행이지요(?). 원고 청탁을 받지 않았거나 계약작이 없으면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야 하니까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창작을 시작한 뒤로 생계를 번역으로 이었습니다. 문학 번역도 박봉으로 소문난 분야거든요? 근데 창작은 더 심하더라고요.     


겸업인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가장 자주 말하는 단어가 ‘글먹’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만 써서 ‘먹’고 살기.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할까요?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저는 전략을 하나 세웠습니다.

      

바로 영상화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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