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잠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엄마의 비밀 아지트 Y군 큰파도로 흙집에 와서 마당을 바라보다가 장작을 넣어서 아궁에 불을 좀 지폈고 노곤함이 온몸에 퍼지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낡은 캠핑카를 타고 덜컹거리며 다니다가 바닥난방이 되는 안락한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어서일까? 몸이 온통 긴장감을 내려놓아 나의 몸은 흐물흐물 방바닥의 온기와 하나가 되듯 무방비로 풀어지는 느낌이다.
새소리가 들려.
어떤 새가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까?
마당 한쪽의 감꽃이 지고 난 감나무. 이제 작은 감들이 조롱조롱 달리기 시작한다. 이 초록잎으로 가려진 어디쯤에 작은 새가 앉아있나 보다.
흙집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상쾌하다.
바다내음을 머금은 맑은 공기가 와락 나에게 안긴다.
아파트에서 살 때와 확연히 다른 공기의 맛과 냄새.
나는 아파트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아팠다. 일어나자마자 달리다시피 하여 아파트에서 열 수 있는 것은 문들은 모두 열였다. 밤새 먼지가 조금 가라앉은 듯한 도시의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었다. 지금 내가 마주한 아침은 도시의 아침과는 다르다. 자고 나서 가벼워진 몸이 가장 큰 변화이다.
마당에 있는 펌프에 마중물을 넣는다. 그리고 힘껏 반복하여 누른다. 여러 번 펌프질을 하여 관에 남아있던 물을 빼내고 맑고 찬 물을 세숫대야에 담는다. 비누 없이 세수를 한다.
아, 그 새소리 사이사이로 조약돌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듯 파도소리가 들린다.
여기 바닷가야. 또야.
나는 내 안의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파도소리를 따라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아침이슬에 양말을 신지 않은 발에 닿는다. 상쾌하다. 해변을 따라 훈풍이 분다.
Y군 큰 파도해수욕장의 6월은 그림 같다. 바다로 가는 길에 난 토기풀 언덕에 토끼풀 하얀 꽃이 동글동글 하게 피어나고 유난히 검은빛을 내는 까만 몽돌과 파란 바다와 대비를 이루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해변을 따라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내 발 가까이 파도는 잔잔하게 밀려왔다가 다시 저만치 물러난다.
'이런 동굴이 있을 줄이야. 바닷물에 손가락이 달린 것일까? 섬세한 예술가의 완벽한 예술처럼 흠잡을 데 없이 자연과 어울리는 작품...... 나도 저 해식동굴처럼 여기서 조금씩 풍화되고 싶다.'
엄마가 일기장에 썼던 바로 그 해식동굴이 보인다. 썰물 때만 보인다는 바로 그 동굴. 천천히 그곳을 향해 간다. 한껏 신비로운 분위기가 난다. 엄마는 이 기막힌 풍경 때문에 감상에 젖었던 것일까? 여기서 저 동굴의 바위처럼 엄마는 조금씩 깎여서 사라지고 싶었던 것일까?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몽돌이 반짝이며 햇살을 받아 빛난다.
저녁이 되면 더 아름답겠지? 하루 몇 던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주는 빛을 이 바닷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스스로를 붉게 감싸 안으며 하루 한 번 황홀한 풍경 속에 나를 배치하는 빛. 강렬하게 타오르다가 마침내 깜깜한 바다가 되어버리는 풍경일지라도 큰 파도해수욕장의 바다는 순간순간 아름답다. 나는 그 바닷가의 6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는다.
해변가의 작은 카페에서는 여행객 몇 명이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향긋한 커피를 한 잔 하고 갈까 싶었지만 캠핑카에 맛있는 원두가 충분히 남아있어 애써 자제하고 바닷가를 조금 더 걷기로 한다.
걸으며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일기장에서' 바닷물이 깎아놓은 동굴이 있다'라고 했다. 나는 그 생각을 따라왔다. 엄마도 이렇게 내가 느끼는 감각을 느끼며 이 길을 걸었겠지? 무언가 우리 사이에 비밀스러운 경험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나는 파도소리와 발끝에 닿는 모래와 몽돌의 느낌에 집중한다. 오롯이 그 감각을 느끼다가도 다시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인식되는 또는 경험되는 엄마에게로 자꾸 마음이 간다.
엄마의 일기장은 어떤 페이지에는 감성이 가득하여 눈물을 흘리지만 어떤 페이지에서는 언젠가 이 일기장을 발견한 사람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간결하게 기록해 놓기도 하였다.
'해식동굴을 방문: 간조 전후 2시간이 가장 적절. 2024년 6월 13일 기준 이 바닷가의 간조 시각: 오전 11시 58분과 오후 11시 42분이다. 오전 9시 58분부터 오후 1시 58분, 그리고 오후 9시 42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 42분 사이가 동굴을 탐방하기 좋은 시간임.'
엄마는 내가 이곳을 꼭 와보길 바란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토끼불 언덕을 넘어 집으로 들어왔다. 아침햇살이 퍼지는 흙집은 밤과는 다르게 정겹고 포근하다.
흙집의 뒷마당으로 걸어가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뒷마당 가득 노란 참외가 가득하다. 엄마는 언제 참외 모종을 사다가 이렇게 가꾸어 놓을 걸까? 웃음이 나는 것은 엄마가 참외가 돌담을 타고 넘어가도록 심어놓아서 엄마의 흙집은 참외벽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엉뚱한 발상에 웃음이 난다. 바닥에 누워서 뒹굴뒹굴 자라는 참외가 엄마의 흙집에서는 벌떡 일어난 느낌이다. 아마도 참외에 흙이 묻는 것이 싫어서 깔끔한 성격의 엄마가 머리를 쓴 것이 아닐까? 아무도 없는 외할머니댁에 들어가도 외할머니댁은 푸근하다. 엄마가 없는 엄마의 흙집에 몰래 들어왔지만 나는 무언가 포근한 것이 나를 감싸는 느낌을 받는다. 포근함의 근원이 이 엄마일지도 외할머니일지도, 아니면 그냥 흙집일지도 모른다.
삶은 무엇일까?
엄마의 일기장엔 엄마의 감정이 들어있다. 평소에 무덤덤해 보였던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듯 보였던 엄마에게도 풍부한 감정과 고민과 또렷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낯설고 기쁘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엄마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달디단 6월의 참외를 찬물에 씻어 와그작거리며 먹는다.
내 삶은 고달프지만 때때로 이렇게 달콤하다.
2025년에도 고요하게 성실하게 쓰고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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