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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Dec 21. 2022

디즈니플러스 더 베어를 봤다 그리고 보고 있다

당연히 인간은 정글에서도 배가 고프다

더 베어에 대해 써야 한다. 써야 한다? 그래, 써야 한다.


더 베어에는 카르멘이 나온다. 그리고 티나가 나오고, 시드니와 엔젤, 이브라힘, 슈가 (자막상 여동생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누나라고 한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리치도 나온다.


하지만 이건 등장인물이 딱히 중요한 극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카르멘과 카르멘이 떠맡은 더 비프라는 식당인데, 내 눈에는 더 비프와 정글이라고 해도 무방한 주방뿐이었다.


사람은 왜 이렇게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할까. 주인공이 트라우마로 점철된 인간이면 일단 눈이 돌아가고 본다. 이입의 선을 넘어서 사람을 돌게 하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창작자들이 꼭 모든 인물에 트라우마를 넣어 놓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로 인해 인간은 좀 더 입체적이 되기도 한다. 가감 없는 사실이라 따로 반박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이하다고 생각한다.


극을 보면 1화부터 인정 욕구, 브라더 콤플렉스, 완벽주의자, 그리고 미친 고집의 소유자인 주인공 카르멘은 정글을 유리온실로 만들고자 하는데 그게 될 리가 없다. 정글에는 정글만의 법칙이 있고 그것을 따르는 게 정글에 떨어진 사람들의 숙명이다. 카르멘은 저 명제에 반박한다. 정글은 지랄 그냥 개판인 식당이면서.


카르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닌데, 카르멘의 형인 마이크가 만든 더 비프는 정글에 더 가깝다. 법칙은 자연적으로 생겨났을 뿐 일부러 조직한 것이 아니며 정글에 떨어진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 법칙을 알아서 세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서로 맞는 퍼즐이 되어 갔는데 그걸 완벽한 미슐랭 파이브 스타 쉐프가 단번에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당연하지.


인간이라면 어느 순간에는 본인의 미욱함을 인정해야 한다. 본인이 모자라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인데, 사실 나는 저 미욱함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포용한 편이다. 모두가 다양할 뿐 우월하다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우월함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더 나은 방법이란 언제든 도출해 낼 수 있다. 근데 뭐 어쩌라고. 그것도 다양성을 포용해야만 나올 수 있다. 과학도 무수한 실험을 통해 여러 결과를 취합하여 하나의 무결한 정의를 얻을 수 있는 거다. 이 단락을 쓰면서도 내가 아직 글렀다는 것이 보이겠지. 근데 뭐 어쩌라고.


하여튼 옆에 틀어 놓고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다시 튼 횟수를 다섯 번까지는 셌지만 그 이후로는 안 센 바람에 지금이 몇 번째 재생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더 비프 (현재 5화이므로 더 비프이다) 소리를 지르고, 온갖 욕은 다 해 놓고 마지막에 chef만 붙이면 다냐 이 놈들아 소리가 나오지만 그 맛에 또 보는 거다. 소회는 짧게 마쳤다. 이에 대해 장황하게 스토리를 설명해 놓은 글들이 많을 텐데, 나는 그런 식의 리뷰를 쓰는 법을 잘 모르고 익숙하지도 않다.


영업이 된다면 좋겠지만 안 되도 크게 상관은 없다. 어쨌든 2022년 12월 나는 모든 미디어 중 더 베어를 가장 재미있게 봤다. 다들 챙겨 보길! (같은 시기에 나온 더 메뉴라는 영화도 봐야 되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더 베어를 더 메뉴라고 썼다. 언젠가 더 메뉴를 보고 또 쓰겠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또한 음식 영화다. 먹는 건 내 정신뿐이겠지만.)


더 베어 촬영 비하인드. 포스터 말고 비하인드 사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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