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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May 01. 2022

한국 남성 퀴어 작가의 글을 읽지 않기로 결심하다

나는 한국 문학 독자다. 여러분도 그렇듯, 그리고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한국 문학을 좋아하고 즐긴다. 모국어가 한국어라서 이해의 폭과 운신의 폭이 가장 넓은 언어로 쓰인 가상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아주 높은 코리안 네이티브 독자다.


그리고 한국 문학에 대한 내 소회를 밝힌다. 그 어떤 작가의 이름도 쓰지 않고 그 누구의 작품명도 쓰지 않겠다. 하지만 나 정도 읽은 사람들은 모두 알 거고, 나 정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알 수도 있으며, 나보다 더 읽은 사람들은 나를 가소롭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뭐 어쩌라고.


사실 한국 남성 작가의 글을 읽지 않은 지 좀 됐다. 그냥... 결이 안 맞다. 이런 표현 좋아하지 않나? 결이 안 맞다. 거리감이 느껴진다. 아,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여성이다. 스팩트럼 속 젠더가 아닌, 아주 견고하고 확실하고 단정적으로 여성이다. 나는 나를 그 어떤 다른 젠더로도 정체화해 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딱히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감히 단언한다. 나중에 바뀌더라도 이 글은 고치지 않고 두겠다.


어쨌든 한국 남성 작가의 글을 읽지 않은 지 좀 되었다. 공감할 수 없으니 읽지 않는다.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 하는데 묘하게 화가 쌓이는 기분이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유명한 퀴어 남성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읽어 보았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추천을 받거나 선물을 받는 책들이 대개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예의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선물해 주는 사람에게 꼼꼼한 감상평을 남기는 것은 내게 어떤 의무처럼 남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내가 읽은 이 작가의 작품은 내 인생 한국 남성 퀴어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댜.


다들 유명한 건 다 읽어 봐서 알 거고, 어지간히 한국 문학 섹션을 서성거렸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요즘 한국 남성의 이름을 가진 작가의 책을 집어들었을 때 그 작가의 작품이 퀴어 문학이 아닌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 퀴어고, 역시 퀴어고, 어라 하다 보면 퀴어다. 그러니까 게이 소설이다. 여성 작가들은 좀 사정이 다른데, SF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넓은 '스팩트럼'의 문학을 한다. 특히 장르 문학에서 여성 작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마치 물귀신처럼 독자들을 그들만의 세계관으로 끌고 들어간다. 수영을 못하는 독자들이 있으면 수중 "탈것"을 제공해 주니까 딱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딱히 여성 퀴어 작가의 작품은 보이질 않는다. 미안한데, 나는 지금 내 눈에 보이고 띄는 것만 쓰고 있으니 이 점이 고까워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글을 끝까지 읽길 바란다. 아니면 뭐 여기서 그만 읽으시든가. 하여튼 레즈비언 문학은 어째서 이렇게 없을까. 심지어 레즈비언 문학은 찾아서 봐도 학창시절 유사 레즈비언 관계에서 끝나고 만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레즈비언은 사라지나? 그런 것도 아닌데 다소 학창시절 관계에 집중되어 있고 이십대 삼십대로 이어지질 않는다.


남성 퀴어 작가는 본인이 퀴어인 점을 문학으로 커밍아웃하기라도 하듯 아주 세세하고, 섬세하고, 정확하고, 장황하고, 어느 순간에는 이건 너무나도 실재하는 누군가의 경험처럼 보이는데 내가 이런 걸 읽어도 되나? 싶을 정도의 현실감을 준다. 본인의 경험을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라, 본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스스로의 커밍아웃에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자꾸만 내 마음을 쑤시고 그럴 때마다 나는 르뽀가 아닌 자기 객관화가 끼얹어진 포르노 같은 시선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거다. 심지어 본인이 퀴어라는 점을 이백칠십 퍼센트 정도 활용한다. 활용? 다소 상업적인 관점이긴 하나 본인의 경험이 녹아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현실적이고 하필이면 작가의 인생을 통해 그려 놓았으면 독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는 거다.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읽어 봤다면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십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하필 발간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를 그리고 있고, 하필 덕수궁에 가고, 하필 한강변을 걷는다. 그리고 하필 주인공에게는 작가인 주인공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전 혹은 현) 애인이 있고, 이건 너무 현실적이에요 라며 교정을 봐 주는 편집자가 있고, 이 소설을 출간한 후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그거 내 이야기지 하고 연락을 해 오는 주변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제 질린다.


누군가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웃고 울고 서글퍼하고 마음에 남을 만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다. 내가 남성 퀴어였다면 그랬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좀 미안, 아니 사실 별로 안 미안하긴 한데 여성 퀴어로서 나는 범람하는 남성 퀴어, 아니 오롯이 게이에만 집중하고 있는 문학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 서점에서 한두 권 찾기도 힘든 레즈비언 문학 찾느라 바쁘거든. 


이 정도 소회도 차고 넘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다. 그러니 지금까지 잘 읽었습니다, 한국 남성 퀴어 작가 여러분. 그래도 책은 다 사서 (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아니었을 때도 있었습니다만) 읽었으니 퉁 치기로 합시다. 정진하세요. 그 방향이 같은 곳을 향하는 것 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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